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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평점 :
마흔 네 번째 서평
아흔 개의 봄-김기협지음
이놈아~~고맙다
“갈 테면 가라, 이놈아~ 이놈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지요~ 아무것 아닌 게 나는 좋아요~”
아흔을 넘긴 노모는 오늘도 아들을 향해 정이 흠씬 묻어나는 타박으로 인사를 건넨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늘 그렇게 장난처럼 농처럼 때로는 서너 살 어린아이이의 투정처럼 거대하지도 거창할 것 없이 소박하지만 기꺼이 진실되며 아기자기하다.
서해문집에서 출간된 ‘아흔 개의 봄’은 역사학자로 알려진 저자 김기협이 어머니와 아들 바로 그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노환으로 치매를 앓는 아흔이 넘은 어머니, 그 옆에서 시종일관 병수발을 들며 병석에 계신 노모를 챙기는 예순이 넘은 아들의 이야기는 모자간의 관계에서 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깊이 있는 사색으로의 여정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 책은 어머니에 의해서,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로부터 생겨난 사랑과 애착 그리고 삶의 진솔한 이야기에게 바치는 소박한 찬사일 것이다.
모자를 소개함에 있어 다양한 수식이 따라오지만 중요한 것은 아들이 갖는 어머니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일 것이며, 한때 잊었던 기억을 불러모아 곱게곱게 다시 완성하며 남은 일생을 순종과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어머니가 갖는 아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녀가 오래전 경성제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당대 역사학자를 만나 결혼을 해 칠년을 사는 동안 자식을 낳았더라는 이야기. 아버지에게 이미 전처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가 후처라는 현실감은 오히려 어머니 본인 보다는 그 자식들에게 더 큰 상처로 남았더라는 이야기. 그러나 어수선한 시국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억척 어머니의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한 가장의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퇴임을 맞을 때까지 가정을 지키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회적 기반을 완성했더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호기심의 동기부여로 치부되기에는 나름의 많은 의미를 갖는다.
저자 김기협은 말한다. 어머니 곁에서 간병을 하며 시병일기를 쓰고 책으로 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머니와 자신과의 어색하고 서먹한 지난 시간들을 극복하며 화해와 용서로써 모자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말이다.
책은 어머니의 시병일기가 주를 이루며,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옮긴 이후 방문기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종일관 저자는 감성을 조율하며 객관성을 확보해간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향한 솔직하면서도 순수한 애정을 끊이지 않게 표현해주고 있다.
치매에 걸렸지만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으면서 지나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많은 생각을 하는 어머니,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역시나 과거의 어느 자리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만나는 조용하고 섬세한 여행을 떠난다.
아흔 개의 봄을 만들어가는 어머니가 저명한 학자이다 보니 책속에는 어머니를 따르던 많은 지인들이 소개된다. 문화적 내지는 종교적 이질감을 배제하고 오로지 스승과 제자, 동료 또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훌륭한 조언자의 위치에 섰던 어머니는 다시 어린 아이처럼 많은 이성적 부분을 잃어버린 현재의 모습에서도 늘 그들에게 있어 원대한 이상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지 않을 수 없으며, 마지막 길을 피해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책 ‘아흔 개의 봄’을 접하면서 저자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꼭 나이가 들고 치매가 올 지언정,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접할 때는 그런 요소들이 다 우울한 색채를 갖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칭찬도 좋고요~ 아첨도 좋아요~ 좋은 말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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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라, 와줘서 고맙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아흔의 어머니. 진심어린 마음의 교감으로 떠났던 어머니와 아들의 여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