"남산에 대나무가 있는데 여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곧고, 그것을 잘라서 쓰면 견고한 갑옷과 투구도 뚫을 수 있소이다. 이런 것으로 말한다면 도대체 배움이 무슨 필요가 있겠수!"


"대나무 화살에 깃털을 꽂고 화살촉을 숫돌에 갈아서 쓴다면 그 뚫는 것이 더 깊어지지 않겠는가?"


자로가 공자를 처음 찾아와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의 일부분이다(출전: 『공자가어』). 배움의 무용과 유용을 두고 불꽃튀는 진검 승부를 겨뤘다. 승부는? 알다시피, 공자가 이겼다. 이후 자로는 긴 세월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한 몇 안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정적의 칼에 맞아 죽을 때도 "선비는 관(冠)을 벗어서는 안된다"며 떨어뜨린 관을 찾아쓰고 죽었다. 스승의 교화와 교육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런데, 만일 자로가 원래 자신의 생각대로, 공자의 견해에 무릎을 꿇지 않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1589)는 요절한 천재 여류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사후 문집인『난설헌집(蘭雪軒集)』은 조·중·일의 베스트셀러였다. 여성교육이 등한시되던 중세에 그녀는 당대 어느 사족(士族)의 남성못지 않은 수준높은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의 영향이 컸다.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린 이달의 지도를 직접 받기도 했다. 자로처럼 화살에 깃털을 꽂고 화살촉을 숫돌에 간 격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삶은 어떠했나? 그녀는 생전에 세가지 한을 말했다고 한다. "어째서 여자로 태어났는가? 어째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어째서 조선 땅에 태어났는가?" 불행한 삶을 조목조목 들먹이지 않아도 그녀의 삶이 어땠을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전해지는 말이니, 진위를 확실히 가릴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은 방증한다). 만일 그녀가 수준높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즉 자로가 말했던 '남산의 대나무'처럼 그냥 살았다면 어땠을까?


사진은 난설헌 허초희의「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꿈에 광상산에서 노닐다)」이다. 이 시는 꽤 긴 서문(序文)을 갖고 있다. 시의 이해를 위해 읽을 필요가 있다.


을유년(1585) 봄에 나는 상을 당해 외삼촌 댁에 묵고 있었다. 하루는 꿈속에서 바다 가운데 있는 산에 올랐는데 산이 온통 구슬과 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많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렸는데 흰 구슬과 푸른 구슬이 반짝였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산봉우리 사이로 오색빛 영롱한 무지개 구름이 서려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니 갖가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과 풀이 피어 있고 난새와 학, 공작과 물총새들이 좌우로 날며 춤을 추었다. 숲속 나무들의 온갖 열매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가 산속에 가득했고, 기암절벽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져 내렸다. 구슬 같은 물방울들이 부딪치면서 옥쟁을 타는 듯한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산정에 도착하니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온통 푸른빛이었다. 홀연히 붉은 해가 바다 위로 쑥 솟아올랐다. 산봉우리 꼭대기에는 맑은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피어있었다. 신묘한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다가가니 우산처럼 큰 연잎이 서리를 맞아 시들고 있었다. 붉고 푸른 무지개 치마를 입은 선녀 둘이 나타났다. "여기는 광상산이옵니다. 신선 세계 십주(十洲)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옵니다. 낭자에게는 신선의 인연이 있어 이곳까지 오신 것이니 시를 지어 이 일을 기록하소서!" 그 말에 절구(絶句) 한 수를 읊자 두 선녀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한자 한자 모두 신선의 글이나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붉은 구름이 떨어져 산봉우리에 걸리고 둥둥 북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일어나니 선녀는 간데없고 싸늘한 이불 속이었다. 베개 밑에는 여전히 아지랑이 기운이 서려 있었다. 태백의몽유천모음유별(夢遊天姥吟留別)」에 비견하긴 어렵겠지만 그런대로 써본다. (번역 출처: https://blog.naver.com/leesobia/221307008861 및 윤지강,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예단:2009) )


사진의 시를 읽어보자.


碧海浸瑤海 벽해침요해   푸른 바닷물이 옥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청란의채란   푸른 난새가 오색 난새와 어울리네

芙蓉三九朶 부용삼구타   연꽃 스물일곱 송이

紅墮月霜寒 홍타월상한   붉게 떨어지니 달빛이 서리 위에 차가워라 (번역 출처: 윤지강,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예단:2009) )


작시의 배경이 서문에 자세히 나와 있기에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다. 이 시는 유선시(遊仙詩)이다. 유선시는 현실도피적인 시인데,『난설헌집』에 수록된 상당수가 유선시이다. 허난설헌이 현실도피적인 유선시를 다수 지었다는 것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자신의 삶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반증한다. 앞서 인용한 그녀의 세 가지 한탄과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본다. 만일 그녀가 수준높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성급히 어떤 답을 찾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육이 삶의 행복과 얼마나 상관성이 있는지 한 번 되짚어보고 싶은 것 뿐이다. 만일 그녀가 수준높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鸞, 朶, 墮가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鸞은 鳥(새 조)와 變(변할 변)의 약자가 합쳐진 것이다. 봉황과 유사하나 성장하면서 털 빛깔에 변화가 생겨 봉황과 다른 모습이 되는 새란 의미이다. 난새 란. 상상의 새이다. 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鸞鳳(난봉, 난새와 봉황. 뛰어난 선비를 비유), 鸞駕(난가, 난새가 끄는 수레. 천자가 타는 수레를 비유) 등을 들 수 있겠다.


朶는 木(나무 목)과 꽃이나 열매 가지가 늘어진 모양을 표현한 乃의 합자이다. (꽃이나 열매) 가지가 늘어졌다는 뜻이다. 가지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늘어질(가지) 타. 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花朶(화타, 꽃이 핀 가지), 紅雲朶(홍운타, 빛이 붉고도 두꺼운 국화) 등을 들 수 있겠다.


墮는 土(흙 토)와 隋(제사고기 나머지 수)의 합자이다. 성벽이 무너졌다란 의미이다. 성벽 소재인 토석(土石)의 의미를 담은 土로 뜻을 표현했다. 隋는 음(수→타)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제사지낸 고기 부스러기처럼 성벽이 허물어진 상태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무너질 타. '떨어지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떨어질 타. 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墮落(타락), 墮淚(타루, 눈물을 흘림)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혹 여성 교육을 무시하자는 의견으로 이 글을 읽으신 분이 없기를(당연히 없을 것으로 믿지만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말씀드린다)! 한 불행했던 천재 여류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득 배움과 행복의 상관성을 한 번 떠올려 본 것 뿐이다. 유달리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이기에 더더욱 이 질문을 던져본 것이다. 사진은 다음 사이트에서 빌렸다. https://www.pinterest.co.kr/choi7shinc0291/%ED%95%9C%EC%8B%9C%EB%AA%A8%EC%9D%8C/ 글씨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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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왔다 간다."


걸레 스님 중광(重光, 1934-2002)의 비명(碑銘)이다. '괜히'라는 부사의 사용이 절묘하다. 덕분에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말이 되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한 세상 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을 뜨는 것이 인생이다. 한 세상 사는 동안은 우리 의지대로 사는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얼마만큼이나 우리 의지대로 살았는지 회의감에 젖게 된다. 이래저래 인생은 아무런 실속이 없는 공허한 것이다. 그러니 '괜히'라는 말을 붙여도 대과없다. 농담같이 들리지만 삶의 본질을 꿰뚫는 비수같은 말이다.


언젠가 나도 세상을 뜰 것이다. 나도 멋진 비명, 아니 유언을 한 마디 남기고 싶다.


사진은 베트남 응우옌 왕조 말기 황제 카이딘(啓定, 재위 1916-1925)의 황릉 명문(銘文)이다. 묘비명이라해도 무방하다. 그가 직접 남긴 것은 아니고, 신하들이 남긴 걸게다. 무슨 내용일까?



四面獻奇觀風景別開宇宙 사면헌기관풍경별개우주   사면 풍경 기이하니 신천지 열린 듯하고

億年種旺氣江山張護儲胥 억년종왕기강산장호저서   영원할 늠름 강산 서있으니 이 궁은 영원토록 보호되리



황릉이 오래도록 유지되길 기원하는 소원문이다. 그러면 묘비명이 아닐까? 소원문이지만 묘비명이라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 뭐라 해석해야 할까? 영원히 살고지고이다. 죽어서도 명전(冥殿)이 지속되길 원했다면, 살아서는 오죽했을까? 비영속의 삶이 영속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과욕이다. 과욕은 추하다. 소화불량에 걸린 이의 똥빛 안색과 같기 때문. 자신들이 섬긴 황제에게 올린 최대의 공사(恭辭)였겠지만 최대의 허사(虛辭)란 생각이 든다. 설령 황제 자신이 생전에 원했다 해도 말이다.


삶은 왔다 가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이를 거스르는 것은 추하다. 카이딘 황릉은 화려하다. 그러나 화려하기에 더 추하다. 자연스러움을 어겨 영속을 원했기 때문. 당장도 편히 쉬어야 할 유택(幽宅)에 이국의 관광객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추함이 초래한 업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儲, 胥가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儲는 亻(사람 인)과 諸(모두 제)의 합자이다. 쓰임에 대비한다는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諸는 음(제→저)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쓰임에 대비하기 위해선 여러가지를 준비해 둬야 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쌓을 저. 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儲輔(저보, 왕세자), 儲積(저적, 저축) 등을 들 수 있겠다.


胥는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疋(발 소)의 합자이다. 게살을 이용해 담근 장(醬)이란 의미이다. 月으로 뜻을 표현했다. 疋는 음(소→서)을 담당한다. 게장 서. 지금은 '돕다'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유추된 의미이다. 게살장은 입맛을 돋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도울 서. 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胥吏(서리), 象胥(상서, 역관)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신천지 교단이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몰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여러 정보를 취합해 보면 정상적인 교단이라 보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교단의 주된 주장이 '영생'이라는 것. 그것도, 살아서! 비영속의 존재가 영속을 바라는 건 과욕이다. 과욕을 부리면 추해진다. 추해지면 (常道)를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된다. 신천지의 비정상적 교단운영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런만큼 이 교단에 대한 해법 또한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영생의 과욕 포기가 그것. 신천지 교단에 대한 표면적 해결책은 사법 혹은 행정적 조치이겠지만 심층적 해결책은 이 간단한 '인식 전환'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간단하다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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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사의 기초는 범인이 남긴 흔적이다. 수사의 발달사는 흔적의 추적사라고해도 무방하다. 흔적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려는 것은 비단 수사만이 아니다. 많은 연구가 그러하다. 이른바 '분석'이라는 이름을 단 연구물들이 그것. 영화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에 사용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그 영화를 평가/파악하려 하니까. 


사진은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기생충」의 초반부 한 장면이다. 기우(최우식 분)가 유투브에서 피자 박스 빨리 접는 영상을 찾아 가족들에게 소개하러 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왼쪽 벽면에 한문 액자가 눈에 띈다. 「기생충」을 감독한 봉준호 감독은 디테일에 강해 별명이 '봉테일'이라고 한다. 문득 그의 디테일을 저 액자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진다. 특히나 요즘은 한문을 모르는 이들이 많으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생긴다. '어차피 사람들이 모를텐데 아무거나 붙여 놓아도…'라는 마음으로 영화와 무관한 액자를 사용했다면 '봉테일'이란 별명은, 적어도내게는, 동의하기 어려운 별명이다. 한문 액자를 통해서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까?


액자의 내용은 이렇다(○ 부분은 사진에서도 영화에서도 글자 판독이 어려웠다).


忠孝大節 충효대절   충효의 큰 절개를 지닌다.

好學不倦 호학불권   배움을 좋아하고 남을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다.

忠○心○ 충○심○   성실한 마음으로 ○하고 ○한다. 

公先私後 공선사후   공을 앞세우고 사를 뒤로 한다.


요즘은 벽면에 장식물을 많이 걸어두지 않는다. 걸어 논다 해도 글자류 보다는 그림이나 사진류를 걸어 놓는다. 설령 벽면에 글자가 들어있는 장식물을 걸어놓는다 해도 고가의 운치있는 내용의 액자나 족자를 걸어놓지 구호성 내용의 액자나 족자는 걸어놓지 않는다. 기택(송강호 분)의 집과 대비되는 박 사장(이선균 분)네 거실에는 박 사장 가족의 대형 사진과 다송(정현준 분)의 그림만 걸려있다. 기택네 액자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다분히 구호성 내용이고 시대와 동떨어져 보인다. 한마디로 저 액자는 기택네가 시대의 주류에 뒤떨어져 있거나 현실에서 낙오됐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택네는 반지하 집이고, 가족은 전부 실직 상태이며, 욕설이 상투어이고, 사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벽면의 한문 액자는 섬세하게 마련한 소품이라 평가할 만하다. 소품을 통해서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기생충」이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는 것은 극적 재미에 보태 세심하게 배치된 상징적 장면 때문인데, 섬세하게 마련한 소품도 한 몫 하는 것 같다(기택네가 박 사장 집을 점령하고(?) 벌인 파티에서 한 스페인산 고급 감자칩 통이 나오는데, 이 또한 그런 한 예이다). 역시, '봉테일'이다.


節과 倦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節은 竹(대 죽)과 卽(가까이할 즉)의 합자이다. 대나무 줄기의 중간중간에 생긴 마디란 의미이다. 마디는 윗 줄기와 아랫 줄기가 서로 가까이 만난 곳에 형성된다. 하여 竹과 卽을 합쳐 '마디'란 뜻을 표현했다. 마디 절. '절개'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마디처럼 한계를 짓는 명분있는 행동과 마음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절개 절. 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節氣(절기), 忠節(충절) 등을 들 수 있겠다.


倦은 亻(사람 인)과 卷(굽을 권)의 합자이다. 피로하다란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卷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일을 대충대충[卷] 해야 할 정도로 피로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게으르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피로할(게으를) 권. 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倦色(권색, 피곤한 기색), 倦怠(권태) 등을 들 수 있겠다.


기택네 집에 건 액자와 같은 것을 걸어 둔 가정이 있을 것이다(우리 형님 집에도 있다). 그분들이 혹 이 글을 읽고 분개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분들을 얕잡아 보려고 쓴 것이 아니다(내가 어떻게 우리 형님을 얕잡아 보겠는가!). 다만 일반적 현실의 모습을 기술했을 뿐이다(우리 형님네도 살림이 매우 곤궁하다). 봉준호 감독은「기생충」을 통해 빈부의 양극화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고 말한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 직시가 우선이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 형편이 어려운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생각과 형편이 넉넉한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생각 그리고 이 양자의 중간에 있는 이가 보고 느끼는 생각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 생각의 공통 분모가 양극화 문제의 해결 혹은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생충」, 정말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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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앙 이에 홍 위 알 위에 후아(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 잎 2월의 꽃보다 더 붉구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한국을 방문한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청와대의 단풍을 구경하며 읊조린 시구이다(중국어로 읊조렸을거라 중국어 음으로 써 보았다). 두목(杜牧, 803-852)의「산행(山行)」마지막 구로, 가을에 널리 회자되는 시구이다. 단순히 "단풍이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는 것 보다 중층 의미를 전하기에 품위있어 보인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의미는 당연히 들어가 있고, 두목이 감탄했던 그 단풍 못지 않을 것 같다는 의미도 있고, 두목이 봤다면 그 역시 나만큼이나 감탄했을 것 같다는 의미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이 임진왜란 후 강화와 포로 송환 협상을 위해 일본에 건너가 1604년부터 이듬해까지 교토에 머물 당시 남긴 고쇼지(興聖寺) 유묵(遺墨)이다. 최근 국립박물관에서 이 유묵 전시회가 열렸는데, 거기서 찍은 것이다. 활달하고 기운 넘치는 글씨가, 서예에 문외한이 사람이 봐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글씨의 내용은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의「등윤주자화사산방(登潤州慈和寺上房)」시의 일부분이다.


畫角聲中朝暮浪 화각성중조모랑   뿔피리 소리 속에 물결 끝없이 일렁이고

靑山影裏古今人 청산영리고금인   푸른산 그늘 속에 명멸(明滅)자취 어른거리네


고저원근(高低遠近)의 풍경이 공감각적 표현을 통해 잘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유상한 자연과 무상한 인생의 대비를 통해 삶의 비애를 말하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이 시구의 앞 구절 내용을통해서도 방증된다.


登臨蹔隔路岐塵 등림잠격로기진   산에 올라 잠시 잠깐 세상사 거리두고

吟想興亡恨益新 음상흥망한익신   흥망 자취 읊노라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새록새록


사명대사는 최치원의 시구 인용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중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고쇼지가 최치원 선생이 올랐던 자화사같은 풍모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그 하나이고, 최치원 선생이 느꼈던 삶의 비애를 자신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이런 무상한 삶에서 선승이 지녀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려나 저 해설판의 단순한 설명―고쇼지의 기풍이 자화사처럼 탈속적이라는 뜻을 담아 이 시구를 남긴 듯하다―만으로 이 인용 시구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소박한 이해이다. 타인의 시(구)를 인용한 의사 표현은 확실히 품위있어 보인다.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보자.


聲은 耳(귀 이)와 殸(磬의 약자, 경쇠 경)의 합자이다. 경쇠가 울릴 때 나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귀를 통해 들리는 그 무엇이란 의미이다. 소리 성. 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聲樂(성악), 音聲(음성) 등을 들 수 있겠다.


影은 景(볕 경)과 彡(形의 약자, 형상 형)의 합자이다. 빛이 비치는 쪽에 드러나는 형상이란 의미이다. 그림자 영. 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陰影(음영), 影像(영상) 등을 들 수 있겠다.


裏는 衣(옷 의)와 里(마을 리)의 합자이다. 옷 속이란 의미이다. 衣로 뜻을, 里로 음을 표현했다. 속 리. 裏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裏面(이면), 表裏(표리)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장쩌민 주석의 한시 인용 단풍 감상에 그를 초청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아무런 화답을 못했다. 그래서 당시 모 신문에는 김 대통령의 무교양을 탓하는 약간 조롱조의 칼럼이 실렸었다. 당시에는 그 칼럼의 논조에 긍정을 표했는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르다. 대통령의 무교양보다 장 주석의 무교양을 되려 탓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장 주석의 무의식 속에는 아직도 우리나라를 조공국으로, 자신을 천조국으로 보려는 의식이 남아 있었기에 과거와 같은 응구첩대(應口輒對)를 통해 상대(의 원수)를 테스트하려는 언행을 했다고 보는 것. 그가 진정 교양있는 인물이라면 우리나라의 명시를 인용해 단풍 감상을 말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김대통령이 아무런 응대를 못했다면, 그건 정말 조롱받아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칼럼을 쓴 기자도 그의 무의식속에 과거 조공국 의식이 잔존해 있었기에 그런 칼럼을 쓴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족자의 낙관은 사명송운(四溟松雲)이라고 읽는다. 사명은 유정의 당호, 송운은 유정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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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값을 치렀으니, 저 문짝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죠! 여보, 가서 때려 부숴요!”

 

전세 재계약을 하러 집주인이 찾아왔다. 그간 집을 어떻게 썼나 확인하겠다며 집을 둘러보다 안방 문 하단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문 값을 물어내야겠다고 했다. 흠집을 낸 건 사실이기에, 수리비를 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을 말했다. “저 문은 사람을 사서 맞춘 문이여. 다른 집처럼 그냥 입주할 때 있던 문이 아녀. 문 전체를 갈아야 되겄어.”

 

그간 벽지 교체 등 집수리를 제대로 안 해준 것도 있었지만 그대로 지냈는데 그런 것 좀 감안하고 수리비만 받으면 좋겠다고 완곡히 얘기했지만, 주인은 들은 채 만 체하며 싫으면 나가든가계속 자기주장만 폈다. 당장 전세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뜻밖의 암초였다. 언제 또 집을 새로 구하고.

 

아내는 옆에서 계속 지켜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실 우리 내외는 간밤에 사소한 일로 다퉈 냉전 중이었다. 문의 흠집도 사실은 아내 때문에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진 것이 맞아 생긴 흠이었다. 아내는 내가 주인 앞에서 쩔쩔매며 사정하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계속 다그쳤다. 빨리 결정하셔. , 가야 되니까. 결국, 문짝 값을 주기로 하고 전세 재계약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고 나자, 갑자기 아내가 집주인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값을 치렀으니, 저 문짝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죠! 여보, 가서 때려 부숴요!”

 

주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아내는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다용도실에 있는 공구함을 가져와 망치를 꺼냈다. 그러더니 나보고 어서 문을 부시라고 했다.

 

문짝 값 냈고 새로 문을 해 달 거니 저 문짝은 이제 쓸모없잖아요. 어서 부숴요!”

 

주인은 갑자기 얼굴색이 하얘지더니, 뭐라 말을 못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망치를 받아들고 문짝 앞으로 갔다. 그때 주인이 말했다.

 

, 처음에 얘기하던 수리비만 받을 테니 그만두세요~” 맥없이 수그러든 모습이었다. 집주인은 찌그러진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그날 속으로 다짐했다. “여보, 앞으로 당신을 위한 일이라면 내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꼭 해줄게.”

 

사진은 공감(共感)’이라고 읽는다. 함께 느낀다는 뜻이다. 간판을 보니 문득 십수 년 전 일이 떠올랐다. 당시 아내는평소엔 그다지 말을 많이 하는 성격도 아니고 겁도 많다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지지 혹은 공감의 힘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닐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스물 입)(의 약자, 손 맞잡을 공)의 합자이다. 많은 사람이 손을 맞잡고 병렬로 서 있다는 의미이다. 함께 공.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共同(공동), 共和

(공화) 등을 들 수 있겠다.

 

(다 함)(마음 심)의 합자이다. 대상과 주체가 일치될 때 느끼는 마음의 공명이란 의미이다. 느낄 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共感(공감), 好感(호감)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여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화장하고, 지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이해에 대한 처절한 갈망을 나타낸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에 대한 절절한 공감 욕구를 나타낸 것이다. 나는 그날 아내에게 절절한 공감을 받았다. 그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아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생길 때면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아내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인용문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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