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목 «미묘한 메모의 묘미»를 보니
네모만 가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모는 네모네모가 아니라 자유롭게 순간을 포착하는 걸텐데요.

영어 단어 memo 혹은 MEMO는 좀 더 개구지게 웃는 표정 같은 구석도 있는데 말이죠.

* ‘메모’에 해당하는 우리 말은 무엇일까요? 언젠가 들어서 기억하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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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백만 번 산 고양이»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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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른의 말>은 잊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미친듯이 달려가고 있는듯 보이는 방향이 아니라, 진짜 내면의 넉넉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사람들과 다른 방식로 나답게 살면서 세상이 빠르게 악화되는 걸 늦추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다가 갑자기 눈을 뜨는 애매한 시간들이 있습니다.
00시 23분, 03시 07분. 02시 14분.
‘꽁’으로 얻은 시간에, 세상이 잠들고 불안이 미처 눈을 뜨지 않은 시간에(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에 있는 문장에서 따왔습니다), 한 번 펴서 읽어도 좋겠습니다.
하루의 루틴에 있는 시간 외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진공의 시간’에, 힘을 빼고 목적도 잊고, 그저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시간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만나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모든 글이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맥락이 부족해서였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담없이, 갑자기 주어지는 진공의 시간을 만난다면,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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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론’.
마음에 와닿는 표현입니다.
‘롤 모델’은 거창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이 붙이는 이름이라면, ‘샘플’이 되는 건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까지 직장에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샘플이 되는 것.

아래 글과의 차이는 ‘넘버 원‘이 되었느냐의 여부인데요, 매번 맡은 일을 넘버 원으로 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있는 승부를 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저 맡은 일을 나답게,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으로 하려고 해온 것. 그것이 최인아 작가가 말하는 ’샘플론‘과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최인아라는 사람의 소명을 말한다면?
"샘플론으로 말하고 싶어요. 나는 롤 모델이 없었는데, 그 상황을 아쉬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겼어요. 내가 롤 모델이 되고, 내가 샘플이 되자고. 회사 내에 만연한 남성 위주의 제도와 시스템은 한 번에 바뀌지 않아요.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고 조직 운용 방식이 오랫동안 그렇게 되어 왔으니까. 그럴 때 중요한 건 개인의 돌파력이에요. 어떤 개인 한 명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돌파하면서 샘플이 되면 ‘어? 저게 되네?’가 되는 겁니다. 최초라는 건 단지 두 번째나 세 번째보다 하나가 빠르다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그 최초의 샘플이 나오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거에요. ‘저건 안 돼‘, ’길이 없어‘ 하는 걸 되게 하고, 길을 만드는 최초의 사람이에요. 지도에 길이 없다면 그건 아직 만들지 않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아직 안 만들어서 없는 거에요. 누군가가 만들면 그 사람은 최초의 길을 낸 사람이 됩니다. 박세리 선수도 그렇죠. 박세리는 한국에서만 활동해도 충분히 괜찮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LPGA에 도전했죠.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봤어요. ’미국에 실력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게 되겠어?‘했죠. 그런데 했어요. 이후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줄줄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뭔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돌파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그 사람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인아 - 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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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질문을 받을 때, ‘턱’하고 숨이 막힐때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떠먹여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입니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꽁으로 먹으’려 할 때 입니다. 그리고 그걸 효율적으로 일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질문의 주체들과 대면할 때입니다.

무엇이든지 물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가 그걸 이해하기까지 보내온 시간에 대한 인정이 없이, 본인의 시간은 전혀 들이지 않은채 질문 한 방으로 그걸 얻겠다는 태도가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굳이 답변하지 않습니다. 공인이 아니므로, 그렇게까지 사회에 나의 노하우를 공유할 의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마도 최인아 작가는 다르게 말을 할 겁니다. 아래 인터뷰에서는 저렇게 말했더라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원을 다는 것‘도 브랜드이겠지요. 여러 가지 기준이 작동을 하겠지요. 실력만이 선정 근거는 아니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임원‘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어떤 사적인 집단에서 그들의 이익에 걸맞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모든 사람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인아 책방에 가본 적은 있지만, 최인아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회적 성과를 냈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일해왔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나의 업무 반경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갖게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래 문장에는 동의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질문을 품고 생각하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을 하라고 하면 대개 방법론을 물어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에요?’하는. 그건 도둑놈 심보에요. 노력하지 않고 도달하겠다는 심보이자, 지름길을 구하겠다는 겁니다.

- <최인아 - 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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