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를 구하라 - 주님이 주시는 생수에 관한 진실 마틴 로이드 존스 리빙워터시리즈 1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전의우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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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에서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중심으로, 기독교인이 누려야 할 최고의 축복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물을 마시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물을 마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본문을 한절 한절 꼼꼼히 분석해 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물을 마시는 데에 있어 장애물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꾸만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셨던 주제를 벗어나려고 하였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 또한 그것이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또 여인과의 대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예배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신령과 진정(진리와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이 어떤 예배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오직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께 복종할 때, 바로 그 샘물을 마시게 되며, 그러한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놀라운 복, 곧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성화)과 완전한 구원(영화)를 누리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읽어가는 동안 저자와 더불어 본문을 깊이 있게 분석해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작은 꼬투리 하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저자의 설교 스타일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저자의 설교를 읽다 보면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점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이 짧은 구절에서 이런 분량의 설교가 나올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저자가 2장에서 주님의 견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어, 이거 이상한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 다음에 성도의 견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신학적인 관성에 젖어 주님의 견인이라는 말을 부자연스럽게 느끼던 가운데 성도의 견인과 주님의 견인 모두를 놓고 생각해야 바른 이해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3장에서 “감사하게도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체험을 했고, 이 체험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저자가 논리와 지성에만 근거한 신앙만을 강조하는 편협한 신앙인이 아니라, 체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더 자세한 설명이 뒤에 나오더군요. “기독교 복음은 전인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저의 ‘지성’, 곧 이해에서 시작합니다. 복음은 지성에 제시된 진리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해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경험’입니다. 복음은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느낌이며, 반응이며, 지식입니다. 그 다음은 ‘실천’입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모두 포함됩니다. 절대로 이 가운데 하나를 나머지보다 위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동등하게 참여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온전히 포함되어야 합니다(109-110쪽).”

 

  이처럼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설명을 보면서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지성이나 감성, 또는 의지 중에서 어느 한 편에 지나치게 치우친 모습을 보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저자의 이러한 견해가 그런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4장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긴급한 것은 전도가 아니라 교회의 부흥(회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도 귀한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회복된 교회야말로 가장 훌륭한 전도자”라고 말하면서 “교회의 부흥이 언제나 하나님의 전도방법”이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흥의 체험을 가로막는 선입견과 영적 둔감, 회피 전략과 더불어 잘못된 예배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6장에서 진리로 예배하는 것에 대해 무지나 거짓, 위선이 없이 예배하는 것, 겸손하게 예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깊은 묵상에서 나온 설명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꼭 집어서 그렇다 라고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자는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숙고해 내어 소개해 주고 있었는데, 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저자가 7장에서 믿음의 기도에 대해 설명해 준 부분은 오늘날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왜 믿음이 아닌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믿음의 기도는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주어지는 것이며, 성령께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인도하는 것이지 스스로 결심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일으키실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는 결론으로 이것을 오해하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바로 이 장에서 소개된 내용들이었습니다.

  9장은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부분인데, 그것은 반쪽짜리 제목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장에서 저자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물을 얻는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복종에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장의 제목은 조금 길어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알고 그분께 복종해야만 생명을 얻는다 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설교집이었지만, 그러나 읽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또 기억에 남았던 책이었습니다. 어떤 설교집들은 읽기에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 반면, 저자의 설교집은 읽기에는 지루하고 괴롭기까지 하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관심사인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물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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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을 위한 천로역정
존 번연 지음, 유영희 옮김, 김천정 그림 / 성서원Kids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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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미 어른용으로 번역된 천로역정을 두 권이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두 권 다 손이 잘 안가더군요. 좋은 책이니까 구입해 두고 천천히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했을 뿐, 막상 읽으려 하면 부담이 되더라구요. 아마도 오래 전 천로역정을 처음 읽었을 때에 그 방대한 내용에 질려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경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마을들과 사건들, 그 각각에 대한 세사한 묘사는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 가지고는 도저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존 번연과 같은 청교도들이 쓴 책들은 웬만큼 익숙해지기 전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읽다 보면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처음 접해서 친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들지요. 그래서 천로역정과 같이 당시의 대중들을 위해 쉽게 쓰여 진 책도 오늘날에는 생각처럼 쉽게 읽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건 성경이 번역된 다음에 반드시 그 뒤를 이어 번역되어온 책이라는 이 천로역정이, 사실은 성경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잘 안 읽혀지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쉽게 번역된 책을 먼저 읽음으로써 그 대략적인 내용을 먼저 파악한 다음에 원전 그대로 번역된 어려운 책으로 넘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독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야말로 존 번연이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기대했던 그 의도에 가장 근접하게 번역된 책이 아니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술하려고 했던 책이 바로 천로역정이라면, 원전 그대로 번역된 책을 사 두고 어렵다는 이유로 아예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이렇게 쉽게 번역해 놓은 책을 읽음으로써 저자가 의도했던 유익을 조금이라도 얻게 되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의 경우라면 두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읽히기 위해 쉽게 번역된 성경을 사주는 것이 유행이 된 듯한데, 천로역정 역시 어린들을 위해 쉽게 번역된 책을 사주고 읽게 하면 정말 좋겠다는 것을 이 책을 받아 보고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 나오는 신앙 베스트셀러들도 어린이용으로 다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고전 중의 고전인 천로역정 역시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것이 아니가 라는 생각을 뒤늦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다른 번역본과는 달리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던 많은 인물들과 마을들과 사건들이 너무나 쉽게 이해되고 기억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보다 신앙이 많이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책을 엮은 분이 아동문학가시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로 만들어 주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싶습니다. 

글과 함께 구성되어져 있는 그림 역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게끔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 책이야 양장본에 올 컬러로 해서 비싸게 펴내는 것이 유행이지만, 초등학생들 책까지 그렇게 내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초등학생들이 볼 책이라면 저렴한 가격에 좋은 번역, 그리고 튼튼한 제본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부담 없이 구입해서 쉽게, 그리고 여러 차례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고루 갖춘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원전 그대로 번역된 천로역정이 부담스러운 어른들에게도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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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상한 지식 예수 그리스도 - 우리의 첫사랑을 찾아서
존 맥아더 지음, 전의우 옮김 / 두란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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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우리의 구세주로, 우리의 주인으로, 그리고 우리의 사랑의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과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찾아 원어까지 분석해 가며,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조금은 건조하고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번역상의 문제일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 이 책의 역자가 번역한 ‘존 파이퍼의 거듭남’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 책의 건조한 느낌은 아무래도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성향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예수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조직신학책의 건조함과 비교하면, 이 책의 건조함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반 성도가 혼자서 읽어가기에는 조금은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첨부되어 있는 부록을 보면서, 이 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매 주 한 장씩 읽어오도록 해서, 부록에 있는 소그룹 스터디 가이드에 따라 소그룹으로 모여 공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잘 진행되기만 하면 커다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마치 신학교 교수님의 기독론 강의를 녹취해 놓은 것 같은 책이기 때문에, 대충 훑어서 읽어가기 보다는 공부하듯이 꼼꼼히 정리해 가면서 읽어야 이 책의 참된 진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통해 어떤 감동을 받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읽는 동안 감탄할 만한 내용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구원의 서정과 관련된 용어의 원어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들은 한 단어도 소홀하게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정리였다고 생각됩니다. 유언장에 관련된 로마법에 대한 소개와 요한계시록 5장에 나타나는 일곱 인의 관계를 설명해 놓은 것이나, 고린도후서 5장 17-21절에서 찾아낸 화해의 다섯 가지 진리에 대한 정리는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잠언 8장에 기록되어 있는 지혜의 기독론을 다루지 않고 지나갔다는 점입니다. 잠언 8장에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시면서 자신이 창조자가 되어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창조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 중요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둘째로, 요한계시록 12:10절에 기록된 내용(..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을 근거로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끊임없이 고소하려 든다.. 사탄은 우리를 고소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라고 말한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 12:10에 의하면 이미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께 신자들을 고소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하늘에서 거할 수 없게 되었고, 욥의 시대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를 고소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라고 말하기보다, ‘사탄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고소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교리적 진술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완벽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성경 해석에 있어서의 탁월함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존 맥아더라는 저자가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혼자서보다는 여러 다른 분들과 함께 읽고 정리해 가면서 읽어 보실 것을 권유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공부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정리하며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요한 지식들을 부족함 없이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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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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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과장이려니 했다. 1억원이라는 고료를 지불해야 했던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이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본전이라도 건지려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이 책을 띄우려 하는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도 이 작품은 띠지에 쓰여져 있는 것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우주적 상상력이나, 댄 브라운의 방대한 스케일을 넘보는 그런 종류의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은 전혀 우주적인 상상력이나 방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 조금도 밀리지 않을 정도 수준의 작품이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단지 그들의 작품과 분위기가 달랐을 뿐. 이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찾자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정도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소설을 손에서 놓아왔던 만큼 기대감을 가질 법도 하지만, 그동안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이런 류의 작품에서 느껴온 실망감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게다가 작가의 첫 장편이라니. 그런 몇가지 이유들로 인해 기대감을 반쯤은 접고서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탁월한 내용 전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문장의 전개에 아무런 걸리적 거림이 없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미련맞게도 마음 속으로 소리를 내어 읽어가야만 하기에, 문장의 전개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어색함도 마뜩잖아 했던 나인데도, 그런 거슬리는 부분을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내용의 치밀함은 더욱 완벽했다. 과연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더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학원에 입학했을 뿐 아니라, 수 년 동안 이 작품 하나를 위해 준비하며 씨름해 온 결과물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작품 속에서 현자가 이루어낸 학파라는 세계는 오늘날 지성의 산실이라 불리우는 대학이라는 세계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현자의 모습은 제자들의 발견을 자신의 발견인양 발표하는 대학교수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고, 학파의 불문율을 깨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상징적인 죽음은 대학교수들의 비리를 폭로한 학생들이 더이상 그 세계에 발붙일 수 없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현자의 모습 속에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신의 자리를 탐하여 온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또한 그의 자리를 넘보았던 제자 히파소스의 모습 속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을 죽여서까지 권력을 손에 쥐고자 했던 현자였지만, 그러나 그에게도 순수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나이들어 가면서 그와 같이 변질되어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그럼에도 작가는 현자에 의해 살해당한 제자 디오도로스의 동생 아리스톤을 그 수렁과 같은 탐욕의 굴레 밖으로 밀어내 주었다. 그와 같은 존재가 있어야만 진실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독자가 생각했던 간결한 결말과는 완전히 다른, 허를 찌르는 듯한 의외의 결말은 언제나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참주 킬론이 과연 자기 아들의 아기를 가지고 자신을 이용해 보려는 코레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 내내 궁금했다. 모든 계획이 마무리 된 후 단순하게 살해해 버리는 데에서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죽음까지도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참주 킬론의 모습에서 작가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그려낸 참주는 작가의 설정에 너무나 충실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현자 못지 않게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을 어찌 그리 탁월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주인공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히파소스가 역사적 기록과는 달리 행복한 결말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작가의 치밀한 반전에 의해 완벽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히파소스가 당연히 역사적 기록에서처럼 비참하게 죽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글을 읽어 갈수록 작가는 끊임없이 그를 살리려고 하는 듯이 보였고, 행복한 결말을 주려는 듯이 보였다. 정말 그렇게 믿고 싶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더니 예상외의 반전으로 그 기대를 배신해 버렸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인해 한편으로는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하지 않은 마무리에 감사했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허를 찌르는 반전의 결말로 인해 이 책은 자신이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의 전개상 꼭 필요했던 수학에 관한 내용은 읽는 내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대충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었을텐데,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그럴 수 없게 했고, 덕분에 단단히 고생을 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다가 수학에 관한 내용을 만날 때마다 멈추어 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일까. 하지만 오랜만에 머리 복잡하게 지냈던 청소년기의 수학 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이 던져 준 선물이라면 선물일지 모른다.

책을 덮으면서 궁금한 것 몇 가지가 숙제로 남았다. 작가는 왜 현자의 자녀가 셋이었다고 했을까. 책의 내용 중에는 단지 두 명의 자녀만이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는데. 혹시 내가 중간에 놓친 것은 아닐까. 또 왜 작가는 현자의 딸 다모가 아리스톤과 맺어지게 했을까. 다모는 아리스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궁지로 몰아넣었음도 알고 있었을텐데, 과연 무슨 이유로 그에게 접근해 그와 결혼하고 그의 아기를 가졌던 것일까. 그녀가 단지 어머니 테아노의 정염을 그대로 물려 받았기에 과거에 한눈에 반해버린 아리스톤에게 접근했다고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은 결코 이 소설의 구성이나 내용 전개가 제대로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아니다. 그저 사적인 궁금증일 뿐. 

이 책은 내게 있어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오랜만에 읽은 치밀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특별한 교훈과 도전과 감동을 목적으로 쓰여진 신앙 도서를 위주로 독서해 오던 나에게 이 책은 오랜만에 인간의 더러운 본성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기회를 주었고, 소설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탐욕스러운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 역시 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신처럼 군림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귀한 통찰의 기회를 던져준 작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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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성경 : 생활풍습 이야기 상(上) - 성경의 비밀을 푸는 생활풍습 이야기 열린다 성경
류모세 지음, 최명덕 감수 / 두란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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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교회를 개척하고 너무 바빠서 준비를 제대로 못한채 설교를 하시는데, 성경에 기록된 '조각목'을 조각난 나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가 얼마 뒤에 그 '조각목'이 사실은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성도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 역시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 해서 설교를 하지만, 때때로 그와 비슷한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나 그 지역의 환경에 대해 모르고 있는 바가 워낙 많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배경을 알기 위해 여러 주석도 참고하고, 또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의 문화나 환경에 대해 소개하는 여러 종류의 책들도 찾아 읽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열린다 성경 생활풍습이야기(상)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앞서 나온 네 권의 책도 구입해 놓기는 했는데, 집사람이 먼저 읽기 시작하는 바람에 나중으로 미루어 두고 있었습니다. 읽으려고 계획했던 책을 집사람이 먼저 읽기 시작하면 집사람이 다 읽기 전에는 왠만하면 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책읽는 속도가 상당히 느린 관계로 네 권짜리 시리즈를 구입한 뒤로 몇 개월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이 새롭게 나옴에 따라 이 책 만큼은 내가 먼저 읽자 하는 마음에 집사람이 손대기 전에 먼저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가장 먼저 들어온 느낌은, 여백이 좀 많은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독성은 뛰어난데, 여백이 좀 많다 보니 왠지 가격에 거품이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그러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시원시원한 삽화였습니다. 지금까지 접해 본 이스라엘의 풍습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일반적으로 흑백사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진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어두컴컴한 흑백사진을 올려 놓은 경우 도대체 무슨 시잔인지 알아보기 힘들어 이런 사진을 왜 실어 놓았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또 그런 단점을 보완한다고 매끌 매끌한 종이에 컬러사진을 몰아서 실어 놓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매 장의 내용과 사진을 올려 놓은 페이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각각의 내용 바로 옆에 그 내용을 설명하는 그림들을 시원시원하게 그려서 올려 놓으니,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 중에 1/3 정도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내용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주석을 통해서 이래 저래 알게 되는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내용도 많았고, 또 원어로 볼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까지는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속옷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또 채색옷이라 번역된 옷은 어떤 옷인지를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채색옷이 사실은 속옷의 일종이라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잘못된 지식 가운데 있었는가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요셉에 대한 본문을 설교할 때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옷에 달려 있는 청색 술의 의미와 용도, 그리고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를 만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예수님이 그 여인을 향해 딸아 라고 부르셨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본문을 설교할 때에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예루살렘과 베들레헴과 여리고, 그리고 나사렛에 이르는 각각의 거리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커다란 소득이었습니다. 지도를 살펴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해도 막상 계산해 보려고 하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 여태까지 내버려 두었던 것인데, 이 책을 통해 손쉽게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일마다 누가복음을 연속으로 설교하고 있는데, 지난 주에 18장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19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8장과 19장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바로 여리고 입니다. 그리고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하룻길 정도가 되지요. 또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삼사일 길이 됩니다. 이런 정보를 얻고자 하면 지도를 보면서 복잡하게 계산해 보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주석을 살펴 보다가 운좋게 발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앞두고 이렇게 적절한 시점에 이러한 정보를 얻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이 외에도 새로 알게 된 정보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하나 하나 나열해 놓는 것은 스포일러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정보들은 제가 앞으로 설교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구입해 놓은 다른 책들도 어서 읽어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책을 통해 일반 성도들이 이미 알게 된 내용을, 목회자들이 전혀 모르는 가운데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설교를 준비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이겠는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교해야만 하는 목회자들에게 있어 반드시 읽어 두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설교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이러한 책들을 공부하는 것은 결코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목회자들부터 읽어 보고 성도들에게도 권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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