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건 언제쯤일까요? 대체로 어른들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본 모습이 크게 남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묶여있었던 어느 시간대로 돌아가되 더 넓은 관점으로 그 시기를, 그때의 사람들과 만나는 얘기입니다. 문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고, 아이들은 골목이 키운다는 말처럼 주인공과 친구 딸 사이도 친밀해집니다.
문자 할머니는 주인공 영두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어른의 역할을 하십니다. 그러나 자아가 강한 중학생 시기였기 때문일까요? 두 번에 걸친 후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문자 할머니가 시미즈 마리코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시절을 알게됩니다.
엇갈린 시간들이 아쉬웠습니다. 낙원하숙의 위치가 왜 거기였을지, 손잡이는 왜 유리조각이었을지 나중에 알게됩니다.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본 후에 재일 한국인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옛날 일본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누구누구 배우가, 누구누구 감독이 재일교포일 것이다, 한국계일 것이다, 라는 얘기들이 심심치않게 언급됐습니다. 대만도 일본의 지배를 꽤 오래 받았는데, 대만에 사는 일본인이나 일본에 사는 대만인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인생N회차라는 말도 있지만, 한번 뿐인 삶에서, 태어날 나라와 시기와 부모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오늘을, 이 순간을 살 뿐일 겁니다. 줌인, 줌아웃되듯 문자 할머니의 삶이 몇 줄로 요약되고, 영두의 외할머니와 만났던 그 순간 서로가 읽어낸 마음 덕분에 영두와 이어집니다.
문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영두와 다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검정고시로 학력을 갖춘 영두의 삶은 여유가 없었을 거라는 건 알면서도, 그런 바램이 들었습니다.
아직 이 소설에 대해 정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섬세한 포착들이 전작보다는 밝아졌지만, 그래도 어둠 속에 홀로 견디는 모습들입니다. 아직은 낯선 느낌입니다. 조금 더 지나면 알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