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2.0 5 - 성경통독을 위한 최고의 자습서 성경 2.0 5
김동순 지음, 배광선 그림, 하이툰닷컴 기획 / 씨엠크리에이티브(CM Creative)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를 역사순으로 재구성한 탁월한 편집이 돋보입니다.
 
어렸을 때 이야기 성경 한 권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은 덕분에 그 어렵다는 어른 성경도 무리 없이 읽어 나갈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성경이 어려우면 어린이 그림 성경이나 이야기 성경을 먼저 읽어 보라고 권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그림 성경이나 이야기 성경을 읽다 보면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어린이들 보기에 쉬우라고 지나치게 많이 생략하고 요악을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 성도들이 읽을 만한 수준 높은 이야기 성경을 찾아 보려 했지만 지금까지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외로 만화 성경인 성경 2.0을 보면서 제가 원하던 수준의 책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만화 성경에 성경의 전체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었습니다. 각 권 당 30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10권이나 되는 삼국지의 내용을 빠짐없이 충실하게 만화로 옮겨 놓은 것을 보니 무려 74권이나 되더군요. 그러니 1000페이지에 달하는 성경 책을 만화로 옮겨 놓는다면 적어도 25권 정도는 되어야 그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 규모의 만화 성경을 구입할만한 개인은 별로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만화 성경을 기획할 만한 출판사는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이 책이 이루어냈습니다. 성경의 전체 내용을 10권이라는 적은 권수 안에 모두 담으려고 시도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출간된 내용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만화로 옮겨진 성경 내용 가운데 누락된 부분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충실하게 성경의 내용을 옮겨 놓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 권들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번 권 역시 성경의 내용을 매우 충실하게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의 내용을 시대 순으로 편집해 놓음으로써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사실 열왕기서의 내용을 보면 북이스라엘 왕들이 주인공들인 것처럼 보이고(왕들이 워낙에 자주 바뀐 데다가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는 점 때문에), 역대서의 내용을 보면 아예 남유다의 왕들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책을 함께 보지 않으면 분단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시대순에 따른 사건의 재배열을 통해 그러한 필요를 잘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또 성경만 읽어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나 성경의 각 책마다 서로 다르게 기록된 부분에 대한 설명을 통해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유익을 얻었던 부분들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아라우나 타작마당의 가격이 삼하24:24에서는 은 50세겔로 기록되어 있는데, 대상21:25에서는 금 600세겔로 기록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타작마당만 구입한 가격과 산 전체를 구입한 가격의 차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바아사의 유대 공격 시기에 대한 오류를 수정해 주고 있었습니다. 대하16:1에는 아사 36년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6년이라고 합니다.
 
셋째로,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숨었던 사르밧이 이세벨의 고향인 시돈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의 아이러니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언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봅니다.
 
넷째로, 여호사밧 당시에 벌어진 전쟁에서 암몬과 오압 사람들을 공격했던 복병은 누구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후에 암몬과 모압 자손이 세일 산 사람들을 공격해서 전멸시킨 것으로 볼 때 숨어 있던 복병은 마온 사람들로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온 사람들을 물리친 후 암몬과 모압 자손 역시 서로를 의심하게 됨으로 다투다 지리 멸절하였던 것입니다.
 
다섯째, 엘리사 시대에 아람이 사마리아를 포위했을 때 비둘기 똥이 매매되었다는 기록에 대해 실제 비둘기 똥이 아니고 여물지 않은 콩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여섯째,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 왕이 사람을 보내 엘리사를 죽이려 하다가 그 뒤를 따라온 이유에 대해 충동적으로 엘리사를 죽이라 했지만 그것이 엘리사의 탓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앙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설명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여호람 왕이 자신의 동생들을 죽였던 사건을 그림으로 보니 그 상황의 잔혹함이 더 크게 느껴지더군요. 또한 아하스 왕이 성전 기구들을 제멋대로 해체했던 사건 역시 그림으로 보아서인지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유월절 어린양을 백성들이 직접 잡았다는 것이나,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게 땅이 분배되지 않은 대신 제사장에게 땅의 첫 열매와 희생제물이 주어졌고, 레위인들에게 십일조가 주어졌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즘 들어 교회에서 십일조로 들어온 헌금을 부조리하게 사용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분들이 이러한 사실에 대해 많이들 지적하더군요. 목사들이 스스로를 제사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십일조를 자기가 마음대로 사용하냐고요. 그래서 기억에 남았던 내용인데 이 책에서 또 다시 보게 되니 더 눈에 들어오더군요.
 
또 이 책을 통해 므낫세 왕이 신상을 자기 손을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확실히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본 기억이 있는 듯 하면서도 가물가물 했었는데, 왕이 직접 신상을 만드는 그림을 보고 나니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직접 확인해 보니 실제로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역대하33:7). 또 엘리사를 향해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말한 청년들의 말이 의미하는 것이 네 스승인 엘리야처럼 승천해 버려라, 곧 꺼져라 라는 의미라는 설명도 이전에 알고 있던 해석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유익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126쪽에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구했던 것이 스승을 능가하는 능력이었다고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저로서는 엘리사가 구했던 것이 엘리야의 능력의 두 배나 되는 능력이 아니라, 엘리야의 능력의 두 몫을 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자가 아버지에게 받게 되어 있는 유산의 분량을 구하였다는 것입니다. 영적 장자권을 내게 주십시오 라고 구했다는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번역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한글 성경이 능력의 두 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언급한 해석도 함께 실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만화 중간 중간에 성경2.0에 대한 깨알 같은 광고가 이전 권들에서보다 배 이상 많다고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출판사에 이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6권에서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며 7권부터는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이번 권에서는 책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성경2.0에 대한 것도 덩달아 많이 삽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느꼈던 아쉬움 중에 가장 컸던 것은 각각의 소제목 옆에 성경 장 절이 전혀 기입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전 권들은 모두가 성경의 장 절 순서대로 책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도로 성경 장 절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가 합쳐지면서 장 절 구분이 없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기입 없이는 각각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해당 성경 구절이 몇 장 몇 절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제목만 보고 그 내용에 해당하는 성경의 장 절을 찾아가려고 하니 무척이나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에 개정판을 내시게 되면 반드시 수정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뒷부분에 와서 이런 아쉬움들에 대해 말하고 보니 제가 이 책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질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청소년들이 성경을 쉽게 접하도록 도와주는 데에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청소년들이나 친분이 있는 교역자분들께 부지런히 이 책의 장점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노안이 온 중년이나 노년의 어른들이 보시기에는 조금 글자가 작을 수도 있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그래서 그분들께는 권해 드리기가 조금 주저될 때까 있습니다. 혹시나 이 시리즈가 대박이 나게 되면 어른들을 위해 대형판으로도 출간해 주시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몇 번만 읽어 놓으면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를 성경으로 읽어 나가는데 거의 막힘이 없게 될 것 같습니다. 성경 읽는 것이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티컬 처치 -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회복하라
제임스 맥도날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 평생 매년 52주 내내 이것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큐티나 기독교 서적, 공동체, 소그룹 활동, 봉사 활동은 전혀 무의미하다(p.19)." -

 

당신의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게 하라.

  어린 시절 교회를 왔다 갔다만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로 결심한 이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체험은 대부분 수련회를 통해서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체험은 강도사 시절에 경험했던 경험이었는데, 이 역시 장년들을 위한 수련회에서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수련회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청소년 시절에 이러한 경험을 한 아이들은 청년부에 올라가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이유를 저는 수련회에서 선포되는 원초적인 복음에서 찾았습니다. 죄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과 회개의 촉구, 하나님과의 만남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2박 3일, 또는 3박 4일 동안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러한 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른들까지도 이러한 수련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교회가 수련회라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만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에게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교회는 매 주일의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하는 곳인데 저는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했던 수련회에서의 그 강렬한 경험 때문에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와 수련회에 가서 드리는 예배를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커다란 오류에 갇혀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주 교회로 달려와 문 앞에서 줄을 섰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마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의 임재를 통해 놀라운 변화를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p.23)." 그런데 저는 이러한 모습을 저희 교회에서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 청소년부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했던 주바라기 선교회의 수련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참석할 때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2박 3일의 일정 가운데 마지막 저녁 예배를 앞 둔 시점이 될 때마다 가장 앞 자리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 장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저녁도 굶은 채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는 청소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저녁도 굶고 두 시간 가까이를 예배 장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 때문입니다. 은혜 받고자 하는 열망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교회에서는,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시간에 그와 같은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바로 저와 같은 목회자의 선입견과 더불어 일반 성도들의 선입견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련회와 같이 특별히 준비된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라는 선입견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이 있다면, 그 선입견을 바꾸면 될 일입니다. 매 주일의 예배를 수련회를 준비하듯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도 간단히 정리하면 그와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분을 드러내는 타협없는 메시지, 그분만을 높여 드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뜨거운 기도, 그것만 준비되면 주일의 예배가 수련회의 예배보다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교회에서 드리는 매 주일의 예배는 그와 같이 준비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목회자들의 패배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예배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교회의 자원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한계에 대한 낙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과 그러한 예배의 방향성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그러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만 있다면 극복 못할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에배가 어떠한 예배인지 경험해 본 바가 없지 않습니다. 찬양 가운데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해 본 일도 적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선포 이후에 이어진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경험도 있고, 청소년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그렇게 인도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목사가 된 이후로는 그런 예배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고, 그 덕분에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예배의 방향성을 잘못 잡고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인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도 못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설교해 왔던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찬양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장년 성도들로 인해 찬송가 외에 다른 찬양을 부르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예배의 분위기를 경직된 모습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슬로우가 욕구의 다섯 단계 위에 영적인 욕구를 추가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나, 예배 기획에 대한 담임목사의 책임에 대한 알게 된 것이나, 고구마 전도 이론을 연상케 하는 풋사과 이론을 알게 된 것이나, '확신에 찬 설교'라던가 '부르짖는 기도'와 같은 귀한 도서를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커다란 유익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저희 교회의 예배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야만 한다는 긴박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수련회에 맡기고 어떻게 해서든 성도들을 수련회에 데리고 가려 하기보다, 매 주일의 에배 가운데 수련회에서와 같은 예배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앞으로는 절대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제가 경험했던, 그리고 제가 인도했던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는 그런 예배를 현재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다시금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 날이 어서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 현대인의 뒤틀린 결혼의 실타래를 풀다
팀 켈러 & 캐시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팀 켈러결혼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제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결혼예비학교와 같은 결혼준비프로그램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어떤 준비든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결혼을 준비했습니다데이트와 사랑의 미학결혼건축가나는 너와 결혼하였다 등 당시에 결혼에 관한 책 가운데 제법 알려져 있는 책들은 거의 다 섭렵했던 것 같습니다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책에서 배웠던 내용이 하나도 소용이 없더군요책의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라제가 지나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역시 자기중심성을 결혼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로 언급하고 있더군요깊이 공감이 되었습니다자기중심성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은 결혼을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만 이해하는데 제가 꼭 그랬습니다그래서 아내에게 훗날에 다 갚으리라는 기약없는 약속으로 저를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했습니다저자가 말하고 있는 소울메이트를 구하는 남자들의 특징을 저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아내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바꾸려 들지 않는 존재가 되어 주기를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다투기를 수도 없이 했고결국 이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그래서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과 내적치유 프로그램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의 근원을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 결과 부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오는 가운데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지식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뭐새로운 것이 있겠어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그래서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는지그 짜임새와 구성에 대한 관심이 더 컸습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중요한 정보나 통찰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습니다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 기대에 부응하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혼전 동거 커플들은 결혼한 뒤에 결별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커플보다 더 높다는 사실에 대한 조사 결과를 소개해 주고 있었는데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결혼한 부부의 45퍼센트가 이혼이라는 결혼에 이르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지만그 가운데 열여덟 살이 되기 전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혼전 임신을 한 커플의 비율이 매우 높으며반면에 교육 과정을 잘 마치고적절한 수입이 있으며온전한 가정에서 성장하고신앙을 가졌으며, 25세 이후에 결혼해서 첫 아기를 낳은 부부의 이혼율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이는 혼전 동거가 늘어가고 있는 한국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자기중심성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을 들고 있었습니다저자는 이 두 가지가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설명하면서한편으로 경외의 한 요소인 두려움은 그저 겁에 질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무언가에 사로잡히고 압도당하는 것을 의미하며결국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에 눌려 숨이 막힌다는 뜻이 된다고 풀어내고 있었습니다지금까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에서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저자의 설명이 참으로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아니분명히 그런 의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되는 경험이야말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남은 하나님의 빈자리를 결혼을 통해 채우려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배우자를 섬기는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하나님만큼 큰 영적인 공백은 오로지 하나님으로만 메울 수 있다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제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결코 배우자의 사랑이 충분치 않다느니,이편의 뜻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느니내조가 부족하다느니 하는 따위의 불평이 그칠 일은 없을 것이다(p.93).”

 

저자의 이러한 설명에 묘사된 것과 같은 불평이 바로 예전에 제 마음 속에서 끊이지 않았던 불평이었습니다그러므로 제가 예전에 아내에게 끝없이 불평하면서 아내의 희생을 계속해서 요구했던 이유는 그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랬던 예전의 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어떤 특별한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아내에게 일어난 변화는 그저 서로가 예전에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기대를 버렸고또한 서로가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 교회를 개척하고 난 이후에 제가 아내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고마움과아내가 교회를 더 잘 섬기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제가 집안 살림을 돌보았던 것에 대해 아내가 느꼈던 고마움이 서로를 더 귀하게 여기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었을 때의 열정보다 우정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는 사랑이 우리의 관계를 점점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 가운데 저자가 말하고 있는 우정의 세 가지 특징곧 항상성투명성,공감이라는 세 요소가 저희 부부의 관계 속에서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결혼에 힘이 담겨 있다는 저자의 말이 진실임을 저 역시 점점 깨달아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저자는 결혼의 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혼에는 인생 항로 전반을 좌우하는 힘이 있다온갖 어려움과 약점들로 가득한 악조건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결혼 관계가 탄탄하면 나머지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견고하고 안전한 세계로 옮겨 갈 수 있다반면에 누가 봐도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환경 가운데 생활할지라도 부부 사이으 관계가 허약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언제라도 허약하고 부실한 세계로 밀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결혼에는 이처럼 인생 항로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있다이 힘을 가진 결혼의 가치를 깨달아 무엇에도 양보할 수 없는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도록 하라(p.174).”


저는 저자의 이러한 설명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만일 극심한 부부 싸움 끝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면그래서 다른 사람과 재혼을 했거나또는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상대를 바꾸어 가면서 동거 생활을 했다면 지금의 안정된 삶이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볼 때 결론은 결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당장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부라 할지라도 이혼하지 않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면 적어도 2/3 정도는5년 안에 행복해진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제 경험상으로는 5년이 아닌 6또는 7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제가 결혼하고 6년 동안 아내와 그렇게 죽어라고 싸웠거든요하지만 참고 버티니까 좋은 날이 오더군요솔직히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저희의 결혼 생활을 새롭게 해 주시리라는 믿음조차 없었습니다그러니 그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밖에 다른 설명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하지만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말로는 이혼하자는 말을 밥 먹듯이 했지만이혼에 대한 두려움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그분의 부활의 능력이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 결혼 생활도 다시 살려내실 수 있음을 믿는다면저희보다는 더 나은 형편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아름답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지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으로 끝없이 노력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더 빠른 시간 안에 얻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결혼 생활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안정감을 발견하고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아내 분이 쓴 6장의 내용은 참으로 탁월합니다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다시금 삼위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로 새롭게 풀어낸 것은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전체적인 흐름에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덧붙이는 글로 언급하고 있지만부부 관계를 정립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되어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내용으로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교자 열전 -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삶과 고난, 그리고 승리에 찬 죽음에 관한 서사!
존 폭스 지음, 홍병룡 외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진리를 나도 그들처럼 단단히 붙들고 있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부터 그 명성을 들어왔던 책이라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기회가 오지 않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순교 장면의 끔찍함에 내내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머리를 깨뜨려 죽이고, 화약으로 터뜨려 죽이고, 톱으로 잘라 죽이고, 참수해 죽이고, 불태워 죽이는 등의 잔인한 살해 방법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시고 기독교 영화가 아니라 공포영화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던데, 이 책 역시 그러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잔인한 사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이어되고 있었습니다. 공포 영화에 나오는 '노약자나 임산부, 어린이, 심신허약자는 보지 말라'는 주의 문구가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도전을 주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어 가는 내내 '순교자들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던질 정도로 붙들고 있었던 그 진리를 나도 그렇게 붙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청소년일 때에만 해도 '나도 그럴 수 있다'라고 자신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자신이 없어져 가더군요. 책의 내용 중에서 배교를 했다가 다시 뉘우치고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그 분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저자가 자기가 속한 교파와 동일한 입장에 있는 순교자들의 사건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개혁파 사람들 역시 재세례파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이 교회 역사에 관한 책으로서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책의 맨 뒷 부분에서 최성도 교수님이 해설을 통해 그러한 부분에 관해 지적해 주고 계시더군요. 나만 느낀 느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도들의 순교에 관한 내용이나 3세기 이전 성도들의 순교에 관한 내용은 어느 교파에 속한 사람이든지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심지어는 카톨릭 교인이라 하더라도요. 

 

책의 내용 대부분이 새롭게 접한 내용들이었지만, 그래도 초대교회의 순교에 대한 내용들은 신학대학원 다닐 때 초대교회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라 대부분 기억이 나더군요. 다만 몇 가지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다 순교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사도 요한에 대해서만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가 다 네로 황제의 치하에서 순교했고, 네로 황제가 로마의 여섯 번째 황제였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머리 속에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미 다 배웠던 사실인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이 책의 기록이 인상적이었다는 거지요.

 

솔직히 목회자로서 이 책을 제가 알고 있는 여러 날라리 신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물론 그런 분들은 절대로 이 책을 읽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그런 분들도 생각이 있다면 이런 책을 통해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가 믿는 자들에게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 마음에는 이 책의 내용이 잔인하고 끔찍하게 느껴질 지라도 그 영혼에는 귀한 양약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 오트버그의 예수는 누구인가?
존 오트버그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수를 통해 하늘과 맞닿아 본 세상이 얼마나 놀랍게 변화되었는지를 확인해 보라.

 

사순절은 이미 시작되었고 얼마 안 있으면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주일이 돌아오는 시점이라 예수님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지인들을 통해 탁월한 작가라고 소개받았던 존 오트버그가 쓴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당연히 읽어 보았지요. 듣던대로 글을 잘 쓰는 작가더군요. 막히는 데 없이 술술 읽혀지는 데다가, 생각해 볼 만한 내용들이 적지 않아 만족할 만한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세상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만 해도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달라졌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만 해도 이런 일들은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 이렇게 달라졌다 라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역사가 예수님 전과 예수님 후로 나뉘어졌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인간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하나님의 형상으로, 유기와 영아 살해의 관습이 중단됨, 장애인들과 밑바닥 인생들을 존중하게 됨),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겸손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용서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사랑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결혼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교육의 평등이 이루어졌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학문의 통합과 수준의 상승이 이루어졌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제시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세상의 질서가 재편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예술과 문학에 엄청난 영감이 던져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의 변화는 너무나 놀라워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도, 그리고 에수님이 오셨을 때보다는 더 늦어졌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동일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는 것이기에 오직 예수님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삶이 가능해졌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예수님이 오셔서 참 다행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제물로서의 가치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미치신 영향력의 결과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해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성육신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된 의미있는 독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맥락을 통해서 얻은 유익도 크다 할 수 있지만, 그외에도 소소한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기쁨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분노와 긍휼이 서로 동일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개인을 향한 엄청난 사랑이었으며 또한 인간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에 대한 고통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설명을 접하면서 저는 어째서 예수님의 분노가 죄가 아니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았다고 하는 표현이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이 사건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여자들도 제자로 부르신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크게 공감이 되는 설명이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기 전에 자신이 로마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매를 맞았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예수 공동체의 작은 전초 기지를 만들고 있다. 그도 알았듯이 교회가 시작될 때 교회 안에는 엘리트층 사람들도 한둘 있었겠지만 많지는 않았다. 엘리트층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야 했다. 바울은 그들이 형제자매가 되도록 한 가정을 만들려 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울은 보잘 것 없는 그들이 신앙 때문에 고난당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힘이 없었다. 바울은 로마시민이라는 신분을 의지해 고난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지위가 낮은 교인들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이 곤경 속에서 그는 고통스럽고도 영광스러운 하나의 기회를 보았다. 그래서 바울은 이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자기를 낮춘' 것이다. 그는 로마시민권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스스로 시민권이 없는 '보잘것 없는' 사람처럼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내면에 베어 들어 있던 서열과 명예 경쟁으로 얼룩진 삶, 엘리트 주의를 깨뜨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결정이며, 지혜로운 결정이며, 아름다운 본이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얼마나 멋진 설명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의 설명이 있었기에 그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지, 지금까지는 도대체 바울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이러한 설명을 읽으면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데가볼리에 처음 방문하셨을 때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연유로 그 지역에서 배척을 당했었지만, 두 번째로 방문하셨을 때에는 처음과 완전히 다른 환영을 받았다는 것도 저자의 설명을 통해 처음 인식하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오병이어 사건은 갈릴리 호수의 이스라엘 편에서 무리를 먹이신 사건이었고, 칠병이어 사건은 갈릴리 호수의 이방인 편에서 무리를 먹이신 사건이었다는 사실도 저자의 설명을 통해 처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무리가 먹고 남긴 빵과 고기가 이스라엘 편에서는 열 두 바구니였고, 이방인 편에서는 일곱 광주리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의미하는 숫자라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참으로 기가 막힌 설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예수님께서 로마의 식민 지배라는 상황 속에서 열심당처럼 항거하거나, 에세네파처럼 물러나거나, 사두개파처럼 동화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편을 택하셨다는 설명으로써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다양한 유대 종파와 예수님의 차이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후반부서 저자는 예수님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던 금요일과, 무덤 속에 계셨던 토요일, 그리고 부활하셨던 주일이 보여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별개의 장으로 따로 떼어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몇 가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숨기시다가, 잡히시고 난 다음부터 자신들의 적대자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심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그것이 참으로 예수님의 주도적인 이끄심에 따른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이 죽어서 누워 게셨다는 것만큼 놀라운 기적도 없다는 설명도 그 사건의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죽음이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라 친숙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역사적인 변화에 대한 설명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부활 신앙을 소유하게 된 성도들의 내면에서 여전히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에필로그를 통해 이 책의 핵심 주제를 정확하게 정리해 주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이 예수님을 통해 서로 만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땅이 누리게 된 변화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역사하는 원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면 하늘이 우리의 삶에 깃들게 되고, 우리의 삶은 하늘의 삶으로 바뀌어지게 되지요.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 앞에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다른 이들 앞에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하늘과 맞닿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그 경험은 분명히 놀라운 변화를 그 삶에 가져왔을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