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길을 아주 간결하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아래의 글은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내 자신을 위해 요약한 것이다.

나는 죽었다, 욕망이 없으므로.
나는 욕망이 없다, 소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소유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주려고 한다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한다. 손에 무언가를 넣으려고 하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

- <후기(초판) - 베라 도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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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한 번은 더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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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말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에는 그 자신이 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는 자로서 뒤에서 오는 자들을 준비하게 한다는 단계까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찾을 것인가?"라는 것은 그 자신에 대해서도, 뒤에서 오는 우리들에 대해서도 마운트 아날로그가 언젠가는 제기할 질문에 다름 아니다. 그것에 대답하기 위해 이 소설을 완결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은, 어쩌면 상승함에 따라 무언가 크게 우리의 내부를 변화시키게 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아직 미지인 그와 우리들 즉 ‘나’ 자체가 아닐까 한다.

- <옮긴이 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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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등산가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 발이 당신을 데려다주지 않은 것 같으면 그때는 당신 머리로 걸어야만 한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마도 자연의 질서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로 걷는 것이 발로 생각하는 것 - 생각보다 자주 그런 일이 생긴다 - 보다는 낫지 않을까?

(...)

몸은 자주 떨림, 헐떡거림, 심장 박동, 전율, 발한, 경련 등을 통해 자신에게 주목이 쏟아지도록 하려고 한다. 하지만 주인으로부터 경멸이나 무관심을 받게 되면 그것에 빨리 반응한다. 몸이 아무리 한탄을 늘어놓아도 결코 동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면 그것은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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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등산이란 최대한의 신중함을 가지고 최대한의 위험에 맞서면서 산을 오르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서 기술이란 지식이 행동 속에서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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