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위한 철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현전의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것에는 인간의 행동과 관련지어 건축과 건축가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가 포함된다. 이것은 건축의 기능적 고려는 거부하는 것과 이어진다. 이러한 해체주의적 건축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면서 맥락에 순응하기 보다 맥락을 추방해 버린다(215p

 

서양사의 개관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은 신고전주의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미술사의 세계꽌이 이동하는 과정이었다. 비례미와 형식미를 중시하고, 그것의 정적인 묘사에 주안점을 주었던 고전주의의 부활은 아름다움과 옳은 것은 본디 정해져있어, 그것은 마치 신이 쥐고 있는 진리와도 같은 척도를 생에서 추구해야하는 미적, 윤리적, 철학적 가치로 여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크가 태동하기 시작한다. 철저한 비례미와 대칭의 묘사를 거부한채 색채와 표현을 중시하기로 한 것이다. 겉 보기에 바로크 양식은 르네상스보다는 조금 덜 웅장하였으나 자유로웠으며,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멋스러움이 풍겨지는 것이었다.

 

왜 건축관련 책을 얘기하는데 서양사 얘끼를 뜬금없이 하느냐면, 이 바로크 양식의 태동기에대한 감상이 해체주의 건축물과 모더니즘의 무질서의 미학을 감상하며 얻는 감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싶은가? 신 아래에서 얼마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가?

무질서와, 자기 표현와, 자유에의 갈망은,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갈망보다 훨씬 달콤한 현재진행형인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인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해온 철학사의 변화 양상을 고려해보았을 때 던져지는 물음이다.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믿었을 떄, 인간은 대부분 신의 부름 혹은 영적인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탈피하려 하지 않았다. 북유럽에서는 가파른 협곡과 피요르드를 보며 거인이 잠든 형상이라고 상사할 줄 알았으며, 이집트에서는 신에게 훌륭한 경배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완벽한 비례미를 자랑하는 미술 양식을 곳곳에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피라미드와, 동일한 비례미로 반복 작화된 벽화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인간은 중세시대를 탈피하여 신과의 분리를 시작하기 시작한다. 진리를 직접 찾아나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내가 서양 미술사를 읽으며, 그리고 건축사를 탐독하며 바로크 양식과 해체주의에 감탄을 했떤 것도 바로 그 철학사와 인류사를 떠올렸기 떄문이다. 어쩌면 인류의 각종 문명과 문화는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어 당대의 욕구와 갈망을 참 잘도 반영하는 것일까. 즉, 인간이 신과의 분리를 선언하고 진리를 직접 찾아난 순간에 그들은 이집트와 그리스의 고전주의 미술과,기독교 윤리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을 테고, 그것은 미술이든 건축이든 무용이든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로운 표현으로 적극적으로 표추뢴 것이다.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건축은 건축가와 시공 전문가의 손길에 의해 분열, 왜곡, 중첩, 단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예삿일이다.오히려 미술보다, 건축은 정적인 양식의 규칙을 갖기 마련이다. 인간이 거주해야 하는 건물과 공간의 양식은 보통 그것이 생활의 규칙성과 편리성을 지지해야 함으로 반듯하고 견고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이 주는 놀라움은, 우리가 생활 가까이 혹은 도시 가까이 속에서 인류의 문명의 변화와 고민의 발전인 철학사를 깊이 체감하게끔 도와주는 안내서라는 데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 

책갈피 공유

 

'페이두'는 명문대를 향한 중국의 뜨거운 교육열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페이두는 자녀의 진학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뒷바라지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시간이 갈수록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의 부모까지 페이두를 하는 추세다. 심지어 부모가 페이두를 하지 못하는 상황일 경우 친인척들이 일정의 수고비를 받고 페이두를 하는 경우도 있다. (p.50)

 

가진 것 없는 부모가 자녀에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일본이다. 결과적으로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이으며 갈고닦은 기술이 해ㅏㅇ 분야에서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쟁력을 발휘해서 일본을 세계의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만든 근간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가난 탓에 재대로 자녀교육을 시키지 못한 일본 부모들의 비애가 숨어 있다. ...(중략)... 따라서 일본에선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교육열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다. (p.62)

 

"스캇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미국에서는 수준별로 반을 나누기 때문에 6학년만 되어도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요. 실력이 뛰어난지, 보통인지, 열등한지. 그리고 미국 학생들은 자기가 다른 아이들보다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똑똑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편이에요."

  브라이언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처럼 학생들을 수준별로 나누지 않고 모두 같은 교실에서 동등한 수업을 하는 것이 곧 동양인들이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보다 노력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증거라고 했다. (p.116)

 

일반화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낮은 자아를 '주체로서의 나(I)', 일반화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높은 자아를 '객체 혹은 대상으로서의 나(Me)'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자아는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데 서양에서는 '주체로서의 나', 동양에서는 '대상으로서의 나'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p.141)

 

*

책 정보

 

공부하는 인간 , KBS 제작팀 , 예담

 

*

 '공부하는 인간'을 향한 프로젝트는, 유대인은 어찌 그리 공부를 잘 하고 성공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학습 문화를 통찰하는 프로젝트다. 덕분에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칭화대에 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학업을 일찍 포기한 일본인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장인 문화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어떻게 존중받으며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마지막 제언이 모호하다는 점은 아쉬운 점 같다. 책 말미에는, 결과적으로 '토론식' 수업과 '질문 위주'의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붙는다. 학습에 대한 가치관과 공부법의 차이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기인한다고 열 띄게 토론해놓고, 결국 마지막 문장은 수십년간 동어반복되어온 서구식 교육을 본 받자는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서구식 교육을 본 받자는 내용에 무조건적으로 반기를 들어야할 이유는 없다. 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능력 발휘를 돕는 일이 서구식 토론 교육, 표현 위주의 학습 방법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본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문제 제기가 '호모 아카데미쿠스'라는 타이틀이랑은 어울리지 않지 않은듯 깊다. '호모 아카데미쿠스'라는 인류의 특정한 보편적 특징을 암시하는 이 단어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공부하는 인간의 심리적 문화적 이면을 통찰하는 이야기를 암시하는 데 더 어울린다. 적어도 그것이 하버드에 진학하는 유능한 대학생, 노벨상 수상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대인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학구열이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프로젝트 진행자의 섭외만 해도 그렇다. 한국 문화의 영향을 다소 받았을 이민 2세가 포함되어있긴 하지만 이들은 전부 이미 아이비리그에 다니고 있고, 유대인의 문화를 겪어본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진행은 서구의 명석한 학생들이 동양권의 학습 문화를 탐방 혹은 유람하는 형태다. 칭화대의 천편일률적인 기숙사를 놀라워 하며, 한국 고등학생들의 수학 풀이 실력에 혀를 내두르는 동안 동양 문화권의 공부법은 다소 진보적이지 못한 것으로 묘사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인 측면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선이 프로젝트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는가는 의문이다. 인간의 공부와 탐구에 관한 열정을 고찰하고자 했던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를 일부 배반하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인간의 열망을 탐구하고 싶었던 것일까, 공부 잘하는 비결을 탐구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길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결국에는 - 어떻게 하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아이비리그에 입학하여, 돈을 많이 버는 비결은 무엇일까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아쉽다. 만약 이 이갸기가 그런 이유로 매력적인 연구라면, 이것이 한국 사회에 풍요로운 전인 교육의 발전을 위한 문제제기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다시 1등을 위해서 학구열을 불태우고, 서구 사회에 뒤지지 않는 우등한 명문 사학을 형성하고 싶은 마음을 복돋고, 학습을 통해 입신양명하는 길이 생의 영광이라는 판단을 자극하는 데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추천하기 전에

 

 의미있는 탐구와, 흥미진진한 문화적 자료를 전달해준 책을 두고 괜한 볼멘 소리가 길었다. 다양한 문화권의 '학습 문화'를 고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인 것은 분명하니, '공부'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학부모님들과 생각 많은 10대들은 이미 많이 읽었겠다. 세계 곳곳의 '공부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 방문한 제작진과 다큐멘터리 진행자 4인방의 느낌과 인터뷰가 생생하게 담겨있어 흥미진진하기도 하니 재밌는 책이기도 하다.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 다큐멘터리와 함께 보면 더 좋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에릭 시노웨이 &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유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 책갈피 공유

 

언제나 나는 근사한 누군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문제는 그 바람이 좀 더 구체적이어야 했다는 점이다. - 릴리 톰린 (p.44)

"어머니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거야. '하워드, 너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단다. 단, 한 번에 되지는 않을 거야.'" 하!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p.143)

인도의 어느 승려도 비슷한 말을 했더군. '신은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당신 차례가 됐을 때' 라고 말이야. 이런 말들은 결국 앞날을 중장기적으로 내다봐야 한다는 뜻이지만, 지금처럼 당장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 (p.143)

"누구든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주어라."

"네가 받은 대가보다 더 많은 가치를 보답하여라." (p.212)

하지만 그건 함정이야. 타인의 비전과 유산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그건 딱 한 사람, 즉 본인에게만 맞추어져 있지.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옛말처럼 롤모델과 똑같은 결과를 기대하며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단 얘기야. 롤모델은 자신이 겪은 일을 경험하지 않았고, 같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아. 같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건 당연한 거고. 결국 그 사람은 자네와 다른 사람이야. (p.220)

 

* 책 정보

하워드의 선물, 에릭 시노웨이, 위즈덤하우스 , 2013

*

옆에 오래 두고 늘 찾아 배우고 싶고, 조언을 구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인품과 행실이 훌륭한 사람을 주변에 두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타인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배움을 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관계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관계망은 대부분 소유와 소속이 결정하는 탓으로, 어느새 행복을 결정하는 주도권을 소유와 소속에 빼앗기고 마는 경우가 빈번해진 모양새다. 남들 만큼 갖지 못해서, 남들 하는 만큼 어딘가 소속 되지 못해서 타인과 멀어지고 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대개 사회에 소속된 개인의 불행은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안 돼서 어떡하니? 라는 말보다, 한번에 안 되는 게 당연하단다. 라고 말하는 게 다시 시작해볼 용기를 준다.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안 된거야, 라는 다그침 보다 네 차례가 되면 신께서 도와주실 거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끈기를 잃지 않게 만든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관계망의 행복은 이런 독려일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끝 없이 무너지고 일어서고 다시 넘어질 수 있다. 그것은 비단 특정한 한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 만들어내는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의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그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 관계망의 관심과 상생일 수 있는 사회는 많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에 좋은 멘토가 있다고 한들, 나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개인적으로 이 책은 증정받은 책이다. 하지만 책을 제 돈 주고 구입했다면 지불해야 할 정가는 14,000원이었다. 아마 책에 쓰여진 말들을 자신에게 정말로 도움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14,000원 이상의 어떤 것을 얻고 책 값 그 이상을 얻는 사람일테다. 하지만 정말 책에서 느낀대로 행동하고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하워드의 선물을 읽기 전에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무언가 행동하고 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지나치게 '멘토의 가르침' 혹은 '유명인의 경험담'에 의존하고 그것을 읽는 행위에 위로받기만 하지 않았나, 반성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책으로 인생의 교훈을 구하고, 고민의 솔루션을 찾는 것, 좋다. 하지만 적어도 삶에 대한 행복을 고민할 때에, 좌절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말아야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지탱하는 것이 책이 아니라 정말 내 옆사람이기를 바란다. 우리 서로 서로가 모두에게 하워드 같은 관심과 조력을 담당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꿈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전에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하워드의 이야기가 특별하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야 만다.

<하워드의 선물>은 진솔한 가르침이 많이 담긴 유익한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물의 쓰임이야 받은 사람과 사회의 몫이질 않던가.

 

 

추천하기 전에

 

적어도 '성공하기 위한 습관'을 운운하는 어떤 책보다는 조금 더 삶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진솔한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러나 서점에 들를 때마다 새로운 자기계발서를 구입하기 위해 매달 만오천원씩 지불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라고 다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본인이 습관을 바꾸지 못하면 진솔한 누군가의 조언이 어떤 새로운 선물을 주지는 못할테니까. 적어도 최근 출간일 이후로 이 책의 가치를 논하고 있는 미디어에게도 같은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

 

 항상 이런 책을 읽으면 질투가 난다. 심지어 화도 나고. 다 읽고 싶지 않다는 못된 심보도 생긴다. 부러워서 그렇다. 어렸을 적 자신의 세계관을 뒤 흔들었던 미지의 세계를 성인이 되어 자신의 두 발로 직접 탐방해보는 기분은 꿈꿔본 사람에게는 동경이요, 경험해보지 못한 이에게는 영원한 환상이리라. 저자는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덕망 높은 자기 분야의 업을 달성하고도, 남는 시간에 - 무려 그리스까지 가서. 책까지 냈다. 그러니 부럽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려서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한 RPG 게임에 매료되어있던 나는, 전설 속의 전사가 되어 요정이나 드워프같은 외인구단들과 낯선 도시와 숲속을 탐험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판타지와 탐험은 나에게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세계관이자 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은 북유럽 신화를 전신으로한 바이킹 문화의 파생 상품이었고, 나는 반지의 제왕이나 라그나로크 게임과 같은 많은 문화 콘텐츠가 북유럽 신화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드는 힘, 이기고 싶게 만드는 동력을 주는 그 신화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 갔다.

 

 23살이 되어서 방문한 노르웨이는 환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낯선 얼굴을 한 노르웨이 현지인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내게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낯선 풍경이었음에도 그들에게는 매일 매일의 일상을 차지하는 풍경 속의 정말 새롭지 않은 그 무언가라는 것을 깨닫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황홀했다. 나는 그들의 삶 속에 자리한 북유럽 신화의 흔적들을 발견하면서, 생의 또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책은 2011년 겨울부터 첫 발을 뗀 여행의 출발점이자 총 열 권으로 풀어낼 이야기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어떤 시야를 뒤 흔들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동행으로 선택해서 여행을 함꼐 한다. 혼자 그리스에 들렀을 그가 전혀 외롭지 않아보이는 이유다. 그가 이 여행을 위해, 아니 자신이 동경하고 설레였을 세계를 위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수많은 저작들을 탐독하고 다시 읽고, 또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기록해 나갔을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게는 어쩌면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의 여행보다, 그의 지난 시간들이 더 황홀한 신화와 전설의 탐방으로 느껴졌던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측 불가능한 일반 대중이 아니라, 검증을 거친,

진짜, 정치적으로 신뢰할 만한 시민들을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삼는다.

 

풀뿌리 수준에서 경쟁은 우편물 발송 명단, 전화번호부, 팩스, 인터넷을 통한 전투로 바뀌었다. - 161p

 

 

  정치 동원이라는 말은 재미있다.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언뜻 보면 민주주의에서 굉장히 필요해 보이는 듯한 행위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정부를 자신의 의사에 맞게 끌어가기 위해서 평범한 시민들에게 어떠한 대가를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여가 아니라 '동원'이라는 말이 얼마나 피동적인지를 생각해 보자.

 

 그런데 저자들은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의 근간에 바로 이 정치 동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동원이 시민들은 정치의 주요 행위자로 초대했고, 그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게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대신 지금은 다운 사이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정치 동원이 전처럼 원활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결국 모로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꼴이지만, 어쨌거나 정치에 관심이 줄어들고 정치와 자신의 인생을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민주주의는 그 몸이 말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했을 정도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점점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변두리로 내 몰았다. 집단 이익의 표출이 아니라 개인 선택을 장려하는 장치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다를까. 민주당은 정부 사회 서비스 기관과 규제 기관, 소위 지원금 경제로 서로 엮인 비영리단체, 공익단체와 뉴스 매체의 주요 부문에 스스로의 영향력을 뻗치고, 공화당은 민간 기업과 민간 부문 이익집단, 종교단체, 그리고 보수 성향의 신문, 잡지, 방송국을 세웠다. 국내의 어떤 현상들이 떠올려지는 것은 나 뿐인가?

 

 민주주의가 다운사이징 되는 현상은 어쩐지 두렵다. 대신 민중을 대신하여 자신의 세를 뿔리는 기득권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유익한 민주주의, 올바른 방향성을 고민하려는 독자들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세상의 변화에 가장 큰 발길질을 하여 움직임을 이끌 수 있는 기득권이 그렇지 못하다면 변화가 그리 쉬울까. 정치 관료 뿐만 아니라, 경제 기득권들의 세가 늘어만 가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주로 한 민주주의 몰입을 말리기가 어디 쉬울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