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경험, 읽은 후 갖는 공감대는 한 편을 읽어서는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일까요? 어떤 글을 계기로 발현이 되겠지만, 밑바탕을 이루고 있을 공통되는 읽기의 시간과 문장들 때문에 더욱 가깝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새로운 «설자은»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유튜브에서 작가가 추천한 찬호께이 작가의 «13•67»을 똑같은 서점에서 사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그후 «고독한 용의자»와 «망내인»을 사둔 것 같은데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추리소설은 겨울에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고구마와 차가운 귤을 번갈아 먹다가 읽다가 자다가 하며 읽는 호흡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읽고 쓰는 사람들 사이는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가깝다. 한 번 만난 적 없이도 매일 만나는 이들보다 가깝다. 온기도 떨림도 전해지는 그 가까움 속에서, 독자라는 상대를 궁금해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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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데 고유의 내용은 한 점 없는 책과 서툴지만 작가가 느껴지는 책 중 언제나 후자를 고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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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의미이겠지요.
2000년대 초반, 어쩔 수 없이 운전면허를 땄고, 저 자신에게나 주변사람들에게 했던 이야기는 ‘기름값 100만원 어치만 먼저 운전해보시라. 잘 알고 있는 주로 다니던 길에서. 그러면 날씨, 자동차 통행량, 사람들의 수 등 점차 다양한 상황에 익숙해질테니, 조금씩 먼 곳으로 넓혀가시라’였습니다.

많은 사무직들은 문서를 만들어서 밥을 먹고 삽니다. 만약 분석보고서를 쓰는 업무라면 내외부에 대해 철저하게 파악해야 하고, 벤치마킹을 한다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생성형AI를 활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보의 정확성이나 시사점을 AI 결과값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그 문장을 썼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무릇 어떤 것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자 기본기라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100권을 돌파한 다음에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책 고르기에는 셀 수 없는 기준이 있겠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좋아하는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책을 따라 읽는 것, 전작주의자가 되는 것, 책 선택에 우연을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그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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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6-2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는 값 ‘100’을 우리말로는 ‘온’이라 하고, 한자로는 ‘백(百)’이라 합니다. 우리말 ‘온’은 ‘모두·다’와 ‘차다(참)·가득’과 ‘빈틈없다’를 뜻하면서, ‘오롯하다·오달지다·올차다·옹글다’로 잇고 ‘왼·오른’을 이루는 뼈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온(100)’을 해보거나 겪는다고 할 적에는 ‘많다’가 아니라, ‘오롯이·제대로·참하게·차근차근·빈틐없이·모두·다’ 하거나 겪으면서 올차게 영글어서 알아차린다고 하는 밑뜻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온날잔치(백일잔치)’를 하는 뜻을 보아도, 이제 아기가 오롯이 몸마음이 선 때와 나란히 ‘아기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어버이로서 무르익었다는 뜻을 고스란히 기립니다. 또한 ‘온누리’라는 낱말이 ‘세계·우주’를 가리키는 결을 헤아려 보아도, ‘온’은 ‘많다’가 아니라 ‘고루두루 품으면서 빛나는’ 길을 그린다고 하겠습니다.
 

(책을 쓰고 싶다는) 희망이 조금은 (책을 쓸 수 있겠지? 하는) 기대에 가까워집니다.

간단한 기록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더 긴 글도 쓸 수 있다. 곁에 앉은 사람들을 귀 기울이게 하는 입담 좋은 사람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우연히 남긴 짧은 메모가 몇 년 뒤 몇 권이 되기도 한다. 삶과 창작 사이의 벽은 그리 두껍지 않다. 그것은 저쪽이 어른어른 비치는 얇은 막에 가깝다. 손가락으로도 뚫을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두려워할 필요 없는 막을 함께 상상하고 걷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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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편을 읽었습니다.
다른 평론가의 글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점은 영화를 문학으로 풀어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은혜 편집장의 편지가 엽서로 들어있습니다. 다른 영화글과 다르게 작가가 온전히 길어올린 글이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가 자기 힘의 끝까지 가서 그 글들을 건져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왜 이 영화들을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적 영화는 ’제7의 예술‘이라고 배운 것 같습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고 영화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은 사람의 인생을 끌어당기기도 합니다. 뭔가 매력적이어서 또 보고 싶고 다른 영화도 보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는 필름포럼에서 열린 임재철 선생님 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은 이 시대에 봐야 하는 영화를 필름으로 상영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유운성 평론가).

영화는 재생이 가능한 매체이기도 하지만, 관객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다른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10대, 30대, 50대에 볼 때마다 달라지는 영화를 인생의 영화로 추천했습니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부운>과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초여름(이른 여름)>을 꼽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루세 미키오 감독과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소개한 임재철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홍성남씨의 추천으로 봤습니다. 당시에는 어려웠는데,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혼자서 보면 좋은 예술이지만, 보고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문학 텍스트처럼 꼼꼼하게 쓴 글이 색다르고 재미있습니다. 김유태 작가가 다른 작가들보다 잘 풀어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영화는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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