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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티머시 켈러 지음, 전성호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라는 제목만 가지고서는 도무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책표지를 넘겨서 영어 제목(The Prodigal God)을 보고 나서야 무슨 내용의 책인지 알겠더군요. prodigal이라는 단어가 많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잭 윈터의 '아버지의 집으로'라는 책에서 처음 보고 마음에 새겨 두었던 단어였습니다. 잭 윈터는 그 책에서 "이 단어의 의미에는 '방탕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아낌없이 낭비하는'이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탕자에게만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에게도 이 형용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아낌없이 재산을 나누어 주고, 또 다시 돌아온 그 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는 그 아버지야말로 prodigal father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티머시 켈러 목사님 역시 이 prodigal이라는 단어를 탕자의 아버지의 성품을 잘 묘사하는 형용사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이 형용사를 '아버지'를 대신해, 그 '아버지'가 의미하고 있는 본래의 대상인 '하나님'께 직접 연결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상당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방탕한 아버지(직역했을 때)'라는 표현도 충격적이지만 '방탕한 하나님(역시 직역했을 때)'이라는 표현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충격적인 표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낌없이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으로 이 이상의 표현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으로 표현한 것도 과히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글 제목보다 원래의 영어 제목이 책의 내용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제를 직역해서 '방탕한 하나님'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면, 기독교인들은 탕자의 비유와 관련된 책이구나 하고 알아챘을 것이고, 비기독교인들은 도대체 무슨 내용에 관한 책인가 하고 호기심을 보였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처음에 prodigal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에는 잭 윈터의 책과 거의 비슷한 내용의 책이겠구나 하고 지레 짐작해 버렸었습니다. "아,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구나!"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책의 내용을 1/3 정도 읽어가면서부터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처음부터 1/3 정도까지는 탕자의 비유에 관한 개론적인 설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전에 읽었던 탕자의 비유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던 핵심적인 내용들 대부분이 그 짧은 분량 속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내용 중에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입혀 주라 하였던 '그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은 분명 '아버지의 옷'이었으리라는 것과, 돌아온 동생으로 인해 맏아들이 분개했던 이유 가운데 한 가지가 돌아온 동생을 아버지가 받아들임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아버지의 재산 중의 일부를 돌아온 동생에게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아내 탕진해 버린 동생이 다시금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유산을 자신의 몫에서 떼어 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 본문의 내용에는 그와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추론해 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의 복권이 완전한 복권이라고 한다면 유산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할 것이기에 저자의 추론은 정당한 추론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추론해 낸 뒤에 이것을 더욱 더 풍성한 진리와 연결지어 설명해 나갑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것이 돌아온 동생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맏아들에게 요구되었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깊은 진리를 설명하기에 앞서 저자는 이 비유에 등장하는 두 아들의 선택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은 각각 도덕적 순응의 길과 자기 발견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이 두 사람이 걷고 있는 두 종류의 길 모두가 틀렸음을 지적하셨다고 주장합니다. 두 아들이 선택한 길은 모두 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하나님을 떠나려는 시도였고, 궁극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자 구원자가 되고자 하는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서부터 맏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잃어버린 두 아들 가운데 저자가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둘째 아들보다는 맏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이 책의 가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이 비유 속에 나타나는 세 명의 인물들 가운데 맏아들보다는 둘째 아들이나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맏아들 역시 잃어버린 아들 중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책들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저자와 같이 맏아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저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맏아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오늘날의 신앙인들에 대한 적용은 놀라울 정도로 예리합니다.
저자는 맏아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분노가 있음에 주목하면서 그 분노의 원인이 결과지향적인 이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또한 맏아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있는 경쟁심과 비교의식, 그리고 두려움에 바탕을 둔 도덕주의,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자기중심성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분석과 설명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저자가 맏아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예로 들고 있는 '세 사람의 비유(81-82쪽)'는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할 지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백미는 '제5장 진정한 첫째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저자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개의 비유 가운데에서 앞의 두 비유에는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누군가가 있지만, 세 번째 비유인 탕자의 비유에는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세 번째 비유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했어야 할 사람이 바로 맏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탕자에게는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 줄 만한 형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형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형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돌아온 동생 때문에 맏아들이 치루어야 했던 대가에 대한 저자의 추론이 더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에겐 자신의 복권이 공짜였지만, 첫째 아들에게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 조건없이 둘째 아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고, 누군가는 그 값을 치러야만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첫째 아들의 희생 없이는 둘째 아들을 복권시킬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104쪽)." 아, 얼마나 감동적인 설명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에수님께서 치루신 대가의 크기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설명에 이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갈망에 대해 설명하면서, 인간의 유배 상태와, 그 유배 상태가 끝나는 시점에서의 잔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잔치(구원)에 대해 한 장이나 되는 분량을 할애해서 그 잔치(구원)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가운데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변화'에 관해 저자가 설명해 준 내용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우리의 지성과 마음에 더 깊숙이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영구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소화하고 우리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141쪽)?" "모든 변화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깊어진 이해가 마음 속에 만들어 내는 변화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동기, 자기 이해, 정체성, 세계관을 재구성한다. 마음의 변화가 없다면, 규칙을 준수하는 행동은 피상적이며 일시적일 따름이다(146-147쪽)." "변화된 삶의 열매를 맺는 유일한 그룹의 사람들은 더 힘써 일하거나 더 복종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들이다. 본 회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삶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주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대강은 이해하고 있지만, 죄의 심각함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이다.(151쪽)" "만약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믿음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믿음 위에 힘든 노력을 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아직 예수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152쪽)." 이러한 저자의 설명을 통해 변화의 근원은 오직 '복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깨달음)와 믿음'뿐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유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맛보기에 불과하며 그 이상의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는 분이고 그의 은혜를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이사야서 25:6-8의 본문을 기록해 놓았는데, 거기에 기록된 마지막 날의 잔치에 대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약속이 책의 앞부분에서 만났던 내용에 대한 기억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느낌의 장정, 그리고 여러 차례 눈에 띄였던 오타'등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로 인해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기에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배워야 할 진리의 가치가 너무나 큽니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맏아들에 대해 이 정도 깊이의 분석과 적용을 보여 준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유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제3의 아들인 예수님에 대한 설명도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관해 제대로 공부해 보려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