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철도와 인터넷이 그랬듯, 분명히 세상을 진보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점은 기억해야겠습니다. 역사는 늘 ‘기술은 성공하지만, 성급한 투자는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는 것을요. 기술에 환호하되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버블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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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 중에 만난 인물이 금융 저널리스트이자 금융사학자 에드워드 챈슬러다. 그의 대표작은 1999년에 출간된 «Devil Take the Hindmost: A History of Financial Speculation»으로, 국내에는 «금융 투기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에서 시작해 1720년 남해회사 버블 사건, 1929년 대공황, 19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탐욕과 시장의 광기가 어떻게 반복되어 왔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 금융사학의 고전이다.

원제의 "Devil Take the Hindmost"는 영국의 오래된 속담 "Everyman for Himself, and the devil take the hindmost"에서 따온 표현이다. 직역하면 "각자 알아서 살아라. 가장 뒤처진 자는 악마가 잡아가라"이며, 조금 풀어 옮기면 "제 살길은 저마다 찾을 것이며, 마지막에 남는 자는 악마에게 맡겨두라"가 된다. 본래 이 속담은 대규모 재난이나 공황이 닥쳤을 때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부터 살고 보자며 뛰쳐 나가는 극단적 이기주의, 곧 각자도생의 순간을 비유한 말이었다. 챈슬러는 인터뷰에서 이 제목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표현은 남해회사 버블 당시 한 투기꾼의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죠. ‘세상이 미쳐 있을 때는 우리도 어느 정도는 그들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남는 놈은 악마에게 맡기자 And let the devil take the hindmost.‘ 이 말의 뜻은, ’난 제때만 빠져나오면 돼. 그 뒤에 오는 사람은 알아서 하겠지‘라는 사고방식입니다."

챈슬러가 이 속담을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 생리가 금융 투기판의 작동 방식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버블이 커지는 동안 투자자들은 "내가 산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사줄 ’더 바보‘가 얼마든지 뒤에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앞다투어 뛰어든다. 그러나 버블이 터지는 순간, 먼저 발을 뺀 소수를 제외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자산을 붙들고 있던 이들, 즉 가장 뒤처진 투자자들이 모든 손실을 떠안고 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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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기억납니다. «손절사회».
읽어야지 했다가, 잊어버렸습니다. 2026년 4월에 출간된 책이고, 작가는 1998년에 태어났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같은 세대가 보는 시각이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저자는 20대 후반입니다. 저자가 보는 세대의 현상에서, 많은 질문과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 같습니다.

‘외로움’이 화두이고 ‘손절’을 하는 세대가 됐다고 합니다. ‘손절’은 금융 투자 용어인 줄만 알았는데, 사람 간의 관계에도 이런 단어가 쓰인다니, 조금은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 관계에서는 ‘손절’이 꽤 잘 어울립니다. 직장 내에서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인생의 친구가 되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만 대부분은 본인들의 목적에 따라 상대와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모른척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많긴 합니다.

어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인볼루션’, ‘내권’이라는 용어처럼,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실제 삶은 더 나아지지 않는 시대적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까요? 혹은 아주 많은 선택 속에서,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하면서도 전면적인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는 법이 서툴러졌기 때문일까요? 혹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에, 관계를 더욱 선별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그런데요, 생각해보자면,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관계가 더욱 귀했습니다.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 수는 있었지만, 삶에 드는 노동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이동 시간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시대의 관계는 귀하고 또 귀해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 집중하거나 혹은 만나도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더욱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경제는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때는 남들이 ‘잘살겠거니’라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사는지 몰랐을 수 있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남들이 어떻게 잘살고 소비하고 경험하는 지에 대해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론을 읽고 나니, 뒷부분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지금의 20대가 다른 20대를 바라보면서 정의한 ‘손절사회’라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그 말로 정리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겪어왔는지, 일단 들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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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반되는 문화적 경향이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우리는 외로워하면서도, 외로움을 인정하고 서로 의지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깊이 있는 관계에서 도피하는가? 이것이 이 책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이다.

(...)

치료요법 문화는 외로움 위기를 만들어낸 유일한 원인도, 어쩌면 가장 중요한 원인도 아니다. 하지만 치료요법 문화는 다른 문화와 제도, 기술과 시장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현재의 외로움 위기를 파괴적 수준으로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 치료요법 문화 그리고 이 문화가 다른 제도 및 문화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역학이 인간적 유대와 연대에 관한 우리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

그런데 누간가와 혹은 무엇과도 깊이 연결되기 어려운 사회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복잡하고 모순된 동기에서 이루어졌으며, 때로는 선의에 기반한 것이기도 했다. 인간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철학의 내용뿐 아니라 그 다면적이고 양가적인 매력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관계에 대한 대안적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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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중국에서는 ‘사회복지’ 전공자로서 공무원이 아닌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게 더 이상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 정부(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민간 기업이 중국 사회를 위해서 혹은 개인 독지가가 사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지 않을까 합니다.

대학원 면접을 볼 때, 한 교수님이 사회복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소외된 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식의 거창하고 고상한 말들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나요. 면접관이었던 그 교수님(나중에 제 지도교수님이 되셨죠)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자네, 너무 이상적이구먼. 졸업하고 나면 알게 될 거야."

그분의 제자가 되어 논문을 쓰기 직전이었을 때, 교수님은 제가 사회복지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다시 물으셨습니다. 저는 "사회복지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걸 배웠습니다"고 답했죠. 그러자 교수님은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군! 동기들한테 한번 물어보게.다들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을걸? 자네만 한가해 보이네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말이 맞다고 하자 교수님이 덧붙이셨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안 하면 전공을 살릴 일자리는 못 구해. 공무원이 되는 게 최선의 선택이야. 일단 되고 나면 더는 취업이나 일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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