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 - 기쁨의 주권자와 동행하라
존 파이퍼 지음, 이상준 옮김 / 두란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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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를 받을 자격은 힘이 아니라 갈증이다. 우리에게 그 나라를 값없이 주시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기쁨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 나라를 살 수도 교환할 수도 얻을 수도 없다(p.350). -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그 나라를 기대하고 갈망하라.

 

존 파이퍼 목사님에 대해 알게 된 지도 벌써 10여 년 가까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워낙에 훌륭한 목회자요 신학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온 터라 이 분의 저서를 구입해 놓은 것도 여러 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첫 번째로 펼쳐 들었던 책에 크게 질려 버린 이후로 이 분의 책을 읽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이었는데, 이 분이 가장 존경하고 신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과 그분의 저서인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라는 책을 소개해 놓은 일종의 해설서였습니다. 그런데 세로 제목과 가로 제목을 합쳐 놓은 아주 요상한 형태의 목차에서부터 눈에 거슬리기 시작해서 건조하고 딱딱하고 지루한 전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다른 책에도 손을 대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의 책을 한 권이라도 반드시 읽어 보아야겠다는 부담감이 떠나지 않아 손에 잡았던 책이 바로 '존 파이퍼의 거듭남(두란노)'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거듭남의 교리에 대해 성경적인 근거를 들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었는데, 조직신학서로 읽었다면 무척이나 딱딱하고 건조했을 내용을 매우 감동적으로 풀어낸 내용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았더랬습니다. 그래서 이 분의 글이 그렇게 딱딱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분의 저서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읽다 덮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왠지 그 책을 꼭 읽어야 다음 책을 읽을 자격이라도 생긴다는 듯한 이상한 고집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월드>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책'이라는 카피가 눈에 와서 박히더군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저서 중에 가장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이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앞서 언급한 그 책에 발목이 묶여 있을 필요가 무엇이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첫 인상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제목을 고딕체로 써 놓은 것이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졌고, 종이 질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누래지는 그런 종류의 종이 같았습니다. 구성도 그다지 눈에 잘 들어오는 구성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편집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스타일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글을 써 내려 가다가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갑자기 옆으로 빠져서 한참동안 설명하다 다시 본래의 흐름으로 돌아가는 저자의 스타일이 글에 대한 집중도를 상당히 깎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루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고, 짜증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마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집을 읽을 때처럼 읽으면 반드시 유익을 얻지만, 글의 전개를 따라가기가 지루해서 중간에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부류의 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 있어서는 이 책을 읽기를 참 잘했고, 참으로 유익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기초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할까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정도의 깊이있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한 영혼의 가치와 탁월성은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을 보면 알 수 있다'는 헨리 스카우걸의 말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가장 즐거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에 대해 연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를 훑어가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여섯 가지를 발견해서 독자들 앞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첫 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공들여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그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기쁨이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두 번째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 행하신 모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논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시는가, 기뻐하지 않으시는가 하는 것에 대한 논증이었습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기뻐하신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는데 대단히 지혜로운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세 번째는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첫째, 창조가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기 때문이고, 둘째, 피조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이고, 셋째, 피조물이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지혜를 드러내기 때문이고, 넷째, 창조의 작품들이 하나님의 견줄 데 없는 능력을 계시하기 때문이고, 다섯째, 창조의 작품들이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가 다 성경 말씀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잘 정리하셨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네 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출애굽의 핵심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명성을 내는 것이었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유수와 회복 역시 하나님의 명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구약의 위인들이 자기들의 죄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두고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성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명성을 위한 바울 사도의 선교 사역에 대해서도 소개하면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명성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도전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크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주기도문의 기도가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다섯 번째는 바로 자신을 찬양할 민족을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선택에 대한 교리(예정 교리)의 정당성에 대해 논증하고 있었는데, 대단한 설득력으로 알미니안주의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자가 소개해 놓은 예정 교리에 대한 죠지 뮬러의 고백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예정 교리를 믿으면서도 죠지 뮬러와 같은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도전을 받을 수 있었고, 예정 교리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이며 잘못된 일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택된 사람이기에 기도하는 것이며, 선택된 사람이기에 다른 선택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신행의 분리불가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여섯 번째는 바로 우리의 죄를 아들에게 지우신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에수님을 죽이신 것이 바로 아버지라고 소개하면서, 하나님께서는아들을 죽이신 그 자체를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고 죄인들이 의롭게 된 그 사실을 인하여 기뻐하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죄인의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해석과 동일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참으로 기억해 두어야 할 만한 지혜로운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C.S.루이스가 자신의 영적 스승이라고 말하였던 조지 맥도날드라는 목사가 영원한 지옥의 존재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부인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었는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C.S.루이스의 글을 읽을 때 주의하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여섯 가지를 소개한 다음에, 다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세 가지를 덧붙여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여섯 가지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뒤에 소개한 세 가지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간들의 반응 첫 번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피난처로 삼는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피난처로 삼는 것은 예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간들의 반응 두 번째는 '정직하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직한 자의 마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드높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주목하는 애정어린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계에 전파되도록 기도하는 일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간들의 반응 세 번째는 '순종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순종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불순종을 싫어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싫어하시는 이유는 첫째, 불순종이 두려움의 대상이 잘못된 결과이기 때문이며, 둘째, 불순종이 기쁨의 이유를 다른 데서 찾기 때문이며, 셋째, 불순종이 올바른 대상을 향해 찬송을 드리지 않기 때문이며, 넷째, 불순종은 점치는 죄와 같기 때문이며, 다섯째 불순종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점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무시한 채 무엇을 할 지 알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시를 멸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점치는 것은 무당을 지혜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그렇게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께서 순종을 기뻐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은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 언급을 생략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굳이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인 '은혜가 능력'이라는 설명과 '성화는 구원의 일부'라는 설명은 크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정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해 놓은 부분 역시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실제적인 적용점을 언급해 주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러한 전개의 끝에서 저자는 이러한 기쁨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것을 제안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그 나라에서 우리가 얻을 주요 보상은 바로 그 나라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하나님의 기쁨과 더불어 기뻐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되리라고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설명 가운데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다음의 구절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을 자격은 힘이 아니라 갈증이다. 우리에게 그 나라를 값없이 주시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기쁨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 나라를 살 수도 교환할 수도 얻을 수도 없다(p.350)." 우리 안에 있는 갈망의 방향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기뻐하게 될 그 나라에 둘 때, 그 나라는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며, 우리의 기대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에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관련 성경 구절들을 하나 하나 근거로 제시해 가며 잘 정리해서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 보아야 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반 성도들이 읽기에 조금은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목회자라고 한다면 자신의 목회철학을 점검하고 성도들의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데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 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기쁨'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잘 정리해 둔다면,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의 기준을 가르치는 데에 부족하거나 치우심이 없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이 좋은 자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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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선택 - 룻기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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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겨 두신 것이 있습니다. 내게 남겨 두신 만남이 있습니다.

 

평소에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집을 잘 안 읽는 편입니다. 다른 분의 설교를 읽다가 그대로 베껴서 설교하고자 하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설교는 육성으로 들어야지 글로 읽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일종의 선입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교회의 성도 몇 분이 떠나는 일을 통해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터라 긴급하게 영적인 공급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원래부터 룻기를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이전에 룻기 강해서를 읽으면서 얻었던 감동이 생각나면서 이 책을 통해 힘든 마음을 읽으켜 세워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자인 김양재 목사님이 큐티를 통해 성경을 묵상해 오셔서인지 성경을 보는 남다른 눈을 가지고 계신 데다가 말씀의 적용이 대단히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룻기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많은 도전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격려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교회에서 목회자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하므로 흉년이 (온다. 16쪽)."는 말이었습니다. 개척 이후 5년간의 목회를 돌아보면서 참 열매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성경공부에 동참해 의식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경험한 이들도 소수고, 또 나머지 다수는 세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교회의 순결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저를 탓하기보다는 그들의 열심없음을 탓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 어린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은 바로 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나도 속고 남도 속는 믿음이라서, 내가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흉년이 오니까 세상으로 떠납니다(17장)."라는 말도 저희 교회의 상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적인 체험도 있고 구원의 확신도 있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교회에 어려움이 오니 들썩 들썩 거리더군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는 분들은 교회 개척 초기부터 저와 함께 성경을 공부해 온 분들이거나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인생의 흉년이 와봐야 내 수준이 드러납니다(18장)."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극심한 흉년을 통해 다 떠나간 뒤에, "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내게 남겨 두신 것이 있습니다(25장)."라는 말씀이 크게 위로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에 두 아들이 남았고, 두 아들이 떠난 뒤에 두 며느리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 중 오르바가 떠난 뒤에 룻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룻이야말로 나오미에게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영적인 동지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나오미 인생에 최대의 축복은 남편도 아니고, 두 아들도 아니고, 영적인 동반자 룻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88정)."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곁에 남아 있는 성도들, 그리고 흔들림 없이 저의 결정을 지지해 주고 있는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적인 동반자라는 생각에 그분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고, 더욱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인 '별에서 온 그대'의 작가가 기독교인이라죠. 그래서 천송이가 던진 "내가 이번에 바닥을 치면서 기분 참 더러울 때가 많았는데,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 사람이 딱 걸러져. 진짜 내 편과 내 편을 가장한 적. 인생에서 가끔 큰 시련이 오는 것. 한번씩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하나님이 주신 큰 기회가 아닌가 싶다."라는 대사가 굉장히 성경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오미가 겪은 그 상황도 그러한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고 있는 이 상황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떠난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가 자기들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제가 바르게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일이기에 이 사건이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사건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 일을 통해 저희 교회가 더욱 더 건강해 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혹시 제 자신에 대한 설교의 적용이 너무 자기 중심적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저희 교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작년 가울 즈음,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는 자매가 있어 세례 문답 교육을 시작했는데, 이 자매가 그 교육에 성실하게 참석하지를 않았습니다. 약속했던 시간에 오지를 않아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았고, 나중에 세례 문답 교육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으니 세례를 줄 수 없다 하니까 그제서야 울고 불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에는 그 가족들까지 모두 교회를 떠났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세례 받을 때 입을 옷을 사러 다니기까지 할 정도로 세례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세례 문답 교육에 대해 그렇게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과 친했던 한 집사님도 그 뒤를 이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분들 중에 몇 분도 아직까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성도들에게 세례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결정했어야 했다고 믿고 있고, 또 이러한 결정에 반대한다면 교회를 떠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쉬는 것은 그 일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분들까지 그 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닙니다만 저로서는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그 흔들리는 분들이 이미 떠난 분들 편에 서고자 한다면 그분들도 놓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런 말씀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이지만 목사와 성도의 만남이라고 100% 마음에 들겠습니까? 그럼에도 악한 목적으로 만나게 아니라면 나를 양보하고 희생해서 그 만남을 이어가야 합니다. 사람의 신분과 처지에 따라 주눅이 들거나 차별하면 안 됩니다.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은인이 될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이 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86쪽)!"

 

그렇지요. 흔들리는 분들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분들이고, 그분들이 여전히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 - 세례의 중요성이나 교회의 순결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러한 기준에 따른 결정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제 탓이지 그분들 탓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잘 가르쳐 드려야 했고, 처음부터 분명하게 원칙을 세워서 각인시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함께 해 온 것이 몇 년인데 아직까지 그런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서조차 바로 서 있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떠나려면 떠나라."라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동안은 그분들의 냉냉한 태도를 순순히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많은 내용들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룻이 나오미에게 충성하지 않아도 되는 일곱가지 이유(57-58쪽)'는 우리가 주님께 충성하지 않기 위해 핑계되는 대표적인 것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짚어 주고 있었습니다. 또 "왜 나오미는 룻에게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보아스를 고엘로 삼으라 했을까(130쪽)?"라는 질문과, "왜 보아스는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이나 되어 주었을까(168쪽)?"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굉장히 설득력 있는 대답으로써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을 완벽하게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결혼의 목적은 기업무르기(영혼구원)입니다(184쪽)"라는 말 또한 공감이 되었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설교집을 읽는 것이 목사에게도 영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핑계는 이제 집어치우고 앞으로는 제 영혼의 건강을 위해 설교집도 자주 읽으며 도전과 격려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설교자로서 다른 분의 설교집을 읽는 것은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면서 지금까지 제가 너무 교만하지 않았었나 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어찌되었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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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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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에 하나님은 일하셨다.. 하나님은 일하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큰 기쁨을 누리셨다. (42-43쪽)

 

 

 

감히 '모든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이 읽어 보아야 할 필독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 바로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그 때부터 오직 교회에서만 일해 왔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들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교회도 나름 직장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일반 직장과는 성격이 다른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성도들이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제한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보니 꼭 한 번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입니다.

 

지금까지 티머시 켈러 목사님의 저서를 네 권 정도 읽어 보았는데, 그 중 어떤 책에서도 실망감을 느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철저히 성경적인 시각에 폭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적용이 잘 어우러져 있는 저자의 책들을 읽으면서 매 번 커다란 유익과 만족을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이 책은 티머시 켈러 목사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리디머 신앙과 사역 센터의 대표로 사역해 온 전직 경제분석가이자 CEO인 캐서린 알스도프와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있는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염려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의 작품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물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일에 대한 신학과 실제에 대한 적용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에서는 일의 가치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에 대해, 2부에서는 일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에 대해, 3부에서는 앞에서 다룬 관점의 실제적인 적용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일이라는 것이 결코 타락으로 말미암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섬기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탁월한 성과를 거둘 때에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일을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돈을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해서 일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상숭배와도 같은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일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일을 통해 기쁨을 얻으셨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일이라는 것을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싶다면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은 기쁨이 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을 돌보는 일을 맡기셨다는 설명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초청받았습니다. 요즘 여호수아를 강론하고 있는데, 여호수아의 내용과 연결지어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다르시는 일을 맡긴 것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일을 하시고, 작은 일들은 각각 자신의 일군들에게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어가는 데에 작은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거대한 계획의 일부를 내가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일을 통해 저마다 가진 특별한 능력과 은사를 파악하게 되고 그게 정체성 확립에 핵심 요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은 자아 발견의 주요한 통로이기도 하다(47쪽)."는 언급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언급한 도로시 세이어즈의 말 "일하는 이의 능력을 최대로 표현하는 게 곧 ...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이며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한다."는 말 역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사실 이 책에는 일과 관련된 다양한 명언들이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도 버릴 만한 말이 없습니다.

 

2부에서는 일에서 겪는 어려움이 타락한 세상에서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일 자체는 저주가 아니지만 일이 죄에 오염된 결과 고통스러운 수고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라는 것입니다. 땅을 일구는 동안에는 반드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보게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바로 전도서의 가르침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었습니다. 저자는 전도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해 아래서'라는 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는 헛되다. 왜냐하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치게 수고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단지 내가 수고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한 줌의 평안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일을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에스더의 결단을 예수님의 성육신과 연결지어 해석해 놓은 것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화려한 왕궁에서 나 홀로 행복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때 진정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직장 생활이라는 삶의 영역과 연결지어 놓으니 더 실제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엇습니다.

 

3부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복음을 가지고, 일을 바라보는 일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교회 일과 세상 일을 구분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반 은총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을 다양한 직업 영역과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을 제시해 준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서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다음의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과 세상을 섬기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다. 남들과 함게 어울려 일하는 크리스천들에게서는 겸손한 협력과 진중한 도전이 두루 나타나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할 뿐만 아니라 일반 은총의 개념을 온전히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신앙은 다르지만 주님이 크게 쓰시는 이들과 손을 맞잡고 한없이 유익한 일들을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다(238쪽)."

 

그리고 무엇보다 안식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마음에 와 닿앗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결코 마음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매일같이 일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후에는 안식일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안식을 누린다는 것은 자유인이라는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안식일에도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노예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일의 노예거나 돈의 노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일 중독자만 일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성도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높은 보수나 칭찬을 위해 일하지 말고, 기타 다른 동기(우상숭배가 될 수도 있는)를 위해 일하지 말고,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가치있게 여기고 충실히 해 냄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라는 결론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소개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편지(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보낸)의 내용에 대한 해석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바벨론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일하고 있는 직장과 같고,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의 직장으로 보내신 것 역시 하나님이시며,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을 위해 기도해야 마땅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을 위해 기도하고 일해야 마땅하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장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 보아야 할 지에 대해 너무나 선명하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집사님들이 생각 났습니다. 그분들에게도 꼭 읽어보도록 권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몇 권 더 구입해서 선물해 드리려고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설명해 놓은 책을 선물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도 귀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하는 분들, 특히 신우회 활동이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신앙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꼭 읽어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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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2.0 4 - 성경통독을 위한 최고의 자습서 성경 2.0 4
김동순 지음, 배광선 그림, 하이툰닷컴 기획 / 씨엠크리에이티브(CM Creative)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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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하와 역대상을 만화로 만나다.

 

역시 이전에 나온 책들과 마찬가지로 잘 만들어진 만화성경입니다. 이번에는 사무엘상하와 역대상을 장별로, 그리고 연대순으로 잘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별로 내용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예배용 성경과 비교해 가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동안 예배용 성경의 내용과 좀 다른 듯 싶은 장면이 있어 찾아 보았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장별 구분이 도움이 되더군요.

 

물론 확인해 본 결과 예배용 성경과 다른 내용은 없었습니다. 단지 므비보셋이 사울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내용이 사실과 좀 다르긴 했지만,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사울이 리스바에게서 낳은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태어난 다섯 아들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마지막에는 므비보셋만 남게 되었으니 틀린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아무래도 신학적인 해설을 소개하고 있는 'Tip'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말씀하신 '충성스러운 제사장'이 의미하는 내용에 대한 설명(26쪽)이나, 길보아 전투 이후의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역학관계에 대한 설명(143쪽), 시온 산성의 규모에 대한 설명(145쪽),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신한 이유에 대한 설명(178쪽), 다윗의 30용사에 대한 리스트에 30명이 아니라 37명이 올라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과 같은 것들은 예배용 성경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인데다가 주석 성경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이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새롭게 느끼게 되었던 것은 예배용 성경에 한글로 기록되어 있는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져 있던 기간이 70년이었는데, 여러 차례 예배용 성경을 통독했으면서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 분명하게 머리 속에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70이라는 아라비아 숫자가 이상하게 진짜인가 싶어 확인하고 싶게 만들었고, 예배용 성경의 주석을 찾아본 결과 그 숫자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억하지 말라고 해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또 다윗이 왕이 된 이후 블레셋 사람들의 2차 침공을 막아내고 '게바'에서 게셀에 이르기까지 추격했던 일에 대해 설명하면서 난외주에서 '필사자가 '기브온'을 '게바'로 잘못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과 같은 깊이 있는 설명을 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래 저래 읽으면 읽을수록 신뢰가 생기는 성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이 그림성경과 예배용 성경 사이에 꼭 필요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만한 성경입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나 초신자들에게 꼭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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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 - 갈라디아서 깊이 읽기 (Study Guide)포함 팀 켈러의 새롭게 열리는 말씀 시리즈 1
티머시 켈러 지음, 김성웅 외 옮김 / 베가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갈라디아서의 깊이와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신앙 생활을 해 오면서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서신이 로마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로마서를 통해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해서라기보다는 그렇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습니다. 루터나 웨슬리의 일화나, 로이드존스 목사님이나 옥한흠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에 대한 세간의 평과 같은 것들이 로마서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관한 주석이나 설교집을 상당히 많이 읽어 보았습니다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정도의 감동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로마서보다 갈라디아서가 복음에 대해, 그리고 이신칭의에 대해 더 잘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탁월한 설명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저로서는 이 책을 통해 갈라디아서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이 왜 그렇게 잘못된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다른 복음에 물들어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갈라디아서를 설교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에스라 성경 대학원 대학교에서 공부한 어떤 분으로부터 거기에서 공부하면 새롭게 발견한 성경의 진리에 대한 감격 때문에 설교하고 싶어 미칠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충동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 깊은 진리를 우리 성도들에게도 빨리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복음에 대해, 그리고 이신칭의의 진리에 대해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거나 설교하지 않았다 거나 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름대로 개혁주의 교단 소속의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고, 교리서도 여러 권 읽었고, 또 개혁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설교를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교리에 대한 내용을 통해 이만한 '감동'을 받아본 적은 없었습니다. 교리에 대한 설명을 보거나 들으면서 진리가 진리가 되어 가슴에 부딪치는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웨슬리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누군가가 읽는 것을 듣는 가운데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이 책을 통해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울이 복음에 관한 두 가지 진리를 확고하게 붙잡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진리는 "우리는 지독한 죄인이어서 우리의 구원에 어떤 보탬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이고, 두 번째 진리는 "우리는 예수의 공로, 즉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써만 구원받는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더하여 복잡한 규례들(주로 문화에 대한 규정이라 볼 수 있는)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들의 주장이 크게 잘못된 주장이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 논증으로 드러내 주었습니다. 우선 바울 사도는 자신이 붙들고 있는 진리가 바로 모든 사도들이 붙잡고 있는 진리라는 사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도들보다 결코 부족함이 없으며,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리와 다른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예루살렘 방문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자신이 베드로 사도의 외식을 책망했던 사건도 소개하면서 인종우월주의적인 태도가 복음의 정신을 얼마나 훼손하는 일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것이 바로 복음 진리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신칭의야말로 기독교 신앙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율법준수가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구주가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율법을 통해 구원얻으려는 시도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게 됩니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 보려는 것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 보려는 시도를 내려 놓을 때라야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오직 복음으로 구원받을 뿐 아니라 복음으로 성장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 구원받았다는 것이며, 하나님께 용납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강력한 순종으로 이끌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우리의 죄와 저주가 그분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의와 복과 성령은 우리에게 전가 되었습니다. 그분과 우리 사이에는 이중전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그분이 하나님에 의해 죄인으로 간주되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의해 의롭고 흠없는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우상숭배나 율법주의는 모두 자기 스스로 구원자이자 주님이 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실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무가치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즐겁게 해 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그저 지켜야 할 것일 뿐입니다. 구원얻은 자로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리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율법을 준수할 의무를 더 무겁게 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이유를 에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이신칭의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 주고 있으며, 율법주의가 우상숭배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사실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율법을 지켜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명 하나 하나가 갈라디아서의 본문을 잘 녹여내고 있어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잘 흘러내려가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새관점'이 제기한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 요지는 '새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옛관점에서 말해 오고 있는 내용에 포함되는 내용일 뿐이기에 굳이 옛관점을 폐기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록으로 함께 딸려온 '갈라디아서 깊이 읽기'는 옥한흠 목사님이 만드셨던 다락방 성경공부 교재와 같은 성격(설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의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전반부는 학생용 교재, 후반부는 리더용 교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 공부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이 정말 좋다고 한다면 별도의 교재로 만들어 판매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비매품 선물로 함께 제공되고 있는데, 이것으로 성도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분들은 복사를 하거나 타이핑을 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호응이 좋다고 한다면 단행본 교재로 만들어 판매해 보는 것도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책이 '새롭게 열리는 말씀' 시리즈의 첫 책이고 계속해서 다른 책들이 발간됨에 따라 교재 역시 계속해서 발간될 것이라고 한다면, 성경 전 권을 공부할 수 있는 교재 시리즈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베가북스에서 나온 티머시 켈러의 책을 다 읽어보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번역이나 편집, 그리고 디자인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첫 번째 책은 번역이 아쉬웠고, 두 번째 책은 디자인이 아쉬웠는데, 세 번째 책부터 괜찮다 싶더니 네 번째 책은 정말 잘 만들었다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번역이며 편집이며 디자인이며, 모두 다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음 책 역시 기대가 됩니다. 베가북스에서 출간될 티머시 켈러의 책들을 앞으로도 계속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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