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항상 머무는 나무줄기 주위에서 나의 의식적인 무의식을 거닐게 한다. 나는 머물러 있는데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내 운명을 거닐게 하고, 나는 따라가지 않는데 홀로 흘러가는 내 시간을 거닐게 한다. 나의 지루함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지루함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감옥 철창 안쪽에 창문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고, 유리차에 어쩔 수 없이 쌓인 먼지 위에 대문자로 내 이름을 씀으로써 죽음과의 계약서에 매일 서명한다.

죽음과의 계약이라고? 아니, 죽음과도 약속하지 않겠다. 나처럼 사는 인간은 죽지 않는다. 시들어버리고, 끝나버리고, 말라버릴 뿐이다. 그런 인간이 살던 장소는 그가 사라진 후에도 남고, 걷던 거리도 변하지 않고, 살던 집에도 누군가가 계속 살아간다. 그것이 전부이며, 우리는 그것을 무라고 부른다. 그러나 무라고 부정하는 비극마저도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들 앞에 내세울 수 없으니, 진실과 삶의 무기력한 표명인 우리, 창틀 안과 밖에 더께로 앉은 먼지 같은 우리, ‘영원한 밤’이 남편인 ‘혼돈’을 잃고 ‘신’과 결혼하는 바람에 신의 의붓자식이 되고 ‘운명’의 손자가 된 우리가 정말 무인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4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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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용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

퇴위하는 왕처럼 나는 읽는다. 왕관과 망토는 떠나는 와이 땅에 내려놓는 순간에 가장 존엄해지는 법이니, 나의 모든 권태와 몽상의 트로피를 모자이크 타일 바닥에 내려놓고, 본다는 행위의 고귀함만을 들고 계단을 오르낟.

지나가는 사람처럼 나는 읽는다. 고전주의 작가들 속에서, 차분한 영혼들 속에서, 고통받지만 말하지 않는 이들 속에서 나는 성스러운 길손이 되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목적 없는 세상에 이유 없이 묵상하는 순례자가 되고, 떠나는 길에 마지막 거지에게 자신의 고독을 최후의 동냥으로 건네준 ‘위대한 망명길에 나선 왕자’가 된다.

(5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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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 정액제 남편의 용돈 만세 ~월정액 21,000엔의 빈곤 라이프~ 05 ㅣ 정액제 남편의 용돈 만세 ~월정액 21,000엔의 빈곤 라이프~ 5
요시모토 코지 / 학산문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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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기다리는 만화입니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용돈의 달인들도 나왔으면 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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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권까지 읽고,
재수생 시절의 고다이와 일각관 관리인 쿄코는 어떻게 만났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1권을 펼쳤어요.

그런데, 그림체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조금씩 달라져왔나 봅니다. ㅎㅎ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1권 그림은 뭔가 조금 더 작고 날카로운 느낌이랄까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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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는 1990년대의 시네필에게는 매우 유명하지만, KBS3에서 상영하던 <세계의 명화>나 이후 이어진 <일요 시네마>를 통해서나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시네마테크 성격의 상영회에서 비디오를 몇 번이나 복사한 영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고다르가 2022년에 조력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고다르의 영화는 영화 자체로는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63년에 감독한 영화 <경멸>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복원해 극장에서 상영 중이라고 해서 보고 왔습니다. 20대의 브리지트 바르도가 나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역시 프랑스 영화다라고 생각했던 건, 미묘한 흐름을 포착해 표현한 점입니다. 있는 그대로 부인을 사랑하지만, 사회적인 만남에서는 주눅이 들면서도 아내를 지키지 못하는 남편이 나옵니다. 그리고, 잠잠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상황을 증폭시켜 극단적으로 끝납니다.

1963년의 영화이므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꽤나 재산이 많아보이는 미국의 제작자는 비서이자 애인인 여성에게 허리를 굽히라고 하고 그녀의 등을 책상 삼아 수표에 서명을 합니다. 제작자가 비서를 대하는 행동은 거칩니다.

반면 신혼부부인 카미유(브리지트 바르도 분)와 폴(미셸 피콜리 분)는 연인들 만의 사랑의 언어를 나누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랑이 식어버립니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카미유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남편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며 경멸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 속에서 프리츠 랑 감독이 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내와 아내의 정부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소용없는 이유가 나오는데, 마치 카미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남편 폴이 방조를 한 게 원인이겠지요.

빨강과 브리지트 바르도가 근사하게 잘 어울립니다. 카프리의 하늘도 멋있습니다. 당시 여배우들의 옷차림도 멋있습니다.

2000년 대에도 고다르 감독이 영화를 찍은 줄 몰랐습니다. 국내에서 개봉을 했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지금 OTT에서는 <네 멋대로 해라>만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나저나, 이 영화도 출연료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저예산 영화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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