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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2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 소설이라 하면 대체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는 차원에서 쓰여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토머스 크롭웰은 헨리 8세나 앤 불린, 또틑 울지 추기경이나 토머스 모어와 같은 인물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기에 책을 읽기에 앞서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펴본 내용에 의하면 토머스 크롬웰은 대단히 야심이 많은, 그리고 처세에 능한 인물로 그려져 있더군요.
토머스 크롬웰의 초상화도 세 개 정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한결같이 탐욕스러워 보이고 야비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당대의 유명한 초상화가인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도 그 가운데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책의 뒷 표지에 기록되어 있는 옵저버지의 소개에도 초상화 이야기가 나와 있더군요. "홀바인의 초상화에서 토머스 크롭웰은 엄격하고, 계산적이며, 무자비해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는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이어지는 옵저버지의 소개는 이 소설을 정확하게 평가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맨틀은 이 소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을 삭제하고, 공식 기록에서는 말소되어버린 인간미 넘치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맨틀이 그려낸 토머스 크롭웰은 역사 속에서 숨겨져 버린 실제의 인물을 그려낸 것일 수도 있지만, 반면에 역사적인 인물과 전혀 상관없는 가상의 인물을 그려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왜 그와 같은 모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와 같은 시도가 결코 헛된 모험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정치라는 세계에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야비함과 탐욕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러나 그들 중에는 원치 않는 가운데서도 살아남기 위해, 또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다 보니 그와 같은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토머스 크롭웰과 같이 말입니다.
이 책에서 토머스 크롭웰은 자신의 가족들을 깊이 사랑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섬기던 추기경에 대해서 끝까지 의리를 지켰던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가 헨리 8세의 총애를 받게 된 것도 어쩌면 추기경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헨리 8세가 울지 추기경에 대한 연민으로 인해 추기경의 오른팔이었던 그를 곁에 두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헨리 8세의 선택을 받게 된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대단한 기억력과 계산능력,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과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그로 하여금 헨리 8세의 총애를 받게 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에 대하여 탐욕스럽다거나 야비하다고 하는 것은 단지 적대자들의 입장에서 내려진 평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섬기던 주인의 마음을 읽고 그가 원하는 말을 해 주는데 탁월하였을 뿐이며, 또한 주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권력자들은 누구라도 그를 곁에 두고 자기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조건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손해를 보게 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몰락한 추기경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추기경이 죽은 뒤에야 새로운 주인을 찾아나섭니다. 찾아나섰다기 보다는 새로운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그 새로운 주인은 헨리 8세였고, 그 이후로 8년간 자신의 최선을 다해 그를 섬겼습니다. 그는 후에 헨리 8세와 독일 클레브의 공주 앤의 결혼을 주도했다가 그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헨리 8세는 홀바인이 그린 앤의 초상화를 보고 그 모습에 반해서 데려왔는데 실물이 실제로는 너무 못생겨서 한 번도 동침하지 않고 내쳤다고 합니다. 그래도 독일과의 동맹관계를 생각해서 그녀와는 계속해서 우정을 나누는 관계로 남았다고 하는데, 그 결혼을 추진했던 토머스 크롬웰은 그 일로 헨리 8세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죽일 것까지 있을까 싶은데 사형에 처하고 말다니 헨리 8세도 보통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괄호 안의 내용은 소설 속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토머스 크롬웰이 마침내 헨리 8세가 바라마지 않던 캐더린과의 이혼을 성공시키고, 앤 불린을 왕비의 자리에 앉히는 데에서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울지 추기경 이후에 대법관이 된 토머스 모어의 몰락과 죽음에서 끝을 맺습니다. 토머스 모어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그가 헨리 8세의 이혼에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인데, 사형을 위해 갖다 붙인 죄목은 반역이었습니다. 왕보다 교황을 더 따랐다는 것입니다. 울지 추기경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툭하면 반역이라는 죄목을 걸어 정적을 제거하려 들던 당시의 정계는 실로 목숨을 걸고 건너가는 살얼음판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맨 마지막 문장은 이 소설이 여기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님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크롬웰은 토머스 모어의 사형 뒤에 제인 시모어의 집인 '울프 홀'에 갈 계획을 메모하는데, 제인 시모어는 앤 불린에 이어 헨리 8세의 세 번째 왕비가 된 여인입니다. 그녀는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중에서 그 누구보다 헨리 8세의 사랑을 받았던 왕비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후에 이어지게 될 소설의 내용은 토머스 크롬웰이 제인 시모어가 왕비가 되는 데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1,000여 페이지가 넘는 내용이라 책이 두 권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가독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는데, 그렇다고 넘치게 낭비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금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표지 디자인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Wolf Hall에서 o자와 a 속에 들어가 있는 초상화 그림만 아니었어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o자에 넣어진 헨리 8세의 초상화 일부가 왠지 영국 사람이 아닌 중동 사람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책의 이미지 전체를 망쳐 버린듯 했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그 그림이 헨리 8세의 초상화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라도 초상화 전체의 그림을 실어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장에서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갈 때 무언가 내용이 끊어진 듯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때문에 도입부에서는 내용 이해를 위해 조금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첫 번째 장은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게 된 일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두 번째 장에서는 갑자기 추기경의 비서로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정말 부드럽고 매끄럽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각 장의 내용이 시간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고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는 일들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혼동은 각 장의 제목 밑에 기록된 연도를 확인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어 가면서 잘 만들어진 대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깔끔하게 정제되어진 글투에서 작가의 필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문장이 단문이었는데, 깔끔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문장들이었습니다. 특히 상황을 묘사하는 저자의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인물들의 얼굴 표정이나 기분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었고, 건물이나 거리의 풍경 또한 마음 속에 그려 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생소한 내용, 독자들이 잘 모를 것 같은 내용들을 난하주로 처리한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등장 인물이 다양한 데다 익숙하지 않은 영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흐름을 쫓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작가가 그러낸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에 깊이 빠져 들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잃고 슬퍼하는 그의 모습에 깊으 연민을 느꼈고, 추기경의 몰락을 함께 하며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위기 앞에 선 중년의 고민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토머스 크롬웰을 슬퍼할 줄 아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남자로 그려 놓았던 점이 그를 악인으로 보기 어렵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역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의 이야기가 먼 옛날 어느 먼 나라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조금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초에 읽었던 '소현'이라는 소설에서 느꼈던 것은 '글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기에 몇 번은 더 읽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세 네 번 정도 더 읽으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숨겨진 의미들까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소설들에 견주어 결코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입니다. 별 여섯 개를 주고 싶은, 추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