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 푸르메 어록
김영두 엮음 / 푸르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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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일곱 번째 서평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 김영두 풀어씀




그 어떤 도가니 속에서도 정결하여라




퇴계에 관한 책이다. 책은 이를테면 백과사전과 같이 따라오는 작은 단행본과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짐짓 진중하다. 퇴계의 학문적 이론과 실제를 따로 모아 만든 성격의 이 책은 말 그대로 중요한 부분만 따로 뽑아 구성 편집해 출간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의 절반 이상은 퇴계의 학문을 이으며 그의 문하에 들어 공부하던 학봉 김성일의 저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뒷부분에 곁들인 해설 부분을 참조하면 ‘퇴계어록’쯤 되는 이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몇대를 거쳐 몇몇 뜻있는 학자와, 스승의 대한 경외심으로 퇴계의 학문을 준수하려 노력했던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 재차 수정되고 다듬어졌다는 사실을 접할 수 있다.




책은 퇴계가 평소 제자들에게 강론하던 내용과 그의 일상의 면모들을 정리하여 20개의 주제별로 구분하면서 이에 대한 각각의 해석과 더불어 원문을 싣는 구성으로 어렵지 않으면서 내실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성리학에 바탕은 둔 퇴계의 기본적인 학문의 소개를 선두로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지양-수양), 독서(책 읽기), 출처(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도리), 심법(선생의 마음가짐), 자봉(선생의 일상생활), 사수(선물을 주고받는 의리), 교인(제자를 대하는 선생의 태도), 향당(선생의 시골살이) 등등 세세한 기준에 맞게 나뉘어져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 없이 읽어갈 수 있게 구성한 것도 전자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이 책을 정리하고 구성한 저자 김영두는 20가지의 주제에 바탕을 둔 이러한 구성의 배려가 18C 이전에 퇴계의 관한 단행본과 같은 성격의 서적들이 세간에 두서없이 떠도는 것을 한데 모아 정리하고 새롭게 편찬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학문을 하는 도리를 반드시 정성을 하나로 모아 오래 한 다음에야 이룩할 수 있다. 들락날락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다말다 한다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학문을 이루겠는가”




“수양이란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늘 쉬지 않고 쉬운 것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지양(수양)편에서 인용




이번 책은 퇴계 스스로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주자의 학문과 그 이론이 많이 거론되고 있어 퇴계 사상의 근본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주자의 학문적 영향에서 더 발전해나가는 퇴계만의 학문의 과정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퇴계 이황 그는 성리학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그 철칙을 준수하려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현실과의 중용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긴밀하게 적용시켰던 그는, 어찌보면 성리학자이며 유학자 그리고 현실과의 긴요한 유대감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깊이감 있는 실학자의 면모를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제자들과의 관계를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 유지하며 틀렸다고 지적하기 보다는 틀린 것을 깨닫게 도와주기 위해 사고(思考)의 시간적 여유를 주려 노력했던 그는 진정한 스승이자 학자가 아니었을까.




“~~~ 그러나 반드시 당신이 옳다고 하지 않고, 다만 나는 이럴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다, 고만 하셨다”




때때로 제자들의 지나친 경외심이 드러나는 발언 등이 눈에 띄는 표현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퇴계의 어록을 근본으로, 스승 퇴계의 학문과 인간 퇴계의 진솔한 모습을 접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갖는다.




퇴계와 같은 이의 존재가 아쉽기만 한 시대다. 그러나 모르긴 해도 어딘가에서 그와 같은 대학자의 풍모와 학문으로 외길을 걸어가는 이가 꼭 한 명쯤은 있지 않겠는가.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지만 역사속의 인물들의 존재감은 시대가 변해갈 수록 그 가치가 더욱 공허하게 커지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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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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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여섯 번째 서평

절은 절하는 곳이다-정찬주 지음




마음으로 읽는 사찰 이야기




“누각에 올라보니 오후 햇살이 흰 빨래처럼 널려 있다”




그가 서 있던 곳은 분명 부처의 숨소리가 묻어나는 어느 조그마한 사찰 누각이었을 법하다. 그 눈에 비친 수많은 햇살가지의 모습이 하얀 빨래 같다는 문장은 소설가인 동시에 구도자의 길을 갈망하여 늘 불심과 동행하는 작가 정찬주 만의 표현이며 미학이 번져드는 문장이다.

정찬주. 저자와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인가보다. 불교와 관련해서 소설과 산문집 등을 집필해왔다는 것하며 최근의 그의 일상이 농사일과 집필이라는 이야기도 이번에 처음 접하는 생경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근한 인상은 어찌된 영문인지 낯설지가 않다.

책은 말 그대로 방방곡곡 또는 심산유곡에 자리한 소소하고 아담한 작은 사찰에서부터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사찰까지 그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 그 순간의 감상과 느낌을 기록하고 있다. 마치 사찰지도를 보는 듯 하다고 할까.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전라남도와 그 이웃인 경상북도 그리고 제주도까지 대한민국에 있는 사찰이 다 소개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큼은 다 그의 방문을 기꺼이 반기지 않았을까 싶다.




각 사찰마다 전해오는 역사적 배경지식의 부연설명과 더불어 빼어난 경치와 풍광을 담은 그만의 사진 예술을 접하는 것 또한 책이 선사하는 색다른 별미일 것이다. 일출과 일몰, 주변 환경과 알맞게 조화를 이루면서 형성되고 다듬어져 왔던 고찰의 건축물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다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사진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작가의 글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책의 의미와 가치는 저자가 다리품을 팔며 찾아가는 곳곳마다 스스로의 해탈을 위해 지치지 않으며 꾸준하게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는 어쩌면 자신만의 화두를 정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구도자의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정찬주는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다. 과거의 시간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를 숨 쉬게 하는 시간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를 나답게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잘 사는 일일 터이다”

                                                                    -본문 P. 261中




산을 오를 때와 내려갈 때의 심상은 사뭇 다르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것을 딱 꼬집어서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차이를 적어내기란 객관성의 기준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조금은 곤란한 일이 되어버리곤 한다. 분명한 것은 심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는 인간내면의 새로운 움직임과 그것으로 인한 신선하고 유연한 자신만의 성찰을 만끽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어쩌면 그는 사찰을 찾아 올라가는 산길에서 이미 불심 하나를 발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의 불심과 더불어 고즈넉하니 너무 무겁거나 또는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 진득하게 앉아있는 대웅전과 각각의 어여쁜 단청. 그 빛을 같이 견주는 하늘 빛 사진이 곱게 실린 책이다. 또한 친절하게도 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교통편과 연락처를 일일이 기록하고 있기에 고맙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책이 세간의 혼돈으로 어지럼증을 앓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제공하는 청량제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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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우리 시대의 스승 열여덟 분의 행복법문
고산스님 외 17인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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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 번째 서평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시대의 스승 열여덟 분의 행복법문)

 

진정한 수행을 위한 충언집

 

행복과 사랑 그리고 진정한 삶에 있어 의구심들이 많은 이들을 위한 충언집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책 속에는 어려운 불교 경전이 자주 소개되어 있지만, 열여덟 분의 스님들을 통해 그 이야기는 쉽게 해석되는 동시에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참된 삶과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선사하고 있다.

 불교신자가 아닌 이에게는 다소 낯선 경전의 이야기들일 수도 있겠다. 일부에 있어서는 경전의 내용을 직설적이며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풀이하는 내용이 있는가하면, 다양한 예화와 스토리를 들어 보편적인 접근성을 넓히는 식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책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경전의 이해와 더불어 일찍부터 부처의 제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인생 선배들의 삶의 진솔한 경험과 그 속에 녹아드는 불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접해볼 수 있다는 데 그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저 사랑을 논하는 담론이 아닐까 했지만, 기실 내용은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를 테면 종진 스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무 스님의 ‘인생의 빚은 어떻게 갚는가’, 도법 스님의 ‘나를 존재케 하는 모든 생명이 부처’, 무여 스님의 ‘잘 사는 법과 잘 죽는 법’ 과 같이 행복에만 머물지 않으면서 세상의 모든 다양한 시선의 흐름이 담겨져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을 하나다. 스님들이 세인들에게 던진 질문의 시작은 나를 찾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나로 인해 시작과 끝이 나는 일이기에 나의 정신과 심신이 올곧아야 한다는 사실은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느끼게 되는 대목임에는 분명하다. 나를 찾아가는 지루하고 외로운 그 길을 동행하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과 의구심들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 불심이고 불경이라는 진리를 책은 나직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중 하나를 소개해보자. 인도 다람살라 수행 23년 청전 스님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한 스님의 이야기는 ‘행복은 치열한 신앙의 희생 위에서만 꽃핀다’라는 제목으로 활자화되어 독자를 찾아온다.

 다른 스님들과는 달리 청전스님은 달라이 라마의 인연으로 티베트 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보좌하며 수행중이라 했다. 스님의 ‘폐관 수행’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인 동시에, 한 인간의 삶 위에 우뚝 솟아오른 종교적 힘과 그 위엄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명제를 떠올리게 했던 요인이기도 하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빛이 차단된 움막에서 금식으로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선정을 하는 그들의 행위는 무모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폐관 수행이 없어지지 않은 채 아직까지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은 행복과 사랑, 참된 인생과 종교관 등과 같은 이번 책이 선사해주는 여러 생각과 주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깊은 의미를 남기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폐관 수행자는 수행에 앞서 서약을 합니다. 부처님과 스승 앞에서 죽음이 와도 이 수행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수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또 다른 화두로 다가온다. 폐관 수행을 앞두고  자신의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죽음이 와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 처절한 의지는 차라리 그 스스로가 이미 선정을 이뤄낸 마음가짐을 지닌 이로서 이미 반열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삶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흐름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고, 사람들 관계와 관계 속에서 느끼게 되는 긍정적 감정의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울려서 불심에 온전한 열기를 더해주는 따뜻한 에세이 같은 책이다. 생각할 것들이 많을 때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 아닐까. 어린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하듯, ‘사랑할 시간을 그리 많지 않다’ 이번 책은 서툰 걸음으로 문득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잊고 주저하는 이들에게 나름의 길을 열어줄 수 있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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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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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네 번째 서평

아흔 개의 봄-김기협지음




 이놈아~~고맙다




“갈 테면 가라, 이놈아~ 이놈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지요~ 아무것 아닌 게 나는 좋아요~”




 아흔을 넘긴 노모는 오늘도 아들을 향해 정이 흠씬 묻어나는 타박으로 인사를 건넨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늘 그렇게 장난처럼 농처럼 때로는 서너 살 어린아이이의 투정처럼 거대하지도 거창할 것 없이 소박하지만 기꺼이 진실되며 아기자기하다. 

 서해문집에서 출간된 ‘아흔 개의 봄’은 역사학자로 알려진 저자 김기협이 어머니와 아들 바로 그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노환으로 치매를 앓는 아흔이 넘은 어머니, 그 옆에서 시종일관 병수발을 들며 병석에 계신 노모를 챙기는 예순이 넘은 아들의 이야기는 모자간의 관계에서 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깊이 있는 사색으로의 여정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 책은 어머니에 의해서,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로부터 생겨난 사랑과 애착 그리고 삶의 진솔한 이야기에게 바치는 소박한 찬사일 것이다.




 모자를 소개함에 있어 다양한 수식이 따라오지만 중요한 것은 아들이 갖는 어머니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일 것이며, 한때 잊었던 기억을 불러모아 곱게곱게 다시 완성하며 남은 일생을 순종과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어머니가 갖는 아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녀가 오래전 경성제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당대 역사학자를 만나 결혼을 해 칠년을 사는 동안 자식을 낳았더라는 이야기. 아버지에게 이미 전처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가 후처라는 현실감은 오히려 어머니 본인 보다는 그 자식들에게 더 큰 상처로 남았더라는 이야기. 그러나 어수선한 시국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억척 어머니의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한 가장의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퇴임을 맞을 때까지 가정을 지키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회적 기반을 완성했더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호기심의 동기부여로 치부되기에는 나름의 많은 의미를 갖는다.

 저자 김기협은 말한다. 어머니 곁에서 간병을 하며 시병일기를 쓰고 책으로 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머니와 자신과의 어색하고 서먹한 지난 시간들을 극복하며 화해와 용서로써 모자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말이다.




 책은 어머니의 시병일기가 주를 이루며,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옮긴 이후 방문기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종일관 저자는 감성을 조율하며 객관성을 확보해간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향한 솔직하면서도 순수한 애정을 끊이지 않게 표현해주고 있다.

 치매에 걸렸지만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으면서 지나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많은 생각을 하는 어머니,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역시나 과거의 어느 자리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만나는 조용하고 섬세한 여행을 떠난다.

  아흔 개의 봄을 만들어가는 어머니가 저명한 학자이다 보니 책속에는 어머니를 따르던 많은 지인들이 소개된다. 문화적 내지는 종교적 이질감을 배제하고 오로지 스승과 제자, 동료 또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훌륭한 조언자의 위치에 섰던 어머니는 다시 어린 아이처럼 많은 이성적 부분을 잃어버린 현재의 모습에서도 늘 그들에게 있어 원대한 이상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지 않을 수 없으며, 마지막 길을 피해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책 ‘아흔 개의 봄’을 접하면서 저자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꼭 나이가 들고 치매가 올 지언정,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접할 때는 그런 요소들이 다 우울한 색채를 갖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칭찬도 좋고요~ 아첨도 좋아요~ 좋은 말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요~”

 .....................




“그래라, 와줘서 고맙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아흔의 어머니. 진심어린 마음의 교감으로 떠났던 어머니와 아들의 여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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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버돗의 선물 - 한정판 스페셜 기프트 세트 (스태들러 색연필 세트 + 그림엽서 + 케이스)
테드 겁 지음, 공경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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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흔 세 번째 서평

MR. 버돗의 선물




더불어 사는 삶의 축복







한권의 책을 다 읽은 후 은근한 기대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혼자만이 간직하고픈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가 존재할 것 같은 기대감 같은 것일까.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이를테면 자잘한 일상의 그것마저도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누군가에게 꺼내어 보인다거나 또는 그 어딘가에서 피곤한 일상을 접고 무거운 몸을 쉬어 머물다 갈수 있다는 희망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대중매체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하던 ‘멘토’라는 어휘를 좋아한다. 거드름을 피울 것도 없지만 그저 그 의미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게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선배라고 명명할 수도 있는 좋은 의미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인생의 지침을 아무런 대가없이 나눠줄 수 있는 그 존재의 가치에 대해 경외심을 느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MR. 버돗의 선물은 미국이 대공황으로 접어들었던 시절 한 평범한 개인이 주변 이웃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5달러씩 전해준 내용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책은 실제 주인공 샘 스톤(그는 버돗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탄생시켜 이웃에게 선행을 베푼 장본인이다)의 손자에 의해 구성되고 집필되었다. 그가 외할머니에게 받은 낡은 가방을 여는 순간 감추어지고 지워졌던 사연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책은 샘 스톤이 의도적으로 탄생시킨 인물 MR. 버돗에게 도움을 받았던  가족들의 후손을 찾아가 당시 그들이 어떻게 길고 지난한 공황기를 지나왔는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더불어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기를 거부했던 이름없는 천사의 주인공 샘 스톤 그의 가족사 이야기가 6장의 챕터로 구분되어 편집되어 있다.




모 일간지에 샘 스톤이 실었던 광고는 획기적이면서도 황당한 광고임에는 분명했겠지만 어딘지 애잔한 정이 느껴지는 광고였을 법하다. 당시 대부분의 가장은 실업상태이거나 일을 하더라도 가족 유지를 위한 금액치고는 턱없이 부족한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서너 명의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과 입힐 옷가지의 부족으로 힘들어 했음을 편지에 기록하고 있다.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너무나 평범한 익명의 이웃이 많은 이들에게 5달러라는 금액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주된 요지이겠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진정성은 무수히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시대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잠시나마 행복감과 감사함 그리고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됐다면 적어도 5달러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일은 1930년대 대공황을 힘겹게 지나오던 이들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의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샘 스톤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 중에는 공황과 더불어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한 계층들이 많았다. 왜 샘 스톤은 그들에게 유독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샘 스톤 그 자신의 인생 스토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민지라는 사회 구조적 결점을 가지고 사회적 편견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성장해야 했던 샘 스톤 그 자신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대공황으로 직장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웃들의 지친 삶과 비슷하게 닮아 있었던 것일까.

거두절미하고 책은 샘 스톤의 삶에 기대어 MR. 버돗의 이름으로 빌려 ‘당신이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면 곧 좋은 날이 올 것이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쨍하고 해 뜰날 돌아온단다’를 열창했던 여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이 불렀던 노랫말처럼 1930년대 전후의 캔턴 시에서 숨죽이며 살아냈던 그들에게 MR. 버돗은 당장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제까지나 포기하지 않는 당신에게 찾아와줄 긍정의 선물인 ‘희망’을 노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빛깔의 해가 솟아올라 그들이 어떤 기분으로 하늘높이 도약하는 해를 바라보았는지는 사람마다 각자의 삶과 인생관이 다르기에 뭐라 말하기 어렵겠지만 책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주어진 삶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으며, 행복이란 것 또는 사랑이라는 거룩한 명제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왔던 최소한의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 무엇을 감히 삶의 진정성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든 실직했든 우린 행복했어요.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고 서로 사랑했으니까요. 우린 살아남았어요. 살아냈다고요.”




언제든 어디에서든, 살아간다는 것은 그 방식이 여러 가지 빛깔처럼 다양하고 서로 같지 않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축복 받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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