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방안을 체계화하는 일은 왜 이렇게 드문 일이 되는 걸까요?

자본주의 사회라서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많이 챙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일까요? 혹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서 일까요?

아래 두 문장으로 그려지는 상황도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이 정말 중요한 사회라면 이런 식의 의사결정이 일어날 수가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희미해지고 자본주의가 강력해지는 것 같습니다.

왠만한 것들은 모두 개인이 해야하는 나라입니다. 법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 바뀌지 않는 것은 헌정 역사가 짧기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의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을 통해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이 삶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가 고취시키고 사람들을 움직이려는 다양한 욕망보다 생명의 존엄성이 우선해서,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이기를 바랍니다.

회사는 목장갑과 반코팅 장갑 한 켤레씩을 지급한 것 외에 뜨거운 물체를 다루는 작업을 할 때 손이 너무 뜨거우면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지침을 주지 않았다.

지금의 회사에서 지급한 작업용 재킷의 소재는 화학섬유인 폴리에스터와 폴리우레탄이다. 화학섬유는 불이 붙으면 화르륵 타오르지 않고 조용히 녹아서 뚝 떨어지는데, 녹은 섬유가 맨살에 달라붙으면 심각한 화상으로 이어진다.

‘좋은 사회‘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일을 하든 자긍심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한 가지 답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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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관리자가 작업복에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가 입는 옷이 달라진다는 게 답답합니다."

"그냥 여름이 되면 주고, 겨울이 되면 주는 거죠. 이걸 주면 이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걸 주면 더 안전할까 같은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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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계발책을 읽고 실제로 실천해보는 기획이
재미있습니다. 가볍게 읽고 있어요.


2.
아마도 여기에 ˝불태웠다˝고 번역한 원문의 단어는
burned 일 겁니다.

요즘엔 USB나 외장하드, 클라우드 등에 저장하는데
옛날에는 대용량 파일이나 사진, 음악, 영상 등을
CD에 저장했고, 이 때는 ‘CD를 굽는다‘라고 했어요.
이런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꽤 많을 겁니다.

혹시나 이 책의 중쇄를 찍을 때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 브래드가 대학교 1학년 때 불태웠다는 수백 장의 CD가 들어 있던 정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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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상상해봅니다.

김장하 어르신과 홍세화 선생님이
생전에 만나신 적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장발장 은행은 형평운동과 같은 정신이라고
대략 이해가 됩니다.
(형평운동은 다큐멘터리와 취재기를 통해
알게 된 게 전부입니다.)

만약 만나셨다면 교류도 계속하시고
장발장은행도 후원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왠지 만나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만나셨다면 의기를 투합하셔서
한국사회가 좋아지는 데
혹은 더 빠르게 나빠지지 않도록
더 다양한 일들을 하셨을 것 같아요.
우리 나라와 젊은이들을 아주 아끼시고
그 마음을 직접 행동으로 연결하신다는 면에서
닮으신 것 같아요.

각각의 자리에서
각각의 몫으로 세상을 좋게 만들가 위해
애쓰신 두 분이
보다 직접적으로 공명하셨더라면 어땠을까,
혼자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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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마타타 2025-04-1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 속에 모시고 있는 두 분의 성함이 한 문장 안에 나와서 댓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 속의 영원한 선생님 홍세화 선생님과 신이 있다면 바로 그런 모습일 것이 분명한 김장하 선생님. 님의 상상이 반가워 댓글 달아봅니다.
 

자기 자신과 싸우기보다 남과 경쟁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비교라는 단어는 오로지 남과 견준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것이 대학간판이든 명함이든 소유물이든 남과 가진 것으로만 비교할 뿐,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된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보다 더 성숙된 내일의 관계를 비교하지 않는다. 존재와 관계의 끊임없는 자기 성숙이 사라진 것이다. 대기만성형의 석학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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