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성 연대기 ㅣ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400페이지나 되는 이 소설의 두께를 보면서 처음에는 장편소설일 것이라고 확신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해 보니 단편 소설 모음이었고, 그 내용도 완전히 개별적이라 서로 서로 연결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짧은 단편은 겨우 두 페이지, 또는 세 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스피디한 전개나 극적인 내용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책을 내려 놓지 못했던 이유는 이 소설에 대한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이 결코 평범한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읽어 가다 보니 과연 그렇다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짧은 단편 하나 하나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와 닿았던 단편은 '2001년 6월 달은 지금도 환희 빛나건만'이라는 단편이었는데, 지구인들의 화성 탐사를 미국의 개척 시대 때 벌어진 인디언 학살에 빗대어 쓴 이야기였습니다. 지구인들의 우주 식민지 개척이 과거에 있었던 학살극의 재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윤리적인 고민을 던져 준 의미있는 글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마음에 와 닿았던 단편은 '2005년 4월 어셔2'라는 단편이었는데, 이 소설에 대해서는 '어셔가의 몰락'이라는 소설을 쓴 에드가 앨런 포우라는 작가에 대한 오마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단편에서 저자는 지구에서 벌어진 문화적인 억압 정책을 피해 화성으로 이주해 온 주인공에 의해 벌어진 잔혹한 복수극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성으로 이주하기 30년 전의 지구에서 대분서 사건이라고 불리우는 사건을 겪으며 자신의 박물관에 소장했던 모든 책들과 필름이 불태워지는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만화책이나 탐정소설과 같이 공포와 환상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모든 소설과 영화 필름들을 불태우도록 하는 법령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기억을 안고 이주해 온 화성 식민지에서까지 지구에서와 똑같은 정책이 세워져 과거와 동일한 사건이 다시 벌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정책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어셔가의 몰락'이라는 에드가 엘런 포우의 소설에 묘사된 어셔가의 건물 그대로를 재현해 만들어 놓은 건물에 그 사람들 모두를 불러 모으고 파티를 벌이는 척하면서 한 사람씩 살해하고 그 건물 자체도 붕괴시켜 버립니다. 이는 정치 권력에 의해 예술 및 문학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현실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저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026년 백만년짜리 소풍'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지구가 대전쟁을 통해 멸망하게 되었을 때 단 두 가족만이 살아남아 화성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들이 화성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감으로써 새로운 화성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리라는 전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지금과 같이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것과 같은 멸망을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 때가 되면 화성과 같은 새로운 피난처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단편들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갖게 된 생각은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날 일이 분명한데, 저자는 바로 그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 속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될 일이라는 사실을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앞으로 세워 나가야 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그 시대에 있어 선지자의 시각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자신의 글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눈에 그려볼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도전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스피디한 전개와 통쾌한 액션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중도에 읽기를 포기할 만큼 느린 전개와 밋밋한 진행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만한 소설이지만, 동시에 추천사와 역자 후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음미해 볼만한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는 작품이라는 점 또한 분명합니다. 별점을 얼마를 주어야 할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 소설이 그렇게 의미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제 취향과 정반대의 스타일이라 별 넷을 주었습니다. 아마 점액질의 기질을 가진 분들이라면 별 여섯 개를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그리고 소설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좋아할만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