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은
준 것은 잊어버리나 준 것이 악한 것으로 돌아올 때
주로 생각납니다.
(준 것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순간에 떠오를 때가 있어요.
많은 경우에는 ‘그랬었나?’ 하지만요,)
‘그때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네가/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느낍니다.
홍순언이라는 분은 이 글을 통해 처음으로 들었고,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 지 알게되었어요.
그렇지만, 그가 지은 복이 남들에게 알려질 만한 대단한 사건이기에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 기적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던 양식을 내놓아서 나누어 먹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에서는 기버 Giver, 그 중에서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버가 사회에서도 성공을 이루었다는 연구결과를 좋아합니다.
홍순언에 대해 새로 배웠지만, 그로부터 배울 부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내 일이 아니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걸 엄청나게 돌려받은 역사적 인물이 있으니 베풀자는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호의를 베풀어라’라는 소제목에 나오는 내용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천만원을 자리에서 선뜻 내놓은 홍순언이라는 사람의 재력에 대한 확인도 없이, 그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는 주장은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마음이 움직일 때, 예전보다는 덜 내놓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나와 상대의 관계를 더욱 편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 5장부터 읽어서 그럴까요?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쓰다>>의 추천에
아직은 동의가 되질 않습니다.
** 5장은 ‘품위’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갸우뚱합니다.
나중에 챕터 제목을 붙여서 발생한 유격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