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메이카 하시모토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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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여행은 단지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위해서가 아닌, 결국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오기 위해 선택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되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그 말을 믿는다. 인간은 현재의 자신을 떠나서는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당장 떠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는 누군가의 결정 역시 존중하고 충분히 헤아려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선택이 도피의 성격이든, 탐험의 성격이든지 간에 이 모두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성숙해지기 위해 떠난다. 여기 어린 소년도 그랬던 것 같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애팔레치아 산맥과 트레일에 관련된 지도에서 찾는다. 비스듬하게 사선으로 기울어진 길이 꽤 길게 이어진 모습이다. 작품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스루 하이크전 구간을 트레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열두 살의 소년은 왜 홀로 거칠고 험난한 트레일을 선택했던 것일까.

소설의 주인공 토비는 어린 소년이다. 그는 친구 루카스와 함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하나씩 완성해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친구를 잃는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도망치듯 홀로 길을 떠나게 된다. 뭐랄까. 친구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함에 대한 반감과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친구와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소년은 배낭에 식량과 텐트, 지도와 필요한 옷가지를 싣고 자신만을 위해 헌신해주던 할머니에게도 그저 쪽지만 남긴 채 오로지 홀로 나아간다.

 


작가는 상처받은 소년의 외로운 여정에서 다양한 인연들을 만나게 한다. 그 첫 번째가 떠돌이 개 무스다. 그리고 비슷한 상처로 인해 힘들어하는 인물인 숀과 덴버. 그리고 관계과 우정이라는 것에 대해 주인공에게 새로운 각성을 만들어주게 되는 인물들을 차례대로 만나게 해주고 있다.

작품에서 생각해볼 것은 상처받은 소년의 성장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시간이 가면서 잊히는 식의, 그렇게 스스로 상처를 끌어안는 방식의 내적인 성장통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진 자신은 처음부터 불행했으며,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과 얽힌 이들에게 불행만을 가져오는 부정적 이미지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옥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만의 감옥에서 걸어나오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크고작은 사건과 사건이 이어지고,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이를 극복해가는 자아 성장과 성찰이 작품의 주된 요지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토비는 자신이 만든 세상을 깨고,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면서 성숙해진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토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매순간 두려워하고 도망치려는 토비는, 어느새 자신이 스스로 감추어버린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위로해줄 수 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중요한 건 트레일을 완주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삶에서 소중한 걸 찾고 그걸 위해 싸우는 것이다. 중요한 건 우정과 모험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깨닫는 것이다.” p319

 


어쩌면 인생에서 중요한 건 행운이나 불운 같은 그런 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보답으로 남에게도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것, 그런 게 아닐까 싶다.”p181

 


우리는 그걸 견뎌내며 살아남는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p202

 


견뎌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그 일만큼은 어렵다. 누구나 지고가야할 무게는 다 고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어린 소년의 시선이 삶의 무게를 이야기할 때, 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여느 기타 성장소설이 주는 감흥보다 더 진중하고 한층 더 무거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이 어쩌면 어느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상실감에 기인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는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또 한편으로는 어른이라고 성숙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하는 중이다. 상실감과 낭패감과 좌절감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견디어내는 게 삶이라는 생각을 하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자꾸 사심으로 빠져들어 유감이지만 이제 객관적으로 결론을 내려보자.

이번 책 메이카 하시모토의 트레일’. 작지만 커다란 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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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eiss 2021-12-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세련되게 쓰시네요👍🏻

월천예진 2021-12-04 12:44   좋아요 1 | URL
과찬이세요. 부족함이 많지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han22598 2021-12-0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월천예진님의 글솜씨의 진가를 알아보는 분이 나타나셨네요!!!

월천예진 2021-12-0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별 말씀을요.ㅜㅜ. 잘 지내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