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하고 따뜻하게
이시은 지음 / 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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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동창회
인생의 정답은 여러 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마다의 길, 아름답게


시세이도 기업피알 TV광고 (p.18)


여기가 아닌 어딘가는
어디에도 없을지도 모른다

 

니카이도


술을 마시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잊어버리고싶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카이도 (술) (p.90)

 

 

바다는 푸른 정도가 딱 좋다
하늘은 별이 보일 정도가 딱 좋다
아버지는 무서운 정도가 딱 좋다
어머니는 많이 자상한 정도가 딱 좋다
친기는 귀찮은 정도가 딱 좋다
청춘은 바보스러운 정도가 딱 좋다
거짓말은 서툰 정도가 딱 좋다
고마움은 많은 정도가 딱 좋다

티비는 뒹굴면서 보는 정도가 딱 좋다

 

have your measure
계기는 후지테레비

 

후지테레비 (p.94)

 

 

 

저 사람도 한잔해보면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마시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놀라지 않아
'좀 그래.' 라고 생각하고 마셨는데
좋은 사람이었다면 기쁘지


세상엔 그런 일이 꽤 있는 듯해

 

산토리(술)
인생에는 생각보다 무수히 많은 반전이 있습니다. (p.112)

 


 

지금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힘내, 기운내. 라는 말보다
나라면 이런 곳에 데려오고 싶나고 생각합니다.

 

봄이 이리도 꼭

찾아오는 나라라서

다행이야

 

그래 교토에 가자

 

JR토카이 

(p.116)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람은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빠이롯트 (p.214)

 

 

* 책 정보

 

「짜릿하고 따뜻하게」이시은, 출판사 달, 출판일 2011.04.15

 

 

*

  20세기를 풍미한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좋은 광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최고의 광고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광고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일본의 명광고 카피를 소개하고 있는 이시은의 에세이 '짜릿하고 따뜻하게' 는 참 좋은 광고들을 소개하는 책인 것 같다. 그녀가 소개한 일본의 광고 카피들은 유난히 '우리 참 힘들지? 그래도 힘내 보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참 힘들지?' 의 태도가, 격려하는 선배나 영웅이 아니라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동지의 느낌을 준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22 페이지에 있는 조지아 커피 광고가 그렇다. '내일은 있다'라는 카피로 유명한 광고인데, 다양한 시리즈로 제작이 되어서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고 한다. 광고는, 잘난 친구 앞에서 주눅들지 말라고 가장의 무게 때문에 무기력해지지 말라고 말할 줄 안다. 생활 곳곳에서 힘들어지고야 마는 '내'마음을 눈치채준 광고를 본 사람들이, 상품 진열대에 놓인 '조지아' 커피를 보고서 한번 더 웃음을 짓고, 조지아 커피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종종 일본 소설이나 일본 에세이를 볼 때마다 은연중에 느낀 것인데, 일본어는 보통 '상담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상담자의 언어'가 전문적인 명칭은 아닌지만, 학교 다닐적에 교내상담센터에서 재학생 상담자로 활동하기 위해서 심리교육과 상담교육을 받으면서 상담시에 구사하면 좋은 언어 방식을 배운 적이 있었다. 타인에게 가장 경계심을 주지 않고 편안한 대화체는 '너는 - 하다.' 라는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나는 - 한 것 같다.' 라는 '나 중심 언어'라는 것이고, 결국에 이 '나 중심 언어'가 타인의 생각의 동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상담자의 언어'다.

 

 상담자의 언어는 마치 혼잣말과도 같은 것인데, 청자에게 불편한 말일 지라도, '너는 조금 성질이 급해' 라는 말보다 '나는 너가 성질이 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라는 말이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짜릿하고 따뜻하게'를 읽으면서, 어쩐지 일본어투는 아무리 번역해도 뭔가 특유의 느낌이 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나 중심 언어' 처럼 쓰여진 일본어투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카피를 보더라도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

 

 예를들면 시세이도 광고 카피에서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카피의 어투는 상당히 주관적이다.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습니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덕분에, 카피의 화자는, 광고의 청자와 동격으로 느껴진다. 광고 처럼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의 색깔을 존중받고 싶은 청자에게 '카피'의 화자가 어떤 동지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습니다' 라는 말보다 덜 교조적인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일본어 자체가 '나 중심 언어' 혹은 '상담자의 언어'와 그 문체가 닮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장기 불황에 '힘' 을 주고 싶었던 일본 광고 카피들의 전략은 '나 중심 언어' 즉 '상담자의 언어' 와 비슷해 보인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한국 광고 카피가 아니라, 일본 광고 카피에 위로를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평소에는 많은 광고들이 실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보다는, '내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을 때가 많아서 공감 보다는, 소유욕을 자극했던 것 같다. 광고의 목적은 '구매 행위'를 자극 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얘기이긴 하다.

 

   물론 아무리 따뜻한 광고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광고일지라도, 그것이 결국에는 소비를 설득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잔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소외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나은 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가 매매의 세계에서 분리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고보면 이 책의 제목 짜릿하고 따뜻하게. 참 잘 지었다. 짜릿하면서도 따뜻한 한마디야 말로, 설득의 비결이라는 생각이다. 꼭 두가지가 함께 해야한다. 짜릿하고 따뜻한 말. 짜릿하고 따뜻한 연애. 짜릿하고 따뜻한 환희. 짜릿하고 따뜻한 추억. 짜릿하고 따뜻한 삶. (둘 중에 하나만 가져야 한다면 '따뜻한'만 남겨도 좋겠지만.)

 

짜릿하고 따뜻한 삶, 좋은걸.

 

 

 

 

* 추천하기 전에

 

리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카피와 함께 곁들어진 작가 이시은의 수필들도 읽어볼만하다. 그녀의 문체도 본인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만큼 매력적인 모습이다. 전문의 수식어들이 군더더기가 많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기자 문체처럼 딱딱하지도 않으며, 자기계발서 작가들처럼 무심하게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딱. 곱씹으며 읽기 좋다. 음미하기 좋다는 말은, 이 책의 담백함에 곁들여주기엔 좀 느끼한 표현 같다.

 

하긴, 원래 출판사 달의 책들이 그렇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감성적인데, 어쩐지 청승맞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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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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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투게더'의 저자 세넷이 강조하는 '협력'의 가치는 굳이 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중요하다, 가치있다, 소중하다 말해오니 그에 대한 자각심이 무뎌지는 부작용까지 있을 정도다.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는 각종 문제와 해결 이슈들이 개인의 역량을 벗어난지 오래일때, '투게더'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그런데 이 '투게더'의 '협력'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제국주의의 잔혹한 이민족 말살주의와 식민주의 정책의 착오는 물론이고 공산주의의 실패는 말할 것도 없다. 미성년자들도 피할 수 없는 따돌림의 세계, 각종 사회의 가치기준을 벗어난 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 이 순간에도 그칠 줄 모르는 종교 전쟁은 어디 손 댈 엄두라도 남았는가? 모두 '투게더'의 가치를 말해오면서도 그것의 방법론의 실수 혹은 오류로 쌓아온 얼룩진 흔적들이라 해야한다.

 

*

 

 그렇다면, 우리가 저질러온 실수의 맹점은 무엇이었을까?

 

 유명한 소설가 김연수는 한 사람의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문장에서 느껴지는 염세주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그리하여 더,'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너의 다른 점을 포용하고 존중하겠다로 나아간다고 강조한다. 투게더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협력의 시도들이 간과한 가치가 바로 이런 자세가 아닐까.

 

 이상적인 사회의 변혁을 외치는 도서, '투게더'를 읽으며 우리가 견지해야할 것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힘든, 아니 불가능한 일이므로' 라는 전제로 시작하되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 결론 맺을 수 있다면 일보 전진한 성과가 아닐까.

 

 나는 그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그대와 나는 절대 동일해 질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보폭과 생의 속도는 같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한번 더 그대의 안부를 묻고, 따라잡고 싶다고 손을 내밀며, 다른 점에 대해 그리 놀라하지 않고, 그대와 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것에 무한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테니. 

 

 

+ 본 리뷰는 알라딘 신간 평가단의 투표로 선정된 도서를 제공받아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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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몸젠의 로마사 1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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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 사이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독파하면 거의 영웅으로 추대되다 시피 했다. 이렇게 말하고보니 내가 다녔던 학교의 학생들이 꽤나 학구열도 높고 다독하는 것처럼 묘사가 되긴 하지만 굳이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2000년 초중반에 '로마인 이야기'는 정복욕을 느끼게 하는 교양 역사서가 분명했다.

 

로마의 역사는 얼마나 방대하고 무한하길래, 붉은 책장이 역시 두꺼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끝을 모르고 출간되는 것일까. 결국 그즈음의 나도 도전을 하였으나 10년 가까이 10권에 도달하질 못했으니 로마의 역사를 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라 할 수는 없겠다.

 

당시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단순히 로마의 역사를 총망라했다는 데서 의의가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로마인들이 살아있던 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작가 특유의 감성과 연민이 실제 역사를 해치치 않는 선에서 살아있는 분위기를 사람들은 더욱 좋아했다. 굳이 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아닌 '로마인의 역사'가 어쩐지 탐닉하고 싶은 하나의 장편 스토리로 와닿는 것은 그런 작가의 색채 덕분이었을 터.

 

 

***

 

몸젠의 이야기를 하면서 괜한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가 길었다.

 

몸젠의 로마사 1편을 읽고나서, 역시 이 역사서도 그 시리즈가 독자에게 정복욕을 일으키겠군, 하고 생각했던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다. '로마인 이야기'도 어떤 신화나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몸젠의 로마사가 훨씬 건조하고 실증주의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렇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로마의 단편적이면서도 다각적인 실제 사료를 접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몸젠의 로마사를 집어들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책 속에는 몸젠 스스로가 실증주의를 중시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글귀들을 찾을 수 있다. 신화를 신뢰하지 않는 그의 어투는, 실제로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추측성' 멘트를 날리지 않으며 없던 사실을 연민하거나 탄식하는 투의 진보적인 역사관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로마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몸젠의 로마사에는 역시 난해하고 딱딱하며 복잡해 보이는 옛 로마 시대의 명칭들이 다수 등장한다. 역사서를 읽으며 감내해야 하는 정보의 피로도가 높아지지만 이것은 동시에 독자에게 지적 포만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몸젠의 로마사는 어쩐지 보수적이고 차분하며 때로는 엄격한 어투로 역사의 사료들을 읊어주는 것 같다. 2편을 기대해본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우수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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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 나의 친구, 나의 투정꾼,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면류관을 쓰지 않은 나의 엄마에게
이충걸 지음 / 예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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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이충걸, 예담

 

*

 어느 집이나 그렇듯이, (아닌가) 곧잘 아웅다웅하곤 했던 우리 모녀는 서로 삐치기도 많이 삐치고 상처도 참 많이주면서 그 상처 위에 마데카솔도 둘만 서로 발라주곤 했다. 그런 엄마는 종종 내게 그런 말을 하곤 했는데, 엄마가 컴퓨터를 잘 하게 되면 블로그에 꼭 웹툰을 그려서 인기 작가가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뭘 그려서 인기 작가가 될 거냐고 물으면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그런 답을 하곤 했다. "못된 딸내미 얘기를 쓸거다. 좌충우돌 모녀 이야기 뭐 이런거. 다들 엄청 재밌다고 그럴걸?"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절대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을 거라며 엄마에게 핀잔을 줬다. 그러면 엄마는 또 "맨날 너네만 엄마 무시해!" 하고 씩씩거리면서 섭섭해하고. 어쩐지 이것은 진심으로 섭섭해 하는 듯하는 모습이다 싶으면, 가차없이 엄마는 살아온 50년 세월의 슬픈 일, 아쉬운 일, 후회되는 일, 섭섭했던 일, 다 끄집어내어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엄마의 인생은 얼마나 광활한 심해로 이루어진 것일까. 마음이 짠해지려고 하지만, 서로 웃기면서 시작해도, 다투면서 시작해도, 언제나 우리의 대화는 엄마의 인생에 대한 사소한 연민과 공감으로 마무리 되곤 하는 것이었다.

 

 모녀 이야기를 웹툰을 그리고 싶다던 엄마의 마음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광활한 세계를 위탁하고 싶은 딸에 대한 애정, 그로 인한 야속함.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을 정도로 엄마의 정서를 자극하는 어떤 예민한 신경 세포들. 대부분 날들에 그런 세포들의 반응이란 악다구 같은 엄마의 행동이나 야물딱지다 못해 무서울 것 하나 없어보이는 유머로 표현되곤 한다. 모든 어머니들이 다 동일하게는 아니어도, 조금씩 비슷 비슷하게 나타난다. 어딘가는 참 주책스럽고 귀여우며 강인하고 여려진 엄마의 모습과 아직까지는 참 야속하고 철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기대고 싶고 말이 통하는 딸과의 줄다리기는 그래서 참 재미있는 웹툰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조금 야속한 딸로 묘사되겠지.)

 

 이충걸의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는 어머니 대신 써준, 이충걸의 연재 칼럼이 아닐까. 서로의 세계가 다른 두 사람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가장 넓은 포용과 가장 깊은 연민으로 소통한다. 이충걸이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리모델링할 때에, 천장 인테리어를 두고 어머니와 얼굴 붉힐 실랑이를 했을 그 순간들도 그것을 기억하고 채집하여 다시 활자로 풀어내는 그의 시선에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져줄 수는 없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허하고도 세련된 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은 애정이 묻어난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어느 가족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작가 이충걸의 표현방식은 어떤 비슷한 주제의 책이나 글과는 조금 다른 그의 색깔을 가지는 것은 특징이다. 감정에 빠져서 다른 이들보다 내가 가진 것이 더 고귀하고 절실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며, 나이 앞에 연약해진 그녀의 체력과 세월의 균열과 교차로 인하여 어느 부분은 그 활기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시간을 동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여전히 강한 고집을 못 마땅해하고, 맛 좋은 게 요리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행복감을 가진 그녀의 찰나를 묘사해줄 줄 안다.

 

 한 때, 엄마의 삶을 보상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어떤 것을 열심히 해내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나의 가족을 한 사람으로서 구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그녀의 삶을 존중하고, 그녀가 저지른 실수와, 경험하고 있는 후회를 안쓰러워 하기보다 값진 어떤 것으로 조망해 주는 것. 살가운 대사와, 조금 더 관심 어린 말 걸기와, 취향이 달라 싸울 때 싸우더라도 함께 무언가를 나누려는 의미를 잃지 않는 것.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여전히 50대 엄마로서 생기를 잃지 않는데, 자꾸 자식들은 더 멀리있는 것을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 고민이 많아서 - 지금 이 자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저, 웹툰을 매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나와 다투고 얘기하고 밥을 먹고 싶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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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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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두 개의 국가를 갖게 된다. 즉, 가난한 자들의 국가와 부자들의 국가 말이다(454p).

 

 

방대한 두께에 일단 겁을 먹게 되는 책이다. 어디 두께만 그러할까. 제목 부터 ;국가;라는 참 군더더기 없는 단어가 돋보인다.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이 책. 하지만 알고보면 고전 중의 고전, 플라톤의 국가다. 많은 사람들이 전해 듣고 전해 주며 수 천년을 교훈 혹은 디딤돌 삼아 촘고했던 ㅁ병저.

 

그러고보면 '국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국가'라는 게 우리에게 얼마나 생활 밀접하게 자리하고 있는가. 태어날 때부터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국ㄱ적의 다른 이름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나라는 영토와 문화 안에서 국민들의 생활 양식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멀고 추상적으로 얘기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 내일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들으며 슈퍼에서 콩나물을 구입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들 조차, 우리는 국가라는 이름 안에서 다른 국가에 사는 사람들과 매우 다르게, 또 제각각으로 국가에 소속된 증거들을 티내기를 피할 길 없이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가'에 대해서 거시 담론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움츠러든다. 어쩐지 어렵고 무거운 것 같아서. 혹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게 될까봐. 아니면 이결국 좋은 국가, 올바른 국가, 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끝나고 우리에게 어떤 변화나 진전을 기대하게 만들지지는 못할 거라는 섣부른 실망과 포기 때문에.

 

이렇게 멋스러운 생김새와 말쑥한 차림새로 다시 세상에 등장한 플라톤의 국가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우리가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등한시한 이유와 동일하지는 않을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렇게 피하고 싶을만한 얘기였던 국가를 다시 차분히,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앉아서 곰곰히 되 짚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2012년에는 국내에서 유시민이 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역시 거대한 제목의 탈을 쓰고 등장한 국가 담론의 단행본이 있었다. 이는 국내 정치 체제를 상당 반영하면서도 오랫동안 현인들과 학자들이 진단해온 국가에 대한 정의와 다양한 사사을을 소개한 국가론 개론서 역할을 톡톡히 한 바있다. 국가주의 국가론과, 이상주의 국가론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려가며 우리나라에게 옳은 국가론이 무엇인가, 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왜 우리나라 다수는 보수를 지지하고 국가주의 성향을 띌 수 밖에 없는가, 왜 진보를 지지하려는 성향의 사람들은 어떤 욕구로 인하여 가치관을 발전시켜 왔는가를 살펴보는 책이었다.

 

이에 비견해 보자면, 플라톤의 국가론은 기존에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던 플라톤의 '국가론'을 방대하면서도 친절하게 서술하여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나, 우리가 살고 있는 올바른 국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기성 세대들에게나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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