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티컬 처치 -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회복하라
제임스 맥도날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 평생 매년 52주 내내 이것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큐티나 기독교 서적, 공동체, 소그룹 활동, 봉사 활동은 전혀 무의미하다(p.19)." -
당신의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게
하라.
어린 시절 교회를 왔다 갔다만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로
결심한 이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체험은 대부분 수련회를 통해서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체험은 강도사 시절에 경험했던 경험이었는데, 이
역시 장년들을 위한 수련회에서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수련회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청소년 시절에 이러한 경험을 한 아이들은 청년부에 올라가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이유를 저는 수련회에서 선포되는 원초적인 복음에서 찾았습니다. 죄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과 회개의 촉구,
하나님과의 만남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2박 3일, 또는 3박 4일 동안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러한
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른들까지도 이러한 수련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교회가 수련회라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만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에게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교회는 매 주일의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하는 곳인데 저는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했던 수련회에서의 그 강렬한 경험
때문에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와 수련회에 가서 드리는 예배를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커다란 오류에 갇혀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주 교회로 달려와 문
앞에서 줄을 섰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마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의 임재를 통해 놀라운 변화를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p.23)." 그런데 저는 이러한 모습을 저희 교회에서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 청소년부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했던 주바라기 선교회의
수련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참석할 때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2박 3일의 일정 가운데 마지막 저녁 예배를 앞 둔 시점이 될 때마다
가장 앞 자리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 장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저녁도 굶은 채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는 청소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저녁도 굶고 두 시간 가까이를 예배 장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 때문입니다.
은혜 받고자 하는 열망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교회에서는,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시간에 그와 같은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바로 저와 같은 목회자의 선입견과 더불어 일반 성도들의
선입견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련회와 같이 특별히 준비된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라는 선입견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이 있다면, 그 선입견을 바꾸면 될 일입니다. 매 주일의 예배를 수련회를 준비하듯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도
간단히 정리하면 그와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분을 드러내는 타협없는 메시지, 그분만을 높여 드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뜨거운 기도, 그것만 준비되면 주일의 예배가 수련회의 예배보다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교회에서 드리는 매 주일의 예배는 그와 같이 준비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목회자들의 패배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예배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교회의
자원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한계에 대한 낙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과 그러한 예배의 방향성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그러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만 있다면 극복 못할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에배가 어떠한 예배인지 경험해 본 바가 없지 않습니다.
찬양 가운데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해 본 일도 적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선포 이후에 이어진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경험도 있고, 청소년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그렇게 인도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목사가 된 이후로는 그런 예배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고, 그 덕분에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예배의 방향성을 잘못 잡고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인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도 못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설교해 왔던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찬양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장년 성도들로 인해 찬송가 외에
다른 찬양을 부르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예배의 분위기를 경직된 모습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슬로우가 욕구의 다섯 단계 위에 영적인 욕구를 추가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나, 예배 기획에 대한 담임목사의 책임에 대한 알게 된 것이나, 고구마 전도 이론을 연상케 하는 풋사과 이론을 알게 된 것이나, '확신에
찬 설교'라던가 '부르짖는 기도'와 같은 귀한 도서를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커다란 유익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저희 교회의 예배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야만 한다는 긴박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수련회에 맡기고 어떻게 해서든 성도들을 수련회에 데리고 가려
하기보다, 매 주일의 에배 가운데 수련회에서와 같은 예배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앞으로는 절대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제가 경험했던, 그리고 제가 인도했던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는 그런 예배를 현재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다시금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 날이 어서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