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항상 머무는 나무줄기 주위에서 나의 의식적인 무의식을 거닐게 한다. 나는 머물러 있는데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내 운명을 거닐게 하고, 나는 따라가지 않는데 홀로 흘러가는 내 시간을 거닐게 한다. 나의 지루함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지루함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감옥 철창 안쪽에 창문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고, 유리차에 어쩔 수 없이 쌓인 먼지 위에 대문자로 내 이름을 씀으로써 죽음과의 계약서에 매일 서명한다.

죽음과의 계약이라고? 아니, 죽음과도 약속하지 않겠다. 나처럼 사는 인간은 죽지 않는다. 시들어버리고, 끝나버리고, 말라버릴 뿐이다. 그런 인간이 살던 장소는 그가 사라진 후에도 남고, 걷던 거리도 변하지 않고, 살던 집에도 누군가가 계속 살아간다. 그것이 전부이며, 우리는 그것을 무라고 부른다. 그러나 무라고 부정하는 비극마저도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들 앞에 내세울 수 없으니, 진실과 삶의 무기력한 표명인 우리, 창틀 안과 밖에 더께로 앉은 먼지 같은 우리, ‘영원한 밤’이 남편인 ‘혼돈’을 잃고 ‘신’과 결혼하는 바람에 신의 의붓자식이 되고 ‘운명’의 손자가 된 우리가 정말 무인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4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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