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영성 - E. M. 바운즈의
E. M. 바운즈 지음, 최요한 옮김 / 두란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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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닐 때 E.M.바운즈가 쓴 '기도의 능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았던 바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에 이어 저자가 쓴 기도에 관한 여러 권의 책들을 모두 구입해서 읽어보았는데,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기도의 능력'이 여러 출판사에서 재번역되어 출간되면서 다른 책들도 함께 재번역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예전에 크게 실망했던 기억 때문에 관심이 갖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두란노에서 E.M.바운즈의 미출간 도서인 본서를 발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어도 번역 때문에 실망하지는 않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책 앞부분에 실려 있는 짧막한 E.M.바운즈의 일대기였습니다. E.M.바운즈의 책은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그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어떤 사역을 펼쳤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일대기가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남군의 군목을 사역했던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 혼란이 왔습니다. 대의적인 측면에서 북군의 편에 섰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연방정부의 악행을 목격한 후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뒤로 빠져버렸던 다른 군목들과는 달리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전장에 머무르면서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은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자신이 사역하던 마을을 위해 화요일마다 마을 광장에 모여 기도하는 모임을 통해 마을에 부흥을 일으켰던 것 역시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평생동안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서너 시간씩 기도했다는 사실이 가장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감리교 목회자였다는 사실과 찰스 피니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M.바운즈의 부흥관이 찰스 피니의 부흥관과 서로 충돌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찰스 피니의 모든 주장에 대해 저자가 동의했던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의외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도전이 되었던 것은 역시 기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위해, 그리고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뜨겁게 기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 설교를 완전히 배제한 기도모임을 운영할 것을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저자의 경우 매주 수요일마다 그런 방식의 기도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그와 같은 기도모임을 꼭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연속적인 찬양을 이용해 감정을 고양시키는 행위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삶을 위해서는 일상 생활 속에서도 오락을 완전히 금지할 것을 권면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열심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붙들어야 하는 목회자의 책임에 대해 언급하면서 심방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심방에 대해 크게 중점을 두지 않았던 저에게 강한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목회자의 책임과 성결한 삶에 관한 다양한 교훈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다양한 교훈 가운데 금식과 기도에 관한 교훈에서 금식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 전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그분 역시 금식이 기도보다 우선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영적인 깊이가 남다른 분들이라 서로 통하는 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과 많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각각의 장이 2-3 페이지 정도 분량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짧막한 설교집이라고 하기 보다는 묵상집이라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가독성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380여 페이지에 글씨도 크고 행간도 넓고 여백도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격대도 그만큼 올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장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약간은 극단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의 표현들이 눈에 거슬렸지만,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적 표현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레오날드 레이븐 힐이나 A.W.토저,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책을 즐겨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저처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을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부담이 될 듯 싶습니다. 부록으로 실린 스터디 가이드가 상당히 괜찮아 보였습니다. 다양한 질문을 통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는데, 질문들이 잘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하루에 한 장씩 묵상해 갈 때 많은 영적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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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공부의 왕도 2 - 최상위권으로 도약하는 결정의 차이
EBS 공부의 왕도 제작팀 지음 / 예담Friend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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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데 지난 번 중간고사에서 전교1등을 했습니다. 한편으로 기특한 마음이 들면서도, 과연 지금의 성적이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리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좋은 정보라도 물어다 줄 수 있을까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표지만 보고서는 굉장히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니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중위권, 또는 하위권에 머무르던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아 최상위권으로 올라서기까지의 실제 사례들이 드라마틱하게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총 24가지의 사례들을 읽어 가면서 받은 첫 느낌은 내가 만약 고등학교 때 이러한 학습법들을 스스로 찾아내서 공부했더라면 지금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수학과목 때문에 매 시험마다 평균점수를 크게 깎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학생들 가운데에도 저처럼 수학 때문에 고생하던 친구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그 모두가 자기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 스스로 극복해 낸 것을 보면서 무척이나 부럽게 생각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친구들이 찾아냈던 공부법들을 스스로 찾아냈거나 아니면 책을 통해서라도 알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 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과외를 받을 수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에는 결국 제 할 탓이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학생들의 사례를 보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었다면, 그리고 정말로 가고 싶은 대학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찾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인이 가고 싶은 대학을 분명하게 목표로 정해 놓고 공부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의지력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법이야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찾아 보면 되는 것이지만 막상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은 다음에 꾸준하게 실행하는 데에는 의지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소개 된 학생들 대부분이 지인들로부터 꾸준하고 성실한 친구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공부법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내고 개선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야말로 그러한 다양한 공부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귀한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공부법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첫째는 계획표를 작성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둘째는 교과서를 목차부터 시작해서 빠짐없이 여러차례 읽어보면서 내용을 정리하는 것, 셋째는 기초를 탄탄히 다지기 위해서 중학교 교과서부터 다시 공부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데에 부채모양 단어장을 사용해 보라는 것도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아이에게 이 책을 먼저 읽어 보라고 한 다음에 제가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자기처럼 학원에 다니면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방법들인 것 같다더군요. 고등학교에 가서 자율학습 시간에 혼자 공부하게 되면 그 때 사용해 볼만한 방법같다고 하였습니다. 큰 아이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 책에 소개된 학생들 대부분이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공부했던 친구들이더군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학원을 의지하는 학생들보다는 자기주도적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원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자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공부법을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니다. 앞으로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학원에 안 보내 보려고 하는데, 그 때에는 이 책에서소개하고 있는 공부법들을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그리 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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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번트 리더십 - 내 사람을 최고로 키워내는
알란 로이 맥기니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책찌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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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더십에 관한 책을 멀리한지 상당히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거의 다 비슷 비슷한 내용에다가 그저 원리만 나열해 놓았을 뿐 어떤 도전이나 감동도 주지 못하는 책들을 몇 권 읽고 나서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리더십에 관한 책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일반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기독교적인 느낌의 제목에 마음이 끌려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이 책의 문장이 경어체로 번역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은  짧은 문장으로 끊어 반말투로 번역하는게 보통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경어체의 문장에서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왠지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가 "그냥 내가 해 주는 말 듣고 따라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좋은 방법이 있으니 한 번 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경어체의 사용이 역자나 편집자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읽으면서 좋은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딱 한 가지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개신교인이 분명해 보이는 저자의 글을 가톨릭적인 냄새가 나는 용어로 번역한 곳이 몇 곳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체적인 내용도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평범해 보이는 원리들도 적절한 예화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고, 강한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리더십과 '동기부여'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가장 귀한 소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리더를 동기부여자로 보는 저자의 시각을 통해 개신교 목회자인 저의 설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설교를 선포라고 가르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설득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것이 설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설교는 동기부여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동기부여 강사들과 비슷한 내용으로 설교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결코 성경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긍정주의적 사고방식을 무슨 중요한 신앙원리처럼 설파하는 모습을 보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설파하는 메시지는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방식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기부여'라는 가치중립적인 요소를 사용해서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좇아 살아가도록 성도들을 격려하기 한다면 잘못되었다 말할 것이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저자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입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칭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과 교정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는 한편, 그 두 가지 요소가 바른 행동방식의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원대하면서도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일의 중요성과 성공적인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꿈꾸고 말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꿈꾸고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모습이 없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만 있을 뿐, 정작 어떤 모습의 교회를 꿈꾸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막연한 상태에서 벗어나 분명하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또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실패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지 못하는 사람은 유능한 리더가 되기 어렵다"는 저자의 지적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는 실패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막상 '은혜'에 관해 설교하는 설교자가 인생에 실패한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제대로 된 설교자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그러한 설교자로 살아 온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설교해야 할 지를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리더십에 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마치 설교학에 관한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목회자로서의 태도는 물론이고, 설교자로서의 태도에 있어서도 크게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 목회와 설교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얻은 깨달음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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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20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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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책이라고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내용은 책의 앞 부분 세 장에서만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 뒷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제자도'에 관한 내용이라고 할 만한 내용들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요즘들어 제자도에 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던 터라 오히려 더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체 13개의 장 중에서 4장, 9장, 10장의 내용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책을 한 여덟 권 정도 읽고 나니 이전에 보았던 것과 같은 내용들이 반복되면서 조금은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 세 장의 내용을 읽는 동안 저자의 책에는 확실히 건질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사역'에서는 평범한 삶으로 주님을 섬기는 삶의 가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그리스도인이란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언제나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타나는 사람을 말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특별히 와 닿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특별한 사역 기간인 공생애 3년을 생각하지만, 주께서 가정에서 철저하게 순종하셨던 초기 30년은 다 잊어버린다. 아마도 당신의 경우도 비슷할 수 있다. '왜 내가 이 사람에게 이렇게 오래 순종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당신이 예수님보다 나은가?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 우리가 순종해야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은 우리 주님의 기도에 있다.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2).' 만일 하나님개서 어떤 기간 동안 당신을 순복하게 하신다면 당신은 당신의 개별성과 함께 모든 것을 잃는 것같이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주님과 하나 되게 하신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예전에 부교역자로 사역하는 동안 담임목사님의 지나친 간섭과 부당한 요구에 대해 보였던 제 자신의 잘못된 반응을 책망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잘못된 동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의 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10장 '이제는 가능한가'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흠없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보기에 흠없는 삶을 살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마저 사람들이 보기에 흠이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은 흠이 없으셨다.. 만일 평강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거룩하게 되었다면 우리 개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게 된다.. 이 거룩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완전하신 주권적 은혜의 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는 당신의 생각이나 현실의 삶이나 예배에서 완벽함을 이룬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전혀 책잡힐 것이 없는 흠없는 성향이 당신 안에서 계속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흠없는 삶이 가능한가? 바울은 그렇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거룩하게 됨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었다고 말한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히2:1)'"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또한 "만일 주께서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깨끗케 하실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깨끗하게 하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깨서 그렇게 하시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주의 구원을 우리의 삶에서 효과적으로 역사하시려는 것을 결코 거부하지 말라.. 당신의 싸움은 당신의 의지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할 때마다 또는 흠없는 삶에 전혀 관심이 없을 때마다 이는 '나는 안하겠다'는 뜻과 같다."는 말씀도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요즘들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의욕을 꺾어 버리는 가장 커다란 방해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가르침을 통해 그것이 바른 판단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저에게는 9장 '그리스도인 만들기'가 가장 많은 도전이 되었던 장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좇았던 것이 인간적인 끌림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태도가 비록 진지하고 열정적이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성령을 통해 주님의 생명과 주님의 성향을 주입받아야만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주님께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주를 위하여 헌신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적 헌신은 절대로 제자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의 중요성을 대조적으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바탕은 사람의 맹세나 의지의 힘에 있지 않다. 그것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에는 내가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철저한 인식에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고 하셨지 '나를 위하여 결단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성경이 내게 요구하는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없는 무능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내 모습 이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나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비천할 정도의 거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기를 원하거나 주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기를 원한다면,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그 일을 내 대신 하셔야 한다. 예수님깨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궁핍을 깨닫고 주께서 이루신 구속을 근거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주님 자신의 성향을 넣어주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이 성향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주의 원하시는 뜻대로 뜻을 가질 뿐 아니라 그 뜻대로 행할 수도 있게 된다.. 성령께서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면 우리의 이상과 현실이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특히 '주님의 성향을 주입받고 싶다'는 마음과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이상과 현실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통해 소망을 가지고 되었고, 또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 외에도 실리적인 유익을 추구하는 것의 무익함에 관한 교훈(64-65쪽), 금식과 기도에 대한 교훈(140쪽), 성부와 성령의 관계에 대한 교훈(152쪽), 사탄의 유혹에 관한 교훈(182쪽),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설명(192쪽) 등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자의 책을 읽어 오면서 여러 차례 접했던 '찢겨진 빵과 부어진 포도주가 되라(57-58쪽)'는 권면이 이전보다 더 깊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책을 계속 읽어 오면서 느낀 것은, 저자의 책이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서' 보다는 '어떤 개념에 관한 설명을 통해서' 더 많은 유익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여러 단행본들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묵상집이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행본으로 나온 설교들을 통해서 얻는 유익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준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이 책은 제자도에 관한 교훈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제자도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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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 내 안의 아이 치유하기
틱낫한 지음, 진우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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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읽어 본 불교 관련 도서인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 본 적은 있지만, 머리 크고 나서는 줄곧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불교 도서를 읽어 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틱낫한 스님의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는 제 안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분노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라는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꼭 읽어 보려고 했었는데 막상 읽어 볼 기회를 얻지 못한 채로 지내오던 차에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내 안의 아이 치유하기'라는 소제목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기독교 상담과 내적치유를 공부해 오는 가운데 내면아이의 치유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서택 목사의 '내 마음 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라는 책을 통해 깨달은 바가 많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도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읽어 본 결과 역시 그 책과 많은 점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명칭에 관한 부분과 해결책에 관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우선 일반 심리학에서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을 이 책에서는 '저장식', 또는 '뿌리식'이라고 부르고 있더군요. 그리고 기독교에서 '죄에 물든 자아', 또는 '죄된(악한)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 책에서는 '(온갖 미혹에 뒤덮여 있는) 자아의식'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아의식'을 '깨어있음'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과의 영적인 연합'을 통해 죄된 본성을 죽여야(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더군요.


하지만 저장식 속에 숨겨져 있는 고통의 씨앗을 의식의 차원으로 불러 올려 '인정해 주고, 안아 주고, 보살펴 주라'는 가르침은 내적치유에서 가르치는 바와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물론 내적치유에서는 그 일을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겨 드리게 하고 있지만, 자기 스스로 자기의 내면 아이를 돌볼 필요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의미있는 해결책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특별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분노의 순간에 호흡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도록 하는 수행'과, '분노의 순간에 깨어있음과 집중을 통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지를 확인하도록 하는 수행'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깨어있음과 집중이라는 것은 기독교상담이나 내적치유에서도 동일하게 강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신앙훈련으로써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데 이것을 일상적인 차원으로 보편화시키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호흡수행과 비슷하다고 볼만한  것이 전혀 없는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화론'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듯한 태도라던가, '연기적 자아'에 대한 극단적인 가르침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심리 치료의 차원에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았다고 느껴진 책이었습니다. 불교인이라면 당연히 읽어 보아야 할 책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인에게는 목회자인 제 입장에서 볼 때 '내 마음 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를 우선적으로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고, 상담이나 내적치유를 공부하는 기독교인에게는 참고하는 차원에서 읽어 볼 수 있는 책 정도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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