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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 나의 친구, 나의 투정꾼,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면류관을 쓰지 않은 나의 엄마에게
이충걸 지음 / 예담 / 2013년 4월
평점 :
* 책 정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이충걸,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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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이나 그렇듯이, (아닌가) 곧잘 아웅다웅하곤 했던 우리 모녀는 서로 삐치기도 많이 삐치고 상처도 참 많이주면서 그 상처 위에 마데카솔도 둘만 서로 발라주곤 했다. 그런 엄마는 종종 내게 그런 말을 하곤 했는데, 엄마가 컴퓨터를 잘 하게 되면 블로그에 꼭 웹툰을 그려서 인기 작가가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뭘 그려서 인기 작가가 될 거냐고 물으면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그런 답을 하곤 했다. "못된 딸내미 얘기를 쓸거다. 좌충우돌 모녀 이야기 뭐 이런거. 다들 엄청 재밌다고 그럴걸?"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절대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을 거라며 엄마에게 핀잔을 줬다. 그러면 엄마는 또 "맨날 너네만 엄마 무시해!" 하고 씩씩거리면서 섭섭해하고. 어쩐지 이것은 진심으로 섭섭해 하는 듯하는 모습이다 싶으면, 가차없이 엄마는 살아온 50년 세월의 슬픈 일, 아쉬운 일, 후회되는 일, 섭섭했던 일, 다 끄집어내어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엄마의 인생은 얼마나 광활한 심해로 이루어진 것일까. 마음이 짠해지려고 하지만, 서로 웃기면서 시작해도, 다투면서 시작해도, 언제나 우리의 대화는 엄마의 인생에 대한 사소한 연민과 공감으로 마무리 되곤 하는 것이었다.
모녀 이야기를 웹툰을 그리고 싶다던 엄마의 마음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광활한 세계를 위탁하고 싶은 딸에 대한 애정, 그로 인한 야속함.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을 정도로 엄마의 정서를 자극하는 어떤 예민한 신경 세포들. 대부분 날들에 그런 세포들의 반응이란 악다구 같은 엄마의 행동이나 야물딱지다 못해 무서울 것 하나 없어보이는 유머로 표현되곤 한다. 모든 어머니들이 다 동일하게는 아니어도, 조금씩 비슷 비슷하게 나타난다. 어딘가는 참 주책스럽고 귀여우며 강인하고 여려진 엄마의 모습과 아직까지는 참 야속하고 철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기대고 싶고 말이 통하는 딸과의 줄다리기는 그래서 참 재미있는 웹툰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조금 야속한 딸로 묘사되겠지.)
이충걸의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는 어머니 대신 써준, 이충걸의 연재 칼럼이 아닐까. 서로의 세계가 다른 두 사람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가장 넓은 포용과 가장 깊은 연민으로 소통한다. 이충걸이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리모델링할 때에, 천장 인테리어를 두고 어머니와 얼굴 붉힐 실랑이를 했을 그 순간들도 그것을 기억하고 채집하여 다시 활자로 풀어내는 그의 시선에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져줄 수는 없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허하고도 세련된 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은 애정이 묻어난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어느 가족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작가 이충걸의 표현방식은 어떤 비슷한 주제의 책이나 글과는 조금 다른 그의 색깔을 가지는 것은 특징이다. 감정에 빠져서 다른 이들보다 내가 가진 것이 더 고귀하고 절실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며, 나이 앞에 연약해진 그녀의 체력과 세월의 균열과 교차로 인하여 어느 부분은 그 활기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시간을 동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여전히 강한 고집을 못 마땅해하고, 맛 좋은 게 요리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행복감을 가진 그녀의 찰나를 묘사해줄 줄 안다.
한 때, 엄마의 삶을 보상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어떤 것을 열심히 해내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나의 가족을 한 사람으로서 구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그녀의 삶을 존중하고, 그녀가 저지른 실수와, 경험하고 있는 후회를 안쓰러워 하기보다 값진 어떤 것으로 조망해 주는 것. 살가운 대사와, 조금 더 관심 어린 말 걸기와, 취향이 달라 싸울 때 싸우더라도 함께 무언가를 나누려는 의미를 잃지 않는 것.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여전히 50대 엄마로서 생기를 잃지 않는데, 자꾸 자식들은 더 멀리있는 것을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 고민이 많아서 - 지금 이 자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저, 웹툰을 매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나와 다투고 얘기하고 밥을 먹고 싶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