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일본 만화들을 보면서 일본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탐정에 관한 만화가 많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는 탐정업이라는 직업이 합법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만화나 소설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탐정업이 아직까지 합법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흥신소, 또는 심부름센터라는 부정적인 이름의 업체에 속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범죄자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인 듯 싶습니다. 그나마 얼마 전 민간정보원법이라는 법률이 국회에 입법예고 되었다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탐정이라는 합법적인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탐정 만화나 탐정소설이 많이 나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탐정에 관한 만화나 소설은 거의 대부분 영국이나 미국,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고 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들여온 탐정물이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즈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걸출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탐정 소설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만화 영화를 제외하면 탐정물을 별로 접해 본 적이 없는 저였기에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냥 흔하디 흔한 일본 작가 중의 한 사람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에서도 개봉된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영화가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영화조차도 아직까지 보지 못한 상태이지만 텔레비전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었고, 또 주변에서 들려온 극찬에 가까운 반응을 접해 보았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꼭 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은 또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든 느낌은 너무 짦은 것 같다, 너무 아쉽다는 것이었습니다. 300페이지가 약간 넘어가는 소설을,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해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 다 읽어 버렸다는 사실에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가독성 좋은 편집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는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미 있으면 재미 있을수록 더 길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라, 왠지 맛있는 음식을 몇 입 먹다가 만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단편 모음집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소설은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 모음집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다른 배경, 다른 등장인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다섯 편의 사건 모두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탐정클럽 소속의 탐정 두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부자들, 또는 사회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민간조사기관인 탐정클럽 소속의 탐정으로써 한 사람은 남자,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여자입니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007가방을 든 남자와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하반신이 그림자 스타일로 그려져 있는데,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 두 명의 탐정을 그린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남자 탐정의 모습은 30대 중반에 외국인과 같은 외모이고, 여자 탐정은 20대 후반의 미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뢰인을 만나러 올 때는 항상 검은 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사건 조사를 위해 변장이 필요할 때에는 아주 멋진 모습으로 차려 입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단편에서 여자 탐정에 관한 사실을 조금 더 알 수 있었는데, 정말 멋진 여성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나운서처럼 낮으면서도 또렷한 목소리, 그리고 어깨까지 오는 검은 단발 머리에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잘 빠진 몸매, 매력적인 입술에 지적인 분위기, 위쪽으로 길게 찢어지기는 했어도 맑게 느껴지는 눈으로 묘사되어 있더군요.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을 만한 설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멋진 것은 그들이 의뢰받은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형사 콜롬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용의자들을 계속해서 찾아가 끊임없이 귀찮게 질문해 가면서 정보를 수입하는 모습이 아니라, 의뢰를 받고 사라졌다가는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이미 모든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서 연락해 오는 그들의 실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그 정도 실력이라면 매달, 또는 매년마다 고가의 회비를 지불해 가면서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편의 단편 모두가 살인이나 자살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탐정클럽의 탐정들이 항상 그런 일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회원들이 오너로 있는 회사 직원들의 비리를 조사하거나 배우자의 부정을 조사하는 일 등 다양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그 실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나중에 그들의 정체를 밝혀 준다면 아마도 정부의 특수정보기관 출신으로 설정해서 소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섯 개의 단편 모두가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었고, 또 허를 찌르는 의외의 전개가 탁월하게 느껴졌습니다. 끝까지 범인을 알기 어려웠던 점이야말로 작가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개의 단편 중에 두 번째 작품인 덫의 내부라는 작품은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범인이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른 작품들처럼 흥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내용의 전개에 약간의 헛점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도입부에서 익명의 세 사람이 범죄를 모의할 때 나이 많은 한 사람이 살해 대상자에 대해 '그 인간'이라는 표현을 두 차례에 걸쳐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과 살해 대상자의 관계로 볼 때에 '그 인간'이라는 표현보다는 '그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인을 숨기기 위해 작가가 무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가 일본의 문화적인 관습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미처 신경쓰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었다고 느껴졌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범인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읽을 때에는 정말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드러난 범인인 가정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라는 점이었습니다. 가정부는 손녀의 수술비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은 대가를 받아낼 수 있었는데, 왜 스스로 죽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더라도 약속된 돈이 지불되었겠지만, 상황이 바뀐 만큼 반드시 살아서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하고 돈을 요구했어야 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헛점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단편들에서는 그와 비슷한 헛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음에는 작가의 장편 소설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질이 나서 단편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탐정 소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소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영화로 만들거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장편으로 탐정클럽의 매력적인 탐정 두 사람을 다시 만나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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