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칼
데이빗 월커슨 지음, 탁영철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 세계적으로 1500만부가 판매되고, 5천만명이나 되는 관객들을 감동시킨 영화의 원작이라는 광고에 마음이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읽으면서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왜 이렇게 대단한 사역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아마 저자의 사역이 시작된 때가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1958년의 일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 싶으면서도, 진작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과거에도 한국어로 번역된 적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베다니 출판사에서 새롭게 번역해 출간하는 수고를 해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먼 훗날에나 이 귀한 기록에 관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출판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인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이 펜실베이니아의 필립스버그라는 시골 마을에서 안정적인 목회 생활을 하던 중에 예기치 않았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뉴욕의 청소년 갱단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단체를 일으키게 된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라이프지'라는 잡지에 살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속된 청소년 갱단원들의 사진이 실렸는데, 그 사진을 보면서 갑자기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 저자는 여기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의 소년들을 만나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뉴욕으로 가게 되는데, 재판이 끝난 뒤 판사를 만나려 했다가 거절당하고 좇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재판정에서 쫓겨나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게 되고, 그로 인해 청소년 갱단원들로부터 호의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저자는 청소년 갱단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펜실베이니아에서의 사역을 내려놓고 뉴욕으로 옮겨 온 저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센터를 마련하고 수많은 청소년 갱단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지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사택 부엌을 둘러 보다가 바퀴벌레에 놀란 사모님이 도저히 여기서 살 수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중에 저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은 성도들은 만장일치로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모시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의 결정을 기다리던 목사님과 사모님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기드온의 양털로 삼았던 모든 조건들이 놀랍게 맞아 떨어지면서 사모님의 마음이 돌아서고 그 교회에 부임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뉴욕에 와서 판사를 만나기 위해 벌였던 일도 처음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의미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청소년 갱단원들의 마음을 앋게 된 것도 그랬습니다. 또 청소년 집회에서 니키에게 헌금위원을 시키라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했을 때 벌어졌던 일도 그랬습니다. 통장에 아무런 여윳돈도 없는 상태에서 센터 건물로 적합한 건물을 마련하게 되고 계약금과 중도금이 놀랍게 채워졌던 일도 그랬습니다. 그 모든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자신의 종들을 인도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설사 그러한 순종이 아무런 의미없는 일로 보이거나 심지어는 미친 짓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통해 놀랍게 일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았던 것은 헤로인 중독에 빠졌던 청소년들이 어떤 의학적 처치도 효과가 없는 상태에서 성령의 임재와 역사(책에서는 '성령세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를 체험함으로써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 일들이었습니다. 헤로인처럼 독한 마약에 중독되면 아무리 대단한 결심을 하더라도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만,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체험하기만 하면 어떤 중독에서도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다는 증거를 이 책에 기록된 내용들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읽는 동안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는 말씀이 생각나면서 감동이 몰려와 마음이 울컥하는데 제어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간증집을 읽다 보면 사람을 너무 크개 드러내는 내용 때문에 실망하게 될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면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역사에 대한 간증으로 가득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읽어가는 내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계속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섬기는 사역에 대해 가졌던 과거의 열정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청소년 사역자들이 자신의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자신의 사역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크게 허락되기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티머시 켈러 지음, 전성호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라는 제목만 가지고서는 도무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책표지를 넘겨서 영어 제목(The Prodigal God)을 보고 나서야 무슨 내용의 책인지 알겠더군요. prodigal이라는 단어가 많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잭 윈터의 '아버지의 집으로'라는 책에서 처음 보고 마음에 새겨 두었던 단어였습니다. 잭 윈터는 그 책에서 "이 단어의 의미에는 '방탕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아낌없이 낭비하는'이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탕자에게만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에게도 이 형용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아낌없이 재산을 나누어 주고, 또 다시 돌아온 그 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는 그 아버지야말로 prodigal father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티머시 켈러 목사님 역시 이 prodigal이라는 단어를 탕자의 아버지의 성품을 잘 묘사하는 형용사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이 형용사를 '아버지'를 대신해, 그 '아버지'가 의미하고 있는 본래의 대상인 '하나님'께 직접 연결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상당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방탕한 아버지(직역했을 때)'라는 표현도 충격적이지만 '방탕한 하나님(역시 직역했을 때)'이라는 표현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충격적인 표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낌없이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으로 이 이상의 표현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으로 표현한 것도 과히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글 제목보다 원래의 영어 제목이 책의 내용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제를 직역해서 '방탕한 하나님'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면, 기독교인들은 탕자의 비유와 관련된 책이구나 하고 알아챘을 것이고, 비기독교인들은 도대체 무슨 내용에 관한 책인가 하고 호기심을 보였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처음에 prodigal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에는 잭 윈터의 책과 거의 비슷한 내용의 책이겠구나 하고 지레 짐작해 버렸었습니다. "아,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구나!"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책의 내용을 1/3 정도 읽어가면서부터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처음부터 1/3 정도까지는 탕자의 비유에 관한 개론적인 설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전에 읽었던 탕자의 비유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던 핵심적인 내용들 대부분이 그 짧은 분량 속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내용 중에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입혀 주라 하였던 '그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은 분명 '아버지의 옷'이었으리라는 것과, 돌아온 동생으로 인해 맏아들이 분개했던 이유 가운데 한 가지가 돌아온 동생을 아버지가 받아들임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아버지의 재산 중의 일부를 돌아온 동생에게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아내 탕진해 버린 동생이 다시금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유산을 자신의 몫에서 떼어 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 본문의 내용에는 그와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추론해 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의 복권이 완전한 복권이라고 한다면 유산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할 것이기에 저자의 추론은 정당한 추론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추론해 낸 뒤에 이것을 더욱 더 풍성한 진리와 연결지어 설명해 나갑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것이 돌아온 동생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맏아들에게 요구되었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깊은 진리를 설명하기에 앞서 저자는 이 비유에 등장하는 두 아들의 선택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은 각각 도덕적 순응의 길과 자기 발견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이 두 사람이 걷고 있는 두 종류의 길 모두가 틀렸음을 지적하셨다고 주장합니다. 두 아들이 선택한 길은 모두 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하나님을 떠나려는 시도였고, 궁극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자 구원자가 되고자 하는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서부터 맏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잃어버린 두 아들 가운데 저자가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둘째 아들보다는 맏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이 책의 가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이 비유 속에 나타나는 세 명의 인물들 가운데 맏아들보다는 둘째 아들이나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맏아들 역시 잃어버린 아들 중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책들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저자와 같이 맏아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저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맏아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오늘날의 신앙인들에 대한 적용은 놀라울 정도로 예리합니다.

저자는 맏아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분노가 있음에 주목하면서 그 분노의 원인이 결과지향적인 이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또한 맏아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있는 경쟁심과 비교의식, 그리고 두려움에 바탕을 둔 도덕주의,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자기중심성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분석과 설명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저자가 맏아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예로 들고 있는 '세 사람의 비유(81-82쪽)'는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할 지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백미는 '제5장 진정한 첫째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저자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개의 비유 가운데에서 앞의 두 비유에는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누군가가 있지만, 세 번째 비유인 탕자의 비유에는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세 번째 비유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했어야 할 사람이 바로 맏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탕자에게는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 줄 만한 형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형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형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돌아온 동생 때문에 맏아들이 치루어야 했던 대가에 대한 저자의 추론이 더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에겐 자신의 복권이 공짜였지만, 첫째 아들에게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 조건없이 둘째 아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고, 누군가는 그 값을 치러야만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첫째 아들의 희생 없이는 둘째 아들을 복권시킬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104쪽)." 아, 얼마나 감동적인 설명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에수님께서 치루신 대가의 크기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설명에 이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갈망에 대해 설명하면서, 인간의 유배 상태와, 그 유배 상태가 끝나는 시점에서의 잔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잔치(구원)에 대해 한 장이나 되는 분량을 할애해서 그 잔치(구원)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가운데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변화'에 관해 저자가 설명해 준 내용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우리의 지성과 마음에 더 깊숙이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영구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소화하고 우리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141쪽)?" "모든 변화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깊어진 이해가 마음 속에 만들어 내는 변화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동기, 자기 이해, 정체성, 세계관을 재구성한다. 마음의 변화가 없다면, 규칙을 준수하는 행동은 피상적이며 일시적일 따름이다(146-147쪽)." "변화된 삶의 열매를 맺는 유일한 그룹의 사람들은 더 힘써 일하거나 더 복종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들이다. 본 회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삶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주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대강은 이해하고 있지만, 죄의 심각함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이다.(151쪽)" "만약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믿음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믿음 위에 힘든 노력을 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아직 예수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152쪽)." 이러한 저자의 설명을 통해 변화의 근원은 오직 '복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깨달음)와 믿음'뿐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유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맛보기에 불과하며 그 이상의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는 분이고 그의 은혜를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이사야서 25:6-8의 본문을 기록해 놓았는데, 거기에 기록된 마지막 날의 잔치에 대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약속이 책의 앞부분에서 만났던 내용에 대한 기억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느낌의 장정, 그리고 여러 차례 눈에 띄였던 오타'등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로 인해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기에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배워야 할 진리의 가치가 너무나 큽니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맏아들에 대해 이 정도 깊이의 분석과 적용을 보여 준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유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제3의 아들인 예수님에 대한 설명도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관해 제대로 공부해 보려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이 시작된 날 투모로우 Tomorrow 1
존 마스든 지음, 최소영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호주 최고의 작가가 쓴 최고의 청소년 소설'이라는 명성 때문에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그런데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더군요. 저는 이 책이 인기있는 청소년 소설인만큼 내용 전개 속도가 상당히 빠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지루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반 문학소설을 읽는 만큼이나 진도가 천천히 나가더군요. 흡입력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구요. 그리고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만큼 남자 주인공이 내용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이 여자였을 뿐 아니라 그 주인공의 시점에서 모든 일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설명해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남자라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 주인공이 보여주는 감정의 흐름을 좇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제가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 소설의 작가(존 마스든.1905.9.27~)가 이제 예순에 접어든 남성 작가라는 사실 때문에 "과연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사춘기 소녀의 정서가 사실과 얼마나 부합할까?"라는 의구심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나오는 주인공인 청소년들의 신체적인 접촉에 대한 묘사도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하이틴 로맨스 소설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중학생인 아들 녀석이나 초등학생인 딸에게 보여주기에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고등학교 이상의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장년 독자들이 청소년 시기에 느꼈던 일탈과 변화에 대한 열망들을 가슴 속에서 다시 들추어 보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북이 서로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야말로 저자가 상상했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에 적합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청소년기를 지나며 저자가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마음 속에 상상해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가 묘사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마음이 와 닿는 면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이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내용이 전혀 뜽금없는 이야기처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 책에 기록된 내용들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의 친구 중 하나인 호머라는 친구는 그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지혜롭게 느껴지는 결정을 내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고려해야 할 만한 것들을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몇 명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고 마을 외곽에 있는 산골짜기에 며칠 일정으로 캠핑을 다녀온 사이에 외국 군대에 의해 마을(사실은 나라 전체라고 해야 맞겠지요)이 점령당합니다. 그리고 마을을 점령한 이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한 장소에 구금해 버립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여행을 갔던 그 외진 장소에 아지트를 꾸미고 마을의 상황을 계속해서 주시하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무엇보다 살아남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에 농작물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는 일도 시작하는데, 이 뿐 아니라 그 외국 군대를 물리치고 가족들을 구출해 내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전쟁을 배경으로한 하이틴 로맨스 같다고 말을 했지만, 그래도 전쟁 소설인만큼 긴장감 넘치는 장면도 적지 않았습니다. 쫓아오는 수색대를 물리치기 위해 잔디깎는 기계를 폭발시켰던 것이나, 부상당한 리를 마을에서 피신시키기 위해 구출 작전을 벌인 것이나, 유조차를 다리 밑에 끌어다 놓고 소떼를 풀어 감시병들의 시선을 분산시킨 뒤 폭파한 것 같은 장면은 아마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서도 가장 볼만한 장면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곱 권이나 되는 시리즈라니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1권의 내용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 시리즈가 최고의 청소년 소설이라 불리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고, 그 이유는 아마도 계속 이어지는 책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면 이 책에 대한 관심도 더 늘어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좀 더 어린 아이들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아이들과 함께 보고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작가가 묘사한 주인공의 내면 심리에 대한 청소년들의 반응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래 저래 다른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한 소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땅끝의 아이들 - 이민아 간증집
이민아 지음 / 시냇가에심은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어령 교수님의 회심 기록인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은 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듯 합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을 당신께로 이끄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건들을 통해 준비하시고 일하시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분의 따님인 이민아 목사님(그 때까지만 해도 집사님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을 통해 일하신 일들을 보면서 이 분의 이야기도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 바람이 이루어지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솔직히 '땅끝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그렇게 와 닿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서문에 소개되어 있는 제목에 대한 설명도 그렇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의 중반 정도를 지날 때쯤부터 이 제목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서문에 소개된 내용이 수긍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자신과 자신의 섬겼던 아이들과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땅끝의 아이들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끝의 아이들에게 주님이 어떻게 찾아오셨고, 또 어떻게 만나주셨는지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겪었던 일들을 해당 연도와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해가며 소개해주고 있었는데, 그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해 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가 겪어온 삶의 굴곡은 무척이나 고되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씨름했던 노력들이 눈물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자를 어떻게 변화시켜 오셨는지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연단하시는 과정의 고통을 참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자에게 주신 모든 시련이 저자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끝의 아이들을 섬기라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소개하라고 저자를 부르셨음을 그러한 연단의 과정을 보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변화와 성장, 사역의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언제나 함께 하시며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였지만, 저자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던 것이 간증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교회에 대한 저자의 속상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현재 목회자로 안수받고 치유와 중보기도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저자도 염려했던 것처럼, 그러한 사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한국 교회에 많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하게 느낄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삶에 나타난 기적들이 모두 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인한 결과라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이 자신의 삶 속에 나타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사로잡혀 기적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말씀과 성령사역에 있어서 균형잡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무미건조한 신앙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책은 귀한 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자가 겪었던 고통(이혼, 암투병, 자폐증 자녀, 실명과 같은)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암으로 투병 중인 저희 교회 성도님에게 권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인 우리 아이들에게도 권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춘기 자녀와 관계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도 귀한 지혜를 얻게 해 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귀한 은혜와 도전을 받게 되었으면 좋겟습니다.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내지 않고 평안히 사는 법 - 찰스 스탠리의
찰스 스탠리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결혼 전까지만 해도 제가 그렇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인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아내와 계속해서 부딪치는 일을 통해서 제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보았습니다. 아내와의 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도 읽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상담도 받아보고 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은 제 안에 많은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부당한 일을 당할 때에 느끼는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제 안에서 가장 주도적인 감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제 안에 그러한 감정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데까지 나아갔고, 그 결과 어느 정도는 제 안의 분노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자신의 변화를 보면서 이제는 분노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벌어진 몇 몇 사건들을 통해서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 동안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여전히 저는 분노의 문제와 싸우고 있고, 내면에 뿌리내린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면의 분노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지혜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자야말로 그러한 지혜를 가르쳐 주기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읽었던 저자의 책들은 각각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깊고 넓은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 또한 그러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조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저자가 얼마나 탁월한 성경교사인지를 재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분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삶과 분리된 진리로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예로 들어가며 그와 같은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리로서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또한 스스로의 분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저자의 가르침은 성경이 말하는 바에 따라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라, 그런 사람들을 멀리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제 자신이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이러한 가르침이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릅니다. 저자는 제 주변 사람들에게 저를 멀리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뜨끔한 느낌은 제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닫고 느끼도록 해 주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멀리 해야 할, 또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위험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이러한 경험은 저에게 참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분노를 '격노, 적개심, 의분',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해 주고 있었는데, '의분'에 대해 설명하면서 소개해 준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설명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성경이 분노에 대해 500번 이상 언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350번이 하나님의 분노에 관한 것이라는 지적은 참으로 놀랍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의분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놓은 내용을 보면서 제가 스스로 의분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얼마나 어리석에 표현해 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가르침은 제가 지금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왔던 말씀이었습니다. 저자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는 이 말씀에 대해, '이것은 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와 일상생활에 관한 말씀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의문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자가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이는 '모든 행동에 대해 온전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 온전하라'는 명령이라"고 설명한 것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실제로 그 구절 앞에 기록된 구절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명령'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힌 어떤 남성의 말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느 날 지혜로운 친구와 오랜 시간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웠어요.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 외에는 사람에게 확실한 것이란 없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외에 대체할 수 없는 존재란 없다. 셋째, 무엇이건 오랫동안 지속되려면 성실하고 한결같은 노력이 필요하다(275쪽)." 저자도 이 남성의 말을 옳다고 인정하고 있었는데, 저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자가 소개힌 저자 자신의 경험담도 무척이나 유익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는 누군가가 저자에 대해 험담을 쏟아 놓았던 사건 두 가지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저자가 보여 주었던 건강한 반응을 보면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고, 또 저자가 애틀랜타 제일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사건들 속에서 저자가 보여 주었던 모습을 통해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이 실제적인 삶의 변화로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 책을 몇 차례 더 읽으면서 앞으로 분노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결단하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