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용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
퇴위하는 왕처럼 나는 읽는다. 왕관과 망토는 떠나는 와이 땅에 내려놓는 순간에 가장 존엄해지는 법이니, 나의 모든 권태와 몽상의 트로피를 모자이크 타일 바닥에 내려놓고, 본다는 행위의 고귀함만을 들고 계단을 오르낟.
지나가는 사람처럼 나는 읽는다. 고전주의 작가들 속에서, 차분한 영혼들 속에서, 고통받지만 말하지 않는 이들 속에서 나는 성스러운 길손이 되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목적 없는 세상에 이유 없이 묵상하는 순례자가 되고, 떠나는 길에 마지막 거지에게 자신의 고독을 최후의 동냥으로 건네준 ‘위대한 망명길에 나선 왕자’가 된다.
(5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