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이름들입니다. EBS <위대한 수업>을 다시 봐야겠습니다.

스티글리츠는 더욱 공정한 미래 비전을 ‘올바른 자본주의’라고 하며 기존의 ‘짝퉁 자본주의’와 대치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놓쳤다. 그 가능성이란, 스티글리츠가 동경하는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황금기’야말로 오히려 예외적인 ‘짝퉁 자본주의’의 시대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티글리츠가 규탄하는 현재의 자본주의야말로 실은 ‘진짜 자본주의’인 것이다. 지금이 ‘진짜 자본주의’라는 말은, 스티글리츠가 추구하는 ‘개혁’과 자본주의의 유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의 ‘개혁’은 결코 실현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개혁을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며 진지하게 주장하는 스티글리츠를 지젝은 진정한 ‘공상주의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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