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고 알려주네요.

당시에 이 책을 읽고 삼각김밥 틀과 삼각김밥용 김을 잔뜩 샀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몇 개 만들어보다가 녹록치 않아서 그만 둔 것 같은데, 그 많은 김과 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초기에는 가볍게 시작해보는 게 제일입니다. ㅎㅎㅎ 요리책의 큰 특징은 글로 쓰여있어 명확하고 만들기가 쉬워보인다는 거에요.

왠만하면 편의점에서 삼김을 사먹거나 분식점에서 주먹밥을 먹고, 정 만들고 싶다면 다섯 번쯤 시도한 후에 틀이나 전용김을 샀어야 했을까 생각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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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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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들을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가가,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그리고, 희망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책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 읽는다.

- 서문 <나는 세계에 꼭 들어맞지 않다 - 포기하지 않는 읽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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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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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말년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시작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말은 이렇게 읽힌다. "나는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금 이런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집이 다시 출간되기를!

- <삶도, 시도 중단할 수 없었던 러시아 국민시인-안나 아흐마토바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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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시인의 책이었어요. 에단 호크의 책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작은 택배 상자에 담겨온 책은.

진은영 시인의 서명과 자그마한 수첩, 출판사 편집자가 쓴 인쇄된 엽서가 들어있어요.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걸 아직도 좋아합니다. 사둔 지 십수년은 됐을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이번 추석에 펼쳐볼까 합니다. «에어리얼»도 읽어보고 싶구요.

같은 책에 대해 다들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는 게 좋습니다. 살아있는 텍스트로서의 책을 만나는 것 같거든요.

* 사진을 너무 밝게 보정했어요.
그래도 시인의 단정하고 귀여운 글씨가
잘 보입니다.

** 그런데, ‘만 개의 파란 전구’는 잘 모르겠어요.
맑고 높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마음이 예쁘고 넓어지자는 의미일까요?

*** 사은품 지우개가 무척 좋습니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사은품 지우개가
좋았는데 잘못 쓴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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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모처럼 시간이 나면, 뭘 볼까 찾다가 시간이 다 지나곤 했습니다. 요즘에는 조금 나아져서, 그렇게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면 바로 평소에 보려고 했던 콘텐츠(책, 영화, 만화, 드라마)를 봅니다. 가끔은 뭐가 나왔는 지 보는 것도 재밌지만, 뭐니뭐니해도 콘텐츠는 직접 접하는 게 제일입니다.

가끔 아침에 포털에서 뉴스 제목을 볼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마음이 들어 뉴스 제목을 클릭해 보면, 중국에서 있었던 일일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중국이 땅이 넓고 사람이 많다보니, 우리 나라보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사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 지역과 유사한 상황에 대한 맥락이 없는 상태에서 단발성 기사를 읽으면 그냥 제멋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차라리 나중에는 섹셕을 나누어 구분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요즘엔 이런 기사 제목을 보면 또 다른 나라 얘기려니하고 넘깁니다. 읽어야 하는 기사도 충분하게 읽지 못하는데, 굳이 이런 기사에 시간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클릭수로, 트래픽으로 기사로 유입이 되는 것을 알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이 기사가 정말 볼 만한 지 여부, 우선 순위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사 당 세 개의 기사 제목과 두 개의 사진 기사가 소개되는데, 그 중에 한 개가 ‘중국의 어떻게 이런 일이’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기사 제목 앞에 ’사회, 정치, 문화, 국제‘ 등 구분할 수 있는 제목을 넣는 게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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