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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동창회
인생의 정답은 여러 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마다의 길, 아름답게
시세이도 기업피알 TV광고 (p.18)
여기가 아닌 어딘가는
어디에도 없을지도 모른다
니카이도
술을 마시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잊어버리고싶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카이도 (술) (p.90)
바다는 푸른 정도가 딱 좋다
하늘은 별이 보일 정도가 딱 좋다
아버지는 무서운 정도가 딱 좋다
어머니는 많이 자상한 정도가 딱 좋다
친기는 귀찮은 정도가 딱 좋다
청춘은 바보스러운 정도가 딱 좋다
거짓말은 서툰 정도가 딱 좋다
고마움은 많은 정도가 딱 좋다
티비는 뒹굴면서 보는 정도가 딱 좋다
have your measure
계기는 후지테레비
후지테레비 (p.94)
저 사람도 한잔해보면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마시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놀라지 않아
'좀 그래.' 라고 생각하고 마셨는데
좋은 사람이었다면 기쁘지
세상엔 그런 일이 꽤 있는 듯해
산토리(술)
인생에는 생각보다 무수히 많은 반전이 있습니다. (p.112)
지금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힘내, 기운내. 라는 말보다
나라면 이런 곳에 데려오고 싶나고 생각합니다.
봄이 이리도 꼭
찾아오는 나라라서
다행이야
그래 교토에 가자
JR토카이
(p.116)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람은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빠이롯트 (p.214)
* 책 정보
「짜릿하고 따뜻하게」이시은, 출판사 달, 출판일 2011.04.15
*
20세기를 풍미한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좋은 광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최고의 광고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광고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일본의 명광고 카피를 소개하고 있는 이시은의 에세이 '짜릿하고 따뜻하게' 는 참 좋은 광고들을 소개하는 책인 것 같다. 그녀가 소개한 일본의 광고 카피들은 유난히 '우리 참 힘들지? 그래도 힘내 보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참 힘들지?' 의 태도가, 격려하는 선배나 영웅이 아니라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동지의 느낌을 준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22 페이지에 있는 조지아 커피 광고가 그렇다. '내일은 있다'라는 카피로 유명한 광고인데, 다양한 시리즈로 제작이 되어서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고 한다. 광고는, 잘난 친구 앞에서 주눅들지 말라고 가장의 무게 때문에 무기력해지지 말라고 말할 줄 안다. 생활 곳곳에서 힘들어지고야 마는 '내'마음을 눈치채준 광고를 본 사람들이, 상품 진열대에 놓인 '조지아' 커피를 보고서 한번 더 웃음을 짓고, 조지아 커피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종종 일본 소설이나 일본 에세이를 볼 때마다 은연중에 느낀 것인데, 일본어는 보통 '상담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상담자의 언어'가 전문적인 명칭은 아닌지만, 학교 다닐적에 교내상담센터에서 재학생 상담자로 활동하기 위해서 심리교육과 상담교육을 받으면서 상담시에 구사하면 좋은 언어 방식을 배운 적이 있었다. 타인에게 가장 경계심을 주지 않고 편안한 대화체는 '너는 - 하다.' 라는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나는 - 한 것 같다.' 라는 '나 중심 언어'라는 것이고, 결국에 이 '나 중심 언어'가 타인의 생각의 동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상담자의 언어'다.
상담자의 언어는 마치 혼잣말과도 같은 것인데, 청자에게 불편한 말일 지라도, '너는 조금 성질이 급해' 라는 말보다 '나는 너가 성질이 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라는 말이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짜릿하고 따뜻하게'를 읽으면서, 어쩐지 일본어투는 아무리 번역해도 뭔가 특유의 느낌이 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나 중심 언어' 처럼 쓰여진 일본어투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카피를 보더라도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
예를들면 시세이도 광고 카피에서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카피의 어투는 상당히 주관적이다.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습니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덕분에, 카피의 화자는, 광고의 청자와 동격으로 느껴진다. 광고 처럼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의 색깔을 존중받고 싶은 청자에게 '카피'의 화자가 어떤 동지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습니다' 라는 말보다 덜 교조적인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일본어 자체가 '나 중심 언어' 혹은 '상담자의 언어'와 그 문체가 닮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장기 불황에 '힘' 을 주고 싶었던 일본 광고 카피들의 전략은 '나 중심 언어' 즉 '상담자의 언어' 와 비슷해 보인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한국 광고 카피가 아니라, 일본 광고 카피에 위로를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평소에는 많은 광고들이 실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보다는, '내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을 때가 많아서 공감 보다는, 소유욕을 자극했던 것 같다. 광고의 목적은 '구매 행위'를 자극 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얘기이긴 하다.
물론 아무리 따뜻한 광고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광고일지라도, 그것이 결국에는 소비를 설득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잔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소외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나은 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가 매매의 세계에서 분리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고보면 이 책의 제목 짜릿하고 따뜻하게. 참 잘 지었다. 짜릿하면서도 따뜻한 한마디야 말로, 설득의 비결이라는 생각이다. 꼭 두가지가 함께 해야한다. 짜릿하고 따뜻한 말. 짜릿하고 따뜻한 연애. 짜릿하고 따뜻한 환희. 짜릿하고 따뜻한 추억. 짜릿하고 따뜻한 삶. (둘 중에 하나만 가져야 한다면 '따뜻한'만 남겨도 좋겠지만.)
짜릿하고 따뜻한 삶, 좋은걸.
* 추천하기 전에
리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카피와 함께 곁들어진 작가 이시은의 수필들도 읽어볼만하다. 그녀의 문체도 본인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만큼 매력적인 모습이다. 전문의 수식어들이 군더더기가 많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기자 문체처럼 딱딱하지도 않으며, 자기계발서 작가들처럼 무심하게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딱. 곱씹으며 읽기 좋다. 음미하기 좋다는 말은, 이 책의 담백함에 곁들여주기엔 좀 느끼한 표현 같다.
하긴, 원래 출판사 달의 책들이 그렇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감성적인데, 어쩐지 청승맞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