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계적 - 정치경제는 적동승>이라는 40부작 방송 프로그램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모두가 도광양회(힘을 숨기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다)를 말하고 있으나, 이런 전략은 20세기 말에는 진짜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의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감옥에 가두고 소극적으로, 아무도 없다는 쥐 죽은 듯 이 세월에 대응한다면 너무 일방주의적이며,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외유내강과 공수겸장으로 묶인 손발을 풀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는 우리에게 ‘투쟁을 통한 평화’만이 지속적이고 체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해 준다.

이 책의 본문 내용은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에 필자와 함께한 <정경계적 - 정치경제는 적동승>이라는 40부작 방송 프로그램에 실린 필자의 수년 간의 정치경제 전략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을 필자의 제자 위자룡이 정리하고, 왕설영이 도표 등을 그렸다. 그리고 동방출판사의 경제 담당 편집부가 이 책의 출판에 크게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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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시장은 사실 실물경제와 심각하게 분리되어 있다. 코로나19로 실물경제가 후퇴하고 악화해도, 또 사회가 분열되어도 미국의 주식시장은 단기적 낙폭을 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엄청난 상승장을 만들며 신고가 행진을 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법정화폐 시대, 또는 지렛대 없는 화폐 시대의 ‘돈 인쇄의 매력’인 것이다. 거의 막다른 곳까지 간 한 국가가 ‘돈 만드는 나무’로 지탱해 나가고 있다.

18%: 달러의 증가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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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철도와 인터넷이 그랬듯, 분명히 세상을 진보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점은 기억해야겠습니다. 역사는 늘 ‘기술은 성공하지만, 성급한 투자는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는 것을요. 기술에 환호하되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버블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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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 중에 만난 인물이 금융 저널리스트이자 금융사학자 에드워드 챈슬러다. 그의 대표작은 1999년에 출간된 «Devil Take the Hindmost: A History of Financial Speculation»으로, 국내에는 «금융 투기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에서 시작해 1720년 남해회사 버블 사건, 1929년 대공황, 19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탐욕과 시장의 광기가 어떻게 반복되어 왔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 금융사학의 고전이다.

원제의 "Devil Take the Hindmost"는 영국의 오래된 속담 "Everyman for Himself, and the devil take the hindmost"에서 따온 표현이다. 직역하면 "각자 알아서 살아라. 가장 뒤처진 자는 악마가 잡아가라"이며, 조금 풀어 옮기면 "제 살길은 저마다 찾을 것이며, 마지막에 남는 자는 악마에게 맡겨두라"가 된다. 본래 이 속담은 대규모 재난이나 공황이 닥쳤을 때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부터 살고 보자며 뛰쳐 나가는 극단적 이기주의, 곧 각자도생의 순간을 비유한 말이었다. 챈슬러는 인터뷰에서 이 제목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표현은 남해회사 버블 당시 한 투기꾼의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죠. ‘세상이 미쳐 있을 때는 우리도 어느 정도는 그들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남는 놈은 악마에게 맡기자 And let the devil take the hindmost.‘ 이 말의 뜻은, ’난 제때만 빠져나오면 돼. 그 뒤에 오는 사람은 알아서 하겠지‘라는 사고방식입니다."

챈슬러가 이 속담을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 생리가 금융 투기판의 작동 방식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버블이 커지는 동안 투자자들은 "내가 산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사줄 ’더 바보‘가 얼마든지 뒤에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앞다투어 뛰어든다. 그러나 버블이 터지는 순간, 먼저 발을 뺀 소수를 제외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자산을 붙들고 있던 이들, 즉 가장 뒤처진 투자자들이 모든 손실을 떠안고 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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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기억납니다. «손절사회».
읽어야지 했다가, 잊어버렸습니다. 2026년 4월에 출간된 책이고, 작가는 1998년에 태어났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같은 세대가 보는 시각이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저자는 20대 후반입니다. 저자가 보는 세대의 현상에서, 많은 질문과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 같습니다.

‘외로움’이 화두이고 ‘손절’을 하는 세대가 됐다고 합니다. ‘손절’은 금융 투자 용어인 줄만 알았는데, 사람 간의 관계에도 이런 단어가 쓰인다니, 조금은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 관계에서는 ‘손절’이 꽤 잘 어울립니다. 직장 내에서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인생의 친구가 되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만 대부분은 본인들의 목적에 따라 상대와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모른척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많긴 합니다.

어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인볼루션’, ‘내권’이라는 용어처럼,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실제 삶은 더 나아지지 않는 시대적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까요? 혹은 아주 많은 선택 속에서,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하면서도 전면적인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는 법이 서툴러졌기 때문일까요? 혹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에, 관계를 더욱 선별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그런데요, 생각해보자면,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관계가 더욱 귀했습니다.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 수는 있었지만, 삶에 드는 노동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이동 시간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시대의 관계는 귀하고 또 귀해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 집중하거나 혹은 만나도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더욱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경제는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때는 남들이 ‘잘살겠거니’라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사는지 몰랐을 수 있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남들이 어떻게 잘살고 소비하고 경험하는 지에 대해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론을 읽고 나니, 뒷부분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지금의 20대가 다른 20대를 바라보면서 정의한 ‘손절사회’라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그 말로 정리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겪어왔는지, 일단 들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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