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이 있어

<딱터 >肖像畵로 밑씻개를 하라 외

쳤다 하여

그렇게 자랑일 순 없다.

어찌 그 치사한 휴지가 우리들의 성한

육체에까지 범하는 것을 참고 견디겠느냐!

   

주역은 음양의 대대(待對)논리를 바탕으로 한 철학서이죠. 대대란 직역하면 상대를 기다려 대한다란 뜻인데, 의역하면 상대가 있을 때 당사자가 온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의미예요. 음은 양이, 양은 음이 있을 때 온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주역의 정신이에요. 흔히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하는데,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힘든 말 이지만, 주역의 대대 논리를 갖다 대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말이에요. 한 극은 또 다른 극과 함께 있을 때 그 의미가 온전히 드러나는 법이기에 둘은 통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다르게 바꿔 표현한다면 극과 극은 둘이면서 하나라고나 할까요?

  

인용 시는 흔히 한국 현대시사에서 목가시인 혹은 전원시인으로 불리는 신석정 선생의 「쥐구멍에 햇볕을 보내는 민주주의의 노래」의 한 부분이에요. ‘4.19 혁명즈음하여 지은 시로 보여요. 이승만의 초상화로 밑씻개를 하는 것조차 참을 수 없다는 추상같은 일갈은 이 분이 과연 목가시인 혹은 전원시인이 맞나 싶을 정도의 강한 어조예요.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주역의 대대논리를 빈다면, 목가시인(전원시인)이었기에 이런 추상같은 어조의 시를 지을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순수했기에 불의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사진은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라고 읽어요. ‘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있다란 뜻이에요. 신석정 선생이 즐겨 썼던 문구로, 그의 정신적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이 문구엔 위에서 언급한 선생의 양면성이 담겨 있어요. 목가(전원) 지향적이면서도 지사적인 견결함을 함께 보지(保持)한 문구거든요. 왜 선생이 저 같이 추상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문구라고 볼 수 있어요. 사진은 전북 부안의 석정문학관에서 찍었는데, 선생은 의외로 현실 참여적인 시를 많이 지었더군요. 우리에게 알려진 목가(전원)시인이란 인식은 선생의 면모를 왜곡되게 전달한 문학사가 들의 잘못이 크지 않나 싶어요.

  

두 자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갈 지)(마음 심)의 합자예요. 마음이 가는 바, 곧 뜻이란 의미예요. 뜻 지.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意志(의지), 志士(지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물 수)(깃발 류) 약자의 합자예요. 깃발이 펄럭이듯 물이 흘러간다는 의미예요. 흐를 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流行(유행), 流言蜚語(유언비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제게는 오래 전 800원을 주고 산 신석정 선생이 번역한 문고판 당시선집이 있어요. 선생은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에게 당시를 배웠는데, 한시에 대한 소양이 있어서 그런지 번역이 상당히 유려해요. 이런 유려한 번역을은 앞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울 듯싶어요. 선생처럼 한시 혹은 한학에 대한 소양과 현대시작 능력을 겸비해야 그런 번역이 가능한데, 지금은 현대시작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은 가능하지만 한시 혹은 한학에 대한 소양을 키우기는 거의 불가능한 환경이니까요. 아쉬운 일이에요. 선생의 번역시 한 편을 소개해요.

  

봄도 막 가는 三月 그믐인데

계절은 저만 가고 나만 남긴다

그러면 그대여 이 하룻밤을

뜬 채 새면서 이야기 다하리

새벽 종 그윽히 들리기 전엔

우리는 그대로 봄에 사는 몸이여

  

三月正當三十日 삼월정당삼십일

風光別我苦吟身 풍광별아고음신

共君今夜不須睡 공군금야불수수

未到曉鐘猶是春 미도효종유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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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Trump, We refuse your visiting of Korea! Korea is a very polite nation of east area traditionally(트럼프 대통령, 당신의 방한을 거부한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다).”

  

오늘 전국 유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거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유는 그가 성추문에 휩싸인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동성동본 혼인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집회를 가진 이후 유림의 이런 대규모 집회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집회에 참석한 한 노() 유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양 되놈이라고 비난하던 것이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까지 우리가 서양 되놈을 환영해야 합니까! 트럼프, 그가 비록 한반도의 명운을 쥐고 있는 자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인필자모이후인모지(人必自侮而後人侮之)’라고,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업신여긴 뒤에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법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지 않는 한 타인은 결코 우리를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래로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려왔습니다. 도덕을 숭상한 나라입니다. 조선조 500년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구현하지 못한 철인(哲人)정치 국가였습니다. 이런 우리가 언제부터 도덕을 내버리고 이익만 추구하는 나라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도덕을 숭상하고 지켜온 나라입니다. 트럼프는 성추문 스캔들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자를 우리가 굳이 환영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문대통령께선 우리의 이런 의지를 그자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도 좀 더 우리의 행동에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열변을 통한 노 유림은 목청껏 트럼트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이상 △△△ ㅇㅇㅇ 였습니다.


사진은 천동인수군자국 불인굴인인자굴(天東仁壽君子國 不忍屈人人自屈)’이라고 읽어요. ‘하늘 동쪽 어질고 장수하는 군자국 / 굴복시키지 않아도 타인이 제 먼저 굴복하네란 뜻이에요.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독음(獨吟, 홀로 읊다)이란 시의 한 구절이에요.

  

독음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서정적 정서와 달리 서사적 사건을 읊은 시로, 공민왕 때 있었던 홍건적의 난을 두고 지은 일련의 시중 한 편이에요. 이 편련에 나타난 것은 고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에요. 홍건적이 물러난 것은 무력에 의한 퇴치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감읍하여 물러난 것이라데서 이른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부심이 흥건히 배어 있어요.

  

문득 시구를 대하며 우리는 이 높던 자부심을 어디에 버렸나 싶어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봤어요. 만일 트럼프 방한 당시 실제 유림에서 이런 시위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다소 코믹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그 나름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림이라는 존재의 의미도 새롭게 각인시켰을 것 같고요. 허구한 날 충효교실이나 열고 동성동본 혼인 반대 타령만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신선해 보이잖아요? 사진은 충남대학교 도서관에서 찍었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늙을 로)의 약자와 (밭두둑 주)의 약자의 합자예요. 기다란 밭두둑처럼 오래 살다 혹은 그렇게 오래 산 사람이란 의미예요. 장수할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壽命(수명), 長壽(장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꼬리 미)의 약자와 (날 출)의 합자예요. 꼬리가 없는 자벌레란 의미예요. 의 약자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은 나아가다[]란 의미가 있는데, 꼬리가 없는 자벌레는 굴신운동으로 앞으로 나간다는 의미로요. 자벌레 굴.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굽히다란 뜻은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굽힐 굴.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屈身(굴신), 屈曲(굴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최근에 영국 왕실의 앤드류 왕자가 안동 하회 마을을 방문했어요. 신문 사진을 보니 갓 쓰고 도포 입은 노인이 그를 안내하는 장면이 있더군요. 만일 그 노인이 관광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을 하며 시위하는 모습이 언론에 전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전 세계에 악의 씨를 뿌린 제국주의 영국 왕가의 왕자 놈이 어찌 우리 유서 깊은 양반의 고장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단 말인가! 썩 물러가라!” 실제 일어났다면 무척 흥미로운 기사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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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라는 것이 무슨 도이겠는가? 이것이 내가 말하는 도이며, 앞서 말한 바의 도가나 불가의 도는 아니다. 요는 이를 순에게 전하였고, 순은 이를 우에게 전하였으며, 우는 이를 탕에게 전하였고, 탕은 이를 문왕과 무왕, 주공에게 전하였으며, 문왕과 무왕, 주공은 공자에게 전하였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하였다. 그런데 맹가가 죽자 이것이 전해지지 않게 된 것이며, 순자와 양웅은 잘 선택하기는 하였으나 정밀하지 못하였고, 말을 하였으나 상세하지 못하였다.”(임동석 역주, 고문진보(동서문화사: 2017), 1484)

  

한유의 원도(도의 근원을 탐색함)후반부예요. 성리학 도통 의식의 선하(先河)를 이루는 내용이자 한유의 도() 담지(擔持)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죠. 불교가 극성을 이루었던 당대(唐代) 유가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구요. 송 대에 만개한 성리학, 이른바 신유학은 이런 한유와 그 일군의 사대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비록 송 대의 성리학자들은 한유와 그 일군의 사대부들을 순정(醇正)하지 못한 유학자라고 폄하하지만요.

  

고려 말에 수입된 성리학은 조선 중기에 들어와 이른바 사단칠정의 심성이기론으로 찬연한 꽃을 피우죠. 이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조선에서도 조선 성리학의 도통 계보가 마련되죠.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으로 이어지는 도통 계보가 바로 그것으로, 이 도통 계보는 불교를 대체한 새로운 통치이데올로기로 받아 들였던 성리학의 심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사진은 조선 성리학 도통 계보의 초장을 장식했던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노방송[길가의 소나무]이란 시예요.

  

一老蒼髥任路塵 일로창염임로진    먼지 이는 길가 푸른 노송 하나 서있어

勞勞迎送往來賓 노로영송왕래빈    오가는 길손들 분주히 맞고 보내네

歲寒與汝同心事 세한여여동심사    그대 같은 세한의 굳은 마음 가진 이

經過人中見幾人 경과인중견기인    길손 중에 몇이나 보았는가

  

김굉필은 조선 성리학의 도통 계보 초장을 장식하는 인물이지만 관념에 치우치지 않고 실천궁행을 강조했어요. 자신을 소학(小學)동자라 자칭하며 제자들에게 소학을 강조했죠. 소학은 사서(四書)나 육경(六經)과 달리 철저히 실천윤리를 강조한 책인데, 김굉필은 이 소학을 사서와 육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파악했어요

  

이 시는 이런 김굉필의 학문적 자세 일단을 보여주는 시예요. 지조를 지키고자 하는 실천의지와 노력을 길가의 소나무를 통해 표현했어요. ‘먼지 이는 길가오가는 길손은 세상 풍파와 지조 없는 이들을 상징하는 말이고, ‘분주히 맞고 보내는것이나 푸른 노송은 이런 풍파와 사람들을 대하는 힘든 모습과 그런 가운데서도 지조를 잃지 않고 유지하는 실천력을 보여주는 말이에요. 셋째 구와 넷째 구의 물음 형식을 취한 내용은 그런 실천력을 보인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사진은 달성의 김굉필을 배향한 도동서원(道東書院) 가는 길에 있는 다람재란 곳에 있는 시비예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풀 초)(곳집 창)의 합자예요. 풀빛과 같이 푸른색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푸를 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蒼空(창공), 蒼蒼(창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수염 수)의 약자와 (나아갈 염)의 합자예요. 구렛나루란 뜻이에요. 의 약자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구렛나루 염.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髥主簿(염주부, 양의 별칭), 美髥(미염, 멋있게 난 구렛나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鹿(사슴 록)(흙 토)의 합자예요. 사슴들이 떼를 지어 달려가면서 일으킨 흙먼지란 뜻이에요. 티끌 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塵土(진토), 塵埃(진애, 티끌과 먼지. 세상의 속된 것)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그윽할 유)의 약자와 (지킬 수) 약자의 합자예요. 무기를 갖고 으슥하고 위태로운 곳을 지킨다는 뜻이에요. 살필(위태로울) . 얼마()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으슥하고 위태로운 곳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는 의미로요. 얼마() .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幾察(기찰, 譏察과 통용. 행동을 넌지시 살핌) 幾月(기월, 몇 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자연철학으로 출발한 서양철학과 정치철학으로 출발한 동양철학(중국철학)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한다고 해요. 서양 철학자에게 소나무는 그저 나무의 한 종류지만 동양 철학자에게 소나무는 인간의 윤리 의식을 대변하는 나무 이상의 존재예요. 이런 사물에 대한 인식 차이는 산림의 조성에도 큰 영향을 준 듯싶어요. 우리 주변에 유실수나 경제적인 수종(樹種)보다 소나무가 유독 많은 것은 이런 영향 탓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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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ㅇㅇㅇ 영세불망비

  

옛 관아 터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비석 명칭이에요. 흔히 선정비 혹은 송덕비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이 비석들은 많은 경우 조선조 후기에 세워졌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조선조 후기는 군소민란이 잦았던 시기예요. 이런 시기에 선정비 혹은 송덕비가 많이 세워졌다는 것은 그 자체가 당시의 혼란상을 반증하는 거예요. 대부분 강제하여 세운 것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 중엔 분명 진솔한 마음으로 세운 것도 있을 거예요


사진은 송곡서원(서산 소재)에 있는 류양학의 기공비[업적을 기리는 비]예요. 1935년에 세워졌어요. 이 비는 강제하여 세운 걸까요, 진솔한 마음으로 세운 걸까요? 송곡서원은 1693(숙종 19)에 세워진 서원으로 9분의 선현을 배향하고 있어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10년에 중건됐어요.

  

내용이 길으니 끊어서 읽어 볼까요?

  

有非常之功者 當得非常之名 勒之金石垂之竹帛 使之稱思乎後世而爲之法也 太常之紀鐘鼎之銘 尙矣 止如峴山漢水之一沈一立 以備陵谷之遷者 非玆故歟 유비상지공자 당득비상지명 륵지금석수지죽백 사지칭사호후세이위지법야 태상지기종정지명 상의 지여현산한수지일침일립 이비능곡지천자 비자고여

  

특별한 공이 있는 사람은 응당 그 이름을 금석에 새기고 죽백[역사책]에 남겨 후인이 그것을 칭송하고 사모케 해 좋은 모본이 되게 해야 한다. 태상[천자나 임금의 깃발]에 기록하고 종정[종이나 솥]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당연하며 현산과 한수에 세우고 넣어서 언덕과 계곡으로 변할 것에 대비케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瑞山松谷祠 寔鄕先生俎豆之所也 旣廢而重建也 柳公在根瑾錫 固已賢勞矣 然財詘擧贏 如蘋藻之薦堂宇之治 乃歲歲所有事者 而物力有未逮 서산송곡사 식향선생조두지소야 기폐이중건야 유공재근근석 고이현로의 연재굴거영 여빈조지천당우지치 내세세소유사자 이물력유미체

  

서산 송곡사는 향선생(퇴임후 지방에서 후학을 교육시킨 이들]에게 제향을 드리는 곳이다. 훼철되었다가 중건됐는데 류재근공과 류근석공의 노력이 컸다. 그러나 재물은 부족하고 공사는 커 제수[제사용 물품]의 준비와 당우[건물]의 수리는 해마다 있었지만 온전한 정비는 어려웠다.

  

於是 琴村柳公以是爲己任 號呼於襟紳洎諸先生之後 湖嶺數千里 脚血奔走 十餘年不怠 卒以成緖 爾來建堂宇門廡者 凡十六間 計數割田者 凡四町一半步 乃定有司 朝望上香 又增爲一歲兩享之儀 旣合旣完 長久遠不替 於乎 偉矣 어시 금촌류공이시위기임 호호어금신기제선생지후 호령수천리 각혈분주 십여년불태 졸이성서 이래건당우문무자 범십육간 계수할전자 범사정일반보 내정유사 조망상향 우증위일세양향지의 기합기완 장구원불체 오호 위의

  

이에 금촌(琴村) 류공이 이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겨 사림과 이곳에 모신 선생들의 후손에게 호소하느라 영호남 수 천리를 다리에 피가 나도록 왕복했다. 이렇게 하기를 10여년, 마침내 일의 실마리가 잡혔다. 이후 당우와 문무[문과 곁채]를 세운 것이 모두 16칸이고, 수요를 헤아려 토지를 장만한 것이 41반보[대략 13천평 정도]였다. 아울러 유사[전담자]를 정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워 올리게 하고 보태어 1년에 두번 제사를 드리게 한 바 합당하고 온당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재물의 구비로 이 일이 오랜 세월 지속될 수 있게 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邦人士皆以是爲琴村之功 無間焉 將伐石紀功 屬不佞爲文 顧非其人 然知公之有是豐功 則雅矣 因敍其實以歸之 公名瀁學字公習 自號曰琴村 琴軒葦村二先生之肖孫也 방인사개이시위금촌지공 무간언 장벌석기공 촉불녕위문 고비기인 연지공지유시풍공 즉아의 인서기실이귀지 공명양학자공습 자호왈금촌 금헌위촌이선생지초손야

  

나라 안 사람들이 모두 이것을 금촌공의 공적이라고 여기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에 비석을 세워 그의 공을 기록하려 함에 불초에게 비문을 의뢰했다. 내 그만한 인물이 되지 못함을 잘 아나 공에게 이런 훌륭한 공적이 있음을 본디부터 잘 알기에 그 사실을 서술하여 보냈다. 공의 이름은 양학이고 자는 공습이며 자호는 금촌이다. 이 서원에 모신 금헌[류방택]과 위촌[류백순] 두 선생의 족손이기도 하다


비문의 내용 중 이 일(제대로 된 중건)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겨"영호남 수 천리를 다리에 피가 나도록 왕복"했다는 대목을 보면 류양학이 서원의 중창을 위해 매우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서원용 전답을 마련한 내용을 보면, 비문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본인의 재산도 상당 부분 희사했을 것으로 보여요. 비문이란 것이 원래 약간의 과장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해도 류양학이 충심으로 서원의 중창을 위해 애쓴 것은 틀림없어 보여요. 이렇게 보면 이 기공비는 강제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세워졌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어요. 옛 지방 관아 주변에 차고 넘치는 선정비와는 격이 다른 비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드는 건 왜일까요? 대부분의 선정비가 역으로 시대의 난맥상을 보여주듯 이 기공비 역시 역으로 류양학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류양학이 서원의 중창을 위해 애쓴 시기는 일제 강점기예요. 일제 강점기에 선현 배향을 위해 서원 중창에 애쓴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차라리 그 노력을 신학문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설립하는데 애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서원의 본래 기능 중의 하나였던 강학을 활성화시키던가. 일제 강점기 서당은 항일 정서를 키우는 기관으로 지목되어 탄압을 받았어요. 서원은 서당보다 격이 높은 기관이니, 만일 강학 기능을 되살렸다면, 항일 정서를 키우는 더없이 훌륭한 기관이 됐을 거예요(물론 일제의 탄압이 만만치 않았겠지만요). 류양학의 노력은 그 자체로는 아름다운 노력이었을지 모르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맹목적 노력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핵심적인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가죽 혁)(힘 력)의 합자예요. 마구의 한 종류인 굴레라는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은 밖으로 드러난 근육의 모양을 그린 것인데, 굴레는 그같이 외관상 뚜렷이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하고 있어요. 굴레 륵. 새기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새길 륵.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勒絆(늑반, 고삐), 勒文(늑문, 문장을 돌에 새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몸 기)의 합자예요. 실타래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실타래 기. 적다(쓰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기록의 초기 형태는 실을 묶어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하잖아요? 적을 기.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紀綱(기강), 紀事(기사, 사실을 기록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쇠 금)(이름 명)의 합자예요. 공적이 많은 사람의 일을 금석에 새긴다는 의미예요. 새길 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碑銘(비명), 銘心(명심, 잊지 않도록 마음에 새겨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놈 자)의 합자예요. 실마리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실마리 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端緖(단서), 頭緖(두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사람 인)(의 약자, 어길 위)의 합자예요. 뛰어난 사람이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보통 사람과 다른 이가 뛰어난 사람이란 의미로요. 뛰어날 위.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偉大(위대), 偉業(위업, 위대한 사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장인공, 본래 자[]를 그린 것으로 규준 법도란 의미 내포)(힘 력)의 합자예요.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규준과 법도에 맞게 세운 업적이란 뜻이에요. 은 뜻을, 은 뜻과 음을 담당해요. 공 공.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功績(공적), 成功(성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변형, 고기 육)(작을 소)의 합자예요. 후손이 선조의 외형과 비슷하다는 뜻이에요. 외형의 모습을 내포한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닯을 초.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不肖(불초), 肖像(초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앞서 류양학의 공을 다소 혹평했는데, 그의 공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서원의 강학 기능을 되살려 국학 관련 학과 학생들이 정규 커리큘럼으로 이 시설을 이용하게 하는 거예요. · 재정 뒷받침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건물의 유지 보수에도 보탬이 되고 국학 관련 학과 학생들의 학문적 성취에도 보탬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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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1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찔레꽃 2019-05-11 20:09   좋아요 0 | URL
반가워, 동근아. 잘 지내고 있지? 객지에 나가면 늘 건강이 우선이야. 앞으로도 종종 들려 줘~ ^ ^

2019-05-12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재료 매진.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어제 지인의 초대로 홍성군 홍동면에 갔어요. 한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약간의 한담을 나누다 나왔는데 식당 앞 입간판에 저 문구가 써있더군요. "아니 벌써 오늘 영업 끝난 겨! 야, 장사 할 만 하겄다!" 동행한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어요. 토요일인데다 면내엔, 소규모지만, 임시 장터가 열려 사람들이 제법 많았어요. 음식점 주인도 진즉에 이 상황을 알았으렸만 어째서 돈 벌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인지 의아스럽더군요. 그런데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영업 행태가 어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배짱좋게(?) 영업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더군요.


그 이유는 바로 사진의 '로컬푸드' 때문이었어요. 홍동면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의 정착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손익 분기점이 거의 일정하다고 해요. 그러니 일부러 무리하여 장사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외부 손님들이 많이 와야 이익을 낼 수 있는 일반 식당과는 운영 틀 자체가 다른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즉 언제나 준비한 식재료는 다 매진된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지, 식당 메뉴도 다양하더군요. 청국장, 추어탕, 돈까스, 비빔밥, 한우 곰탕. 장사가 안돼서 이런 저런 메뉴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기에 마련한 거였어요. 후식으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요구르트를 주더군요.


"우리나라 로컬푸드는 중소규모 생산자에게 새로운 판로를 제공하는 '농산물 제값받기'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생산자 주도 직거래는 상품 구색 갖춤이 부족하여 소매업에서는 대부분 실패하였다. 1980년대 이후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교육하며 조직한 생협이 농산물 직거래를 주도하면서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관계 구축을 전제로 지속적인 거래로 정착하였다. 로컬푸드는 생협의 성과를 바탕으로 대량생산, 대량유통이 주도하는 유통구조를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를 완결하며 지역 내 유통 구조를 복원하는 운동으로 실현되고 있다." (정은미 외 2인,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로컬푸드 추진 전략과 정책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88쪽)


인용문은 우리나라 로컬푸드의 기원과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주로 '경제'적인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런데 홍동면의 로컬푸드는 이런 관점과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아, 사진은 음식점에서 찍은 거예요) 홍동면의 로컬푸드는 '환경과 생태'에 우선 방점을 두고 있거든요. 이는 이 지역의 센터 역할을 하는 풀무고등농업기술학교와 관련성이 깊어 보여요. 이 학교는 환경과 생태를 중시하는 농업 교육을 하고 있고, 이 곳 졸업생들이 이 지역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홍동면의 유명한 오리농법 쌀도 이 학교 출신 주형로 씨가 처음 시작했죠.


많은 이들이 농업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는데 이곳 홍동면에서는 미래의 희망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로컬푸드는 그 희망의 일단인 듯 싶구요.


사진의 한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라고 읽어요.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한다'란 뜻이에요. 로컬푸드의 한문식 표기인데 로컬푸드보다 그 의미가 한결 더 분명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더군요. 로컬푸드가 활성화 될수록 이 말도 많이 활성화될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두 말 다 외래어라는 점이에요. 좋은 우리 말 표현이 만들어져 유행했으면 좋겠어요.


消가 좀 낯설죠? 자세히 살펴 볼까요? 消는 氵(水의 변형, 물 수)와 肖(削의 약자, 깎을 삭)의 합자예요. 물이 다 말라버렸다는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肖은 음(삭→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나무가 깎여 나가듯 물이 점점 줄어 다 말라버렸다는 의미로요. 다할(꺼질) 소. 消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消盡(소진), 消防(소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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