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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버돗의 선물 - 한정판 스페셜 기프트 세트 (스태들러 색연필 세트 + 그림엽서 + 케이스)
테드 겁 지음, 공경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마흔 세 번째 서평
MR. 버돗의 선물
더불어 사는 삶의 축복
한권의 책을 다 읽은 후 은근한 기대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혼자만이 간직하고픈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가 존재할 것 같은 기대감 같은 것일까.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이를테면 자잘한 일상의 그것마저도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누군가에게 꺼내어 보인다거나 또는 그 어딘가에서 피곤한 일상을 접고 무거운 몸을 쉬어 머물다 갈수 있다는 희망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대중매체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하던 ‘멘토’라는 어휘를 좋아한다. 거드름을 피울 것도 없지만 그저 그 의미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게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선배라고 명명할 수도 있는 좋은 의미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인생의 지침을 아무런 대가없이 나눠줄 수 있는 그 존재의 가치에 대해 경외심을 느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MR. 버돗의 선물은 미국이 대공황으로 접어들었던 시절 한 평범한 개인이 주변 이웃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5달러씩 전해준 내용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책은 실제 주인공 샘 스톤(그는 버돗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탄생시켜 이웃에게 선행을 베푼 장본인이다)의 손자에 의해 구성되고 집필되었다. 그가 외할머니에게 받은 낡은 가방을 여는 순간 감추어지고 지워졌던 사연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책은 샘 스톤이 의도적으로 탄생시킨 인물 MR. 버돗에게 도움을 받았던 가족들의 후손을 찾아가 당시 그들이 어떻게 길고 지난한 공황기를 지나왔는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더불어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기를 거부했던 이름없는 천사의 주인공 샘 스톤 그의 가족사 이야기가 6장의 챕터로 구분되어 편집되어 있다.
모 일간지에 샘 스톤이 실었던 광고는 획기적이면서도 황당한 광고임에는 분명했겠지만 어딘지 애잔한 정이 느껴지는 광고였을 법하다. 당시 대부분의 가장은 실업상태이거나 일을 하더라도 가족 유지를 위한 금액치고는 턱없이 부족한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서너 명의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과 입힐 옷가지의 부족으로 힘들어 했음을 편지에 기록하고 있다.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너무나 평범한 익명의 이웃이 많은 이들에게 5달러라는 금액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주된 요지이겠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진정성은 무수히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시대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잠시나마 행복감과 감사함 그리고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됐다면 적어도 5달러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일은 1930년대 대공황을 힘겹게 지나오던 이들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의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샘 스톤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 중에는 공황과 더불어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한 계층들이 많았다. 왜 샘 스톤은 그들에게 유독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샘 스톤 그 자신의 인생 스토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민지라는 사회 구조적 결점을 가지고 사회적 편견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성장해야 했던 샘 스톤 그 자신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대공황으로 직장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웃들의 지친 삶과 비슷하게 닮아 있었던 것일까.
거두절미하고 책은 샘 스톤의 삶에 기대어 MR. 버돗의 이름으로 빌려 ‘당신이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면 곧 좋은 날이 올 것이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쨍하고 해 뜰날 돌아온단다’를 열창했던 여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이 불렀던 노랫말처럼 1930년대 전후의 캔턴 시에서 숨죽이며 살아냈던 그들에게 MR. 버돗은 당장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제까지나 포기하지 않는 당신에게 찾아와줄 긍정의 선물인 ‘희망’을 노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빛깔의 해가 솟아올라 그들이 어떤 기분으로 하늘높이 도약하는 해를 바라보았는지는 사람마다 각자의 삶과 인생관이 다르기에 뭐라 말하기 어렵겠지만 책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주어진 삶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으며, 행복이란 것 또는 사랑이라는 거룩한 명제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왔던 최소한의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 무엇을 감히 삶의 진정성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든 실직했든 우린 행복했어요.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고 서로 사랑했으니까요. 우린 살아남았어요. 살아냈다고요.”
언제든 어디에서든, 살아간다는 것은 그 방식이 여러 가지 빛깔처럼 다양하고 서로 같지 않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축복 받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