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몰입 - 가우스 평전
후베르트 마니아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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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저 천재 수학자라는 사실과 동명의 전자기 단위가 그의 이름에서 왔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던 가운데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리고 그가 떠나고 난 뒤에 그의 뇌가 어떻게 보존처리되었는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 관한 중요한 내용들은 거의 다 기록되어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단지 위대한 수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천문학자, 측지학자, 물리학자로서도 활동하면서 놀라운 연구 결과를 내 놓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 모든 것이 단지 그의 천재성으로 인한 것 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발견하고 증명한 중요 이론을 발표할 때까지 완벽을 기하기 위해 기울였던 시간을 보면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짧게는 4년, 7년, 그리고 십 수년 동안 씨름하며 정리해 놓은 이론이 무려 50여 가지나 된다는데, 그의 집념과 끈기있는 노력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그토록 위대한 수학자가 되게 해 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수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 없었더라면 누구라도 그와 같은 결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아니었다면 그의 천재성도 그렇게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조금만 더 외향적인 인물이었다면 그의 연구는 더 엄청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폭적인 연구지원에 대해 약속했던 러시아측의 초빙 요청이나, 강의를 하지 않고 오로지 연구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겠다는 프로이센측의 초빙요청을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더 좋은 대우를 끌어내는 데에만 이용했을 뿐 더 나은 연구 환경을 위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는 그로 하여금 연구비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하였습니다. 또한 모르스보다 훨씬 앞서 전신 실험에 성공하고 실용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공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어두웠던 탓에 특허를 포기해 버렸던 점은 연구비 부족에 시달리던 그에게 있어서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그는 누구에게 무엇인가 부탁하는 것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소수의 지인을 통해서 자신이 부탁을 받는 형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려 했습니다. 이와 같은 소극적이면서도 체면치레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둘째 아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자 그로 인해 집안 전체가 수치를 당했다고 생각하여 그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던 것이나 막내 아들의 도와 달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던 모습에는 그의 체면을 중시하던 태도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낮은 신분의 출신이라는 열등감에 뿌리를 둔 자존심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저자가 가우스라는 인물의 위대한 면만 부각시켜 그려내지 않고, 인간적인 약점까지 균형있게 그려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성공은 천재성만이 아니라 열정과 집념과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완벽주의적인 꼼꼼함 역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격적인 면에서의 약점이야 쉽게 고칠 수 없는 부분이고, 장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기 마련이라, 그의 약점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검소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던 그의 모습으로 인해 성격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게 모난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겠지만, 청년이라면 꼭 읽어 보라고 권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이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살펴 보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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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맥주의 위대한 성공, 기네스 브랜드 인사이트 시리즈 1
스티븐 맨스필드 지음, 정윤미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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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 보니 맥주(를 비롯한 거의 모든 종류의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작권을 국내의 출판사에 중개한 에이전시가 블로그에 이 책에 대해 소개해 놓은 글을 통해 이 책이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출판사인 토마스 넬슨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며, 기네스 가문의 신앙 전통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 가면서 기네스 가문의 역사와 사회적인 공헌에 대해서, 그리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맥주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1장에 기록된 맥주의 역사에 관한 내용은 저에게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스코틀랜드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그곳에서는 기독교인들도(심지어 목회자들이나 어린아이들까지도) 위스키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 있었지만, 이 책에 소개된 맥주에 대한 이야기는 그 때의 충격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나 칼빈 같은 이들이 맥주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나 청교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올 때에 음료수로 물이 아닌 맥주를 배에 싣고 왔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기까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간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있어서 맥주를 만드는 기술을 유용하게 이용하였다는 사실도 처음 접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진과 럼주와 같은 독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망가져 갈 때, 맥주라는 술이 그러한 독주를 대신할만한 대안음료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기네스 가문의 사람들이 맥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2장에는 기네스 가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아더 기네스의 일생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솔직히 아더 기네스가 리피 강물을 공장으로 끌어 들이려고 불법으로 수로를 만들었던 것이나 수로를 막으러 나온 시 보안관에게 맞서 곡괭이를 들고 위협하며 욕설을 해 댔던 것을 보면서 그가 그렇게 신앙이 깊었던 사람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맥주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저자가 아더 기네스의 신앙에 대해 극찬에 가까운 이야기를 늘어 놓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에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더 기네스의 신앙은 아마도 공장의 운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로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아더 기네스가 존 웨슬리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로버트 레이크스의 영향으로 더블린 최초의 주일학교를 시작하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는 분명 사업가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이후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의 3장에서는 아더 기네스의 후손들이 어떻게 선대의 뒤를 이어 기네스를 세계 최고의 맥주 회사로 만들어 갔는가 하는 것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부친의 밑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워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부친의 뒤를 이었던 것을 보면서 역시 장인의 가문이라는 감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의 4장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이룬 성공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였는가 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에 대해 후하게 대우했던 모습이 가장 먼저 마음에 와 닿았고, 직원들은 물론이거니와 지역 사회의 빈민들을 위해서까지 의료적인 도움을 베풀었던 모습 역시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의 5장에서는 아더 기네스의 후손 중에 목회자나 선교사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는데 목회자인 저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관심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장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소개되고 있었던 인물은 바로 헨리 기네스라는 인물이었는데, 그가 이루었던 순회전도자로서의 성과는 물론이거니와 성경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이스라엘의 건국과 관련된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이 장을 읽으면서 참으로 재미있게 생각되었던 것은 헨리 기네스가 기네스 가문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주에 관해 설교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책의 6장에서는 현대에 이르러 기네스라는 기업이 겪었던 다양한 변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광고를 시작하게 된 일이나 사업을 다각화하게 된 일, 그리고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이라는 회사와의 합병을 통해 디아지오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주류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변화를 통해 기네스 가문의 전통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추츨해 낸 기네스 가문의 기업 운영에 관한 다섯 가지 원리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신앙적으로 잘 분별하여 결정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후대를 교육하며,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며, 직원들에게 투자한다'는 내용으로 정리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원리가 기네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이 가문이 보여준 모습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면모들을 종합해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정리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저자가 이 책에서 기네스 집안의 기독교 신앙과 회사 운영과의 관계를 충분히, 그리고 심도 있게 드러냈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더 기네스의 후손들이 너무나 극명하게 두 개의 길로 나뉘어 각자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회사 운영에 재능을 보인 사람들과 목회자나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들로 극명하게 나뉘어져 살았던 그의 후손들을 보면서, 아더 기네스의 신앙과 재능이 후손들의 대에서는 완전히 둘로 나뉘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더 기네스의 신앙이 충분하게 전수되었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커다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는 일을 맡았던 후손들에게 아더 기네스의 신앙적인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회적인 기여나 공헌은 전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쉬움은 저만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누가 보더라도 기네스라는 기업은 멋진 기업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기업의 기독교적인 정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또 많은 기독교인 사업가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직원들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고, 사회적인 기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 번 읽어 보았으면 싶은 책입니다. 저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 하더라도 저와 마찬가지로 많은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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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받은 박사들의 3색 대화
정성욱.김인수.김동찬 지음 / (도서출판)이든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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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의 저자가 함께 저술한 책이라고 해서 어떤 형식일까 궁금했었는데, 좌담회 스타일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책이더군요. 주제는 물론 신앙에 관한 것이었는데, 매 장마다 하나의 신앙 주제에 관해 저자분들의 전공을 중심으로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말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대화의 화두를 던지는 역할은 생명공학 전공자인 김동찬 박사님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독실한 신앙을 가진 생명공학자답게 모든 주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 원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동찬 박사님의 아버님이자 영문학 전공자인 김인수 장로님은 문학적 입장에서, 또 조직신학 전공자인 정성욱 교수님은 신학적 입장에서 그 주제에 대한 의견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김동찬 박사님이 소개하는 생리학적인 용어들이 저에게는 많이 생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ATP생성 효소복합체 단백질이라던가, 스케폴드 단백질이라던가 마이코 플라즈마와 같은 이름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용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인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런 이름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백질이나 원핵 세포 미생물이 생명체 내에서 담당하는 역할이나 기작하는 방식 속에서 신앙 원리와의 유사점을 찾아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들의 대화를 통해  첫 장인 원죄에 관한 내용에서부터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것이 피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점과 원죄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유전 법칙이 중요한 논제가 된다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원죄라는 단어가 어거스틴에 의해 가장 먼저 사용되었고, 칼빈은 모든 사람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대표성의 원리 또는 법적 전가설에 의해 설명했지만, 어거스틴은 죄인이 죄인을 낳는다는 원죄 유전설을 주장했다는 사실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이코 플라즈마라는 원핵 세포 미생물을 예로 들어 죄의 놀라울만한 침투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이 신경 써가며 고이고이 배양하던 세포가 마이코 플라즈마에 오염되면 미련없이 그 세포와 세포를 배양하던 배양액을 쏟아 버려야 한다는 점과 하나님의 소중한 창조물인 인간들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려질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연결시켜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죄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청년기에  교회나 학교 선배들과 더불어 여러 신앙 주제에 관해 토론하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더군요. 그 때에 저는 선배들을 통해 교역자가 아닌 일반 성도라고 하더라도 신앙적인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고 또 신앙 도서를 꾸준히 읽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주제일지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입장에서 신앙적인 견해를 충분히 내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섬기는 교회의 교역자가 이 책에서 정성욱 교수님이 담당하셨던 것과 같은 역할을 맡아 주기만 한다면, 신앙적인 대화나 토론 모임은 신학적으로도 안전할 뿐 아니라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모임이 될 것입니다. 김동찬 박사님이나 김인수 장로님께서 이와 같이 자신의 전공 분야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또한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그리고 그러한 모임에 참여함을 통해서 지금까지 다듬어 온 실력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이러한 대화 내용을 설교로 재구성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동찬 박사님이 말씀하신 생리학적인 원리를 도입부로 잡고, 정성욱 교수님이 말씀하신 성경 구절을 설교 본문으로 삼은 다음, 그 본문에 대한 교수님의 신학적인 설명을 설교의 중심적인 내용으로 전개하고, 김인수 장로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을 예화로 삼아 살을 붙이면 한편의 멋진 설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생각은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 설교에 이용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이 책이 각 장의 주제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는 데 있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아마도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생소했던 학문의 영역에서 기독교 신앙과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그 주제에 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을 지켜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동찬 박사님을 통해서는 생명 원리에 숨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섭리를 배울 수 있었고,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생명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성욱 교수님의 쉽고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신학적 설명에서도 많은 도전을 받을 수 있었고, 김인수 장로님의 문학적인 접근에서 좋은 설교 예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 분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원리와 신앙 원리 간에 있는 놀라운 유사점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감사했습니다. 많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읽혀져서 좋았고, 얇게 느껴지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삶과 신앙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점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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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교회에서 위대한 교회로 -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겸비한 교회
더그 배니스터 지음, 조계광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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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에서 청년부 수련회를 다녀온 후로 성령님에 대해 설교하지 말라는 담임목사님의 경고를 받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청년부 수련회에서 있었던 예기치 않았던 신비스러운 일들(방언)과,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 얻게 되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 설교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청년부 소속이었던 담임목사님의 딸이 제가 했던 설교의 내용을 수용하기 힘들어 했고, 그것 때문에 사모님과 장시간의 대화를 나누었고, 자신의 딸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사모님 역시 제 설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담임목사님을 종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던 데에는 그 외에도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제 입장에서 그 교회를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삼위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인 성령님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제한당한 이상 그 교회에 설교자로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 사역했던 교회에서나 이후에 사역했던 교회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성령님에 대한 제 입장이 유독 그 교회에서만 문제가 되었던 터라 그 일은 제게 매우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출간된 몇 권의 책들을 통해 촉발된 개혁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의 논쟁은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논쟁에 휘말려 또 다시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극단주의적인 은사주의자들과 극단적인 은사중단주의자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균형잡힌 시각이 은사주의자들 쪽에서는 그나마 받아들여진 반면, 은사중단주의자들 쪽에서는 완전히 이단처럼 취급당하는 경험을 통해 이 문제가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극단적인 은사주의자들의 광적인 모습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개되면서, 그리고 그들 가운데 만연한 성적인 일탈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면서 은사중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말씀과 은사의 조화로운 이해 역시 설 자리를 잃어 버린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답답한 상황 가운데에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이나마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 책의 탁월한 논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복음주의와 은사주의의 전통 모두가 개신교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점을 강조해서 그렇지 그 모두가 성경에 근거를 두고 도출된 진리이기 때문에 어느 한 편을 취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함께 취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각각의 전통에서 강조하는 강조점들을 각각 다섯 개 씩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전통에서는 '강해 설교, 성경의 권위 인정, 하나님 나라를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 영적 성장을 과정으로 보는 시각, 말씀은 관계의 상황에서 가장 잘 배워 적용할 수 있다는 시각'을 언급하고 있었고, 은사주의 전통에서는 '기도에 대한 강조, 하나님 나라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시각,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씀하신다고 보는 시각, 참여하는 예배의 강조, 성령의 은사는 관계의 상황 속에서 가장 잘 경험될 수 있다는 시각'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강 줄기를 하나로 합칠 때마다 요란한 충돌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따라 말씀과 능력을 조화시키는 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선 계시로서의 성경과 은사로서의 예언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예언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아래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못 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성경에서 에언의 은사에 대해 강조한 부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과, 실제로 교회의 예언 사역 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유익에 대해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챕터에서 설명된 내용은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책의 부록에 가서 이 부분에 대한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신학적인 논증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두 부분이 서로 나누어지지 않고 한 군데서 다루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방언의 유익과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랑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또 신앙 감정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신앙 감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영리에 소개되어 있는 신앙의 열차 비유가 감정이라는 부분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저 역시 이전부터 느껴오고 있던 바였기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앙은 분명 지식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감정이 따라와야 하고, 감정이 따라올 때 의지적인 순종 또한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부분에서 신앙 감정에 대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저서를 길게 인용하여 신앙에 열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유익한 내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살아있는 예배, 치유를 위한 기도, 다양한 은사의 사용을 통해 진리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또한 신자들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챕터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저자가 몇 차례에 걸쳐 언급했던 말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것은 "치유기도를 받고 싶은데 그런 기도를 해 주지 않아서 교회를 옮겨야 했다"라는 성도들의 말과, 또 이와는 반대로 "더 깊은 진리를 배우고 싶은 데 그런 가르침을 얻을 수 없어서 교회를 옮겨야 했다"는 성도들의 말이었습니다. 저자의 교회는 그런 아쉬움 때문에 찾아온 성도들로 인해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는데, 어떤 이들은 그것에 대해 수평이동이라느니 양 도둑질이라느니 비판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교회를 옮겨서라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성도들의 결단이 눈물겹게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문제로 교회를 옮겼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그들의 갈급함에 대해 교회가 무관심했으면 그들이 교회를 옮겼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말씀과 능력이 조화를 이룬 교회를 세워야 할 필요성에 대해 또 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오늘날의 시대가 다원주의적인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진리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득되어서 신앙을 갖기 보다는, 내가 경험한 바에 따라 진리라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되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양한 종교 가운데 자기 마음에 드는 종교 하나를 선택해 진리라고 믿기로 결정해 버리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기독교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 역시 전부터 생각해 오던 내용이었기에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초대교회가 세워졌을 당시의 이방 세계 역시 다원주의적인 시대였었고, 그러한 시대에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던 바울 사도가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표적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제가 예전에 부교역자로 섬겼던 교회의 어떤 권사님은 젊어서 자궁암에 걸려 죽게 되었다가 교회에 나온 뒤에 기적적으로 치유받고 살아나셨습니다. 원래는 조상 대대로 절에 다니시던 분이었는데, 아무리 불공을 드려도 낫지 않아 죽음만 기다리고 계시다가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교회에 가자고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라 나왔는데 말기암이 사라지는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흔이 넘은 그 때까지도 건강하게 살아 오고 계셨습니다. (그 교회를 떠난 지 오래 되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간증을 통해 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인도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적과 기사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요한 전도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요소를 외면하고 자기들의 논리적인 설득만으로 복음을 전하려 하니 오늘날의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에 실어 놓은 부록은 단지 부록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출판사에서 소책자로 따로 떼어 출간해 준다면 성도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 드리고 성령론 특강 교재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복음주의 신학자로 이름 높은 은사중단주의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비성경적인 주장인지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비판하고 있는데, 속이 다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특히 워필드나 존 맥아더의 주장이 비성경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 주고 있었는데, 저자에게 찾아가서 큰 선물이라도 안겨 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은사중단주의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분명한 근거가 이렇게 제시되고 있지만, 극단적인 은사주의자들에게 질린 사람들은 이것마저도 외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사단이 기대하고 있던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짓된 역사를 끊임없이 일으킴으로써 진실된 하나님의 역사 마저도 외면하게 만들어 버리려는 사단의 수법에 더 이상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른 모든 진리에 대해서는 바른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왜 성령님의 역사나 은사에 대해서만큼은 편협하고 치우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대략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의 교만한 태도와 이로 인해 받은 상처와 열등감이 그 이유겠지요. 하지만 은사주의자들 역시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상처를 받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서로 다투고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곡식이 익어 밭이 희게 되었습니다. 두 흐름이 하나로 모여 함께 힘을 모아 추수에 나설 때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기독교와 참종교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거짓된 종교들이지 우리의 지체들이 아닙니다. 이 사실에 대해 이 책이 가르쳐 준 교훈은 우리가 두 흐름의 전통 중에 어느 편에 서 있든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교훈이라 생각됩니다. 별 여섯개가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제 리뷰가 약간은 은사주의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제가 경험했던 개인적인 상처 때문임을 밝혀 드립니다. 저자는 복음주의 전통에서 자란 분으로써 자신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면서 모든 사안에 대해 매우 온건하고 겸손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제 리뷰로 인해 선입견을 갖게 되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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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일본 만화들을 보면서 일본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탐정에 관한 만화가 많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는 탐정업이라는 직업이 합법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만화나 소설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탐정업이 아직까지 합법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흥신소, 또는 심부름센터라는 부정적인 이름의 업체에 속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범죄자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인 듯 싶습니다. 그나마 얼마 전 민간정보원법이라는 법률이 국회에 입법예고 되었다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탐정이라는 합법적인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탐정 만화나 탐정소설이 많이 나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탐정에 관한 만화나 소설은 거의 대부분 영국이나 미국,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고 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들여온 탐정물이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즈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걸출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탐정 소설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만화 영화를 제외하면 탐정물을 별로 접해 본 적이 없는 저였기에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냥 흔하디 흔한 일본 작가 중의 한 사람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에서도 개봉된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영화가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영화조차도 아직까지 보지 못한 상태이지만 텔레비전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었고, 또 주변에서 들려온 극찬에 가까운 반응을 접해 보았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꼭 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은 또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든 느낌은 너무 짦은 것 같다, 너무 아쉽다는 것이었습니다. 300페이지가 약간 넘어가는 소설을,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해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 다 읽어 버렸다는 사실에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가독성 좋은 편집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는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미 있으면 재미 있을수록 더 길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라, 왠지 맛있는 음식을 몇 입 먹다가 만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단편 모음집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소설은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 모음집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다른 배경, 다른 등장인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다섯 편의 사건 모두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탐정클럽 소속의 탐정 두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부자들, 또는 사회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민간조사기관인 탐정클럽 소속의 탐정으로써 한 사람은 남자,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여자입니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007가방을 든 남자와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하반신이 그림자 스타일로 그려져 있는데,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 두 명의 탐정을 그린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남자 탐정의 모습은 30대 중반에 외국인과 같은 외모이고, 여자 탐정은 20대 후반의 미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뢰인을 만나러 올 때는 항상 검은 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사건 조사를 위해 변장이 필요할 때에는 아주 멋진 모습으로 차려 입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단편에서 여자 탐정에 관한 사실을 조금 더 알 수 있었는데, 정말 멋진 여성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나운서처럼 낮으면서도 또렷한 목소리, 그리고 어깨까지 오는 검은 단발 머리에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잘 빠진 몸매, 매력적인 입술에 지적인 분위기, 위쪽으로 길게 찢어지기는 했어도 맑게 느껴지는 눈으로 묘사되어 있더군요.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을 만한 설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멋진 것은 그들이 의뢰받은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형사 콜롬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용의자들을 계속해서 찾아가 끊임없이 귀찮게 질문해 가면서 정보를 수입하는 모습이 아니라, 의뢰를 받고 사라졌다가는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이미 모든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서 연락해 오는 그들의 실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그 정도 실력이라면 매달, 또는 매년마다 고가의 회비를 지불해 가면서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편의 단편 모두가 살인이나 자살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탐정클럽의 탐정들이 항상 그런 일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회원들이 오너로 있는 회사 직원들의 비리를 조사하거나 배우자의 부정을 조사하는 일 등 다양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그 실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나중에 그들의 정체를 밝혀 준다면 아마도 정부의 특수정보기관 출신으로 설정해서 소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섯 개의 단편 모두가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었고, 또 허를 찌르는 의외의 전개가 탁월하게 느껴졌습니다. 끝까지 범인을 알기 어려웠던 점이야말로 작가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개의 단편 중에 두 번째 작품인 덫의 내부라는 작품은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범인이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른 작품들처럼 흥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내용의 전개에 약간의 헛점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도입부에서 익명의 세 사람이 범죄를 모의할 때 나이 많은 한 사람이 살해 대상자에 대해 '그 인간'이라는 표현을 두 차례에 걸쳐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과 살해 대상자의 관계로 볼 때에 '그 인간'이라는 표현보다는 '그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인을 숨기기 위해 작가가 무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가 일본의 문화적인 관습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미처 신경쓰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었다고 느껴졌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범인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읽을 때에는 정말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드러난 범인인 가정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라는 점이었습니다. 가정부는 손녀의 수술비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은 대가를 받아낼 수 있었는데, 왜 스스로 죽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더라도 약속된 돈이 지불되었겠지만, 상황이 바뀐 만큼 반드시 살아서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하고 돈을 요구했어야 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헛점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단편들에서는 그와 비슷한 헛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음에는 작가의 장편 소설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질이 나서 단편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탐정 소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소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영화로 만들거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장편으로 탐정클럽의 매력적인 탐정 두 사람을 다시 만나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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