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밥은 잘 먹었는가? 구치소에서 먹던 음식과 비교하니, 집 음식 좋다는게 새삼 느껴지지 않던가? 다시는 그곳 음식 먹고 싶지 않을 것 같네. 자네가 구치소를 나오면서 "과거와는 단절되게 반성하며 바르게 살겠다"고 했는데, 그 말처럼 산다면 다시는 그곳 음식 먹을 일이 없겠지. 부디 그 말이 면피용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기를 바라네.
자네 외삼촌 남양유업 홍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을 본 적이 있네. 외조카의 일탈에 자신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죄송하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지. 외삼촌이 외조카의 일탈에 무슨 책임이 있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 자신의 기업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사과문으로 밖에 볼 수 없었네. 실제도 그 사과문 말미에 조카의 일탈과 남양유업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하고 있더군. 대리점 갑질 논란이 홍회장에게 큰 충격을 주긴 주었던 모양일세. 출소 후에 외삼촌한테 죄송하다는 말은 했는지 모르겠네? 꼭, 하게나!
재벌가 자녀들의 -- 자네도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니 이에 해당되지-- 갑질 논란이나 퇴폐 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자네의 마약 투여 행위도 사실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네. 문제는 그런 일을 저질렀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데 있지. 나는 자네같은 재벌가 자녀들의 일탈 행동은 자네들의 문제라기보다 자네 부모들의 문제라고 보네. 일탈 행위를 해도 그 잘난 배경과 돈을 이용해서 조사에서 면제시키거나 풀려나게 해주니 어찌 자네들이 기고만장하여 일탈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일세.
앞서 자네가 다시는 구치소 밥을 먹지 않길 기원했지만 솔직히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사람에게 한 번 박힌 습(習)은 쉽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지. 하여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귀담아 들어줬으면 좋겠네.
위에 있는 사진 보았나? 바로 자네 외삼촌이 경영하는 남양유업의 아이스크림 사업 브랜드일세. '백미당(百味堂)'이라고 읽는 건 알겠지? 뜻도 아는가? 백미는 '온갖 맛'이란 뜻이라네. 당은 '집'이란 뜻이고. '백미당'은 '온갖 맛난 것을 파는 집'이란 의미일세. 한자에서 백(百)은, 천(千)이나 만(萬)도 그렇지만, 꼭 그 숫자만큼의 수만 나타내지 않고 '많다'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네. 그래서 '백미'를 '온갖 맛'이란 뜻으로 풀이한 것이지. 창업 연도가 1964년으로 돼있는데, 저건 남양유업의 창업 연도라네. 외삼촌이 경영하는 남양유업의 이미지가 좋았으면 저 브랜드 어딘가에 그 이름을 넣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뺀 것이라네. 어떤 이는 백미당이란 아이스크림 가게가 196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는데, 말 그대로 오해일세.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괜히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사진은 서울 종로서적에서 찍은 것일세. 매장이 종로서적 내에 있더군. 매장에는 자네보다 약간 어린 학생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네. 내가 자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어린 학생들 대신 자네가 서빙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거네. 물론 자네의 정체는 노출시키지 않아야겠지. 한 1년만 매장에서 서빙을 해보게. 그러면 동시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절절히 알게 될걸세. 그걸 알게 되면 자네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네.
그런데 자네가 하고 싶어도 자네의 부모나 외삼촌이 만류하지 않을까 싶군. 자네의 현재를 지금처럼 만든 이가 그들이니 그럴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제 자네도 성인이니 그 만류를 뿌리치고 나의 제안대로 한 번 해보게나. 분명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일세.
초면인데 함부로 반말을 해서 미안허이. 그러나 연배상으로 자네의 아버지 뻘이 되기에 말을 놓은 것이니 크게 허물하지는 말게. 잘 지내시게나. 앞으로 흐뭇한 소식만 있기를 고대하겠네.
2019. 7. 24,
찔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