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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평점 :
예전에 텔레비젼에서 저자가 강의하는 모습을 본 뒤로 저자에게 흠뻑 빠져버렸던 터라 망설임 없이 선택한 책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텔레비젼 강의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강의에서는 굉장히 쉽고 재미있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책에서는 상당히 무겁고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의 철학자로서의 면모가 깊이있고 무거운 주제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놀랍게 느껴졌던 것은 저자가 기독교에 대해 폭넓고 깊이있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왠만한 목회자들보다 기독교(로만카톨릭을 포함해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기독교에 대해서도 굉장히 호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책을 더 읽어가면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은 그가 확실히 '하나님(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 유산의 '실용적 가치'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종교'들은 '기독교'를 포함해서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선불교'와 같이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종교들에 대해 박식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종교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유익과 가치에 대해서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책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가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으로 꼽고 있는 것들은 목차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공동체, 친절, 교육, 자애, 비관주의, 관점, 미술, 건축, 제도와 같은 것들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종교가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해 온 도구들이며,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쓸모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인간의 한계와 인간 사회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의 필요성 또한 분명히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겸손하게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계속해서 상기하기 위해) 종교가 사용해 온 다양한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겸손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기억을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가지고 있지만, 무신론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바로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저자가 주장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치, 또는 유익을 누리기 위해 무신론자들도 무엇인가 대안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또한 그러한 대안을 최초로 만들어 낸 사람으로 오귀스트 꽁트라는 사람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는데, 저자는 그러한 실패의 이유에 대해 종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무신론자들에게 또 다른 헝태의 종교(종교의 형태를 지닌 대안)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자의 주장은 무신론자들에게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형태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고 붙인 것은 어쩌면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꽁트의 전철을 뒤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부제가 정확하게 책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은 섣부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번역해 보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사용 설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무신론자들의 삶 역시 종교가 주는 다양한 유익을 필요로 하며, 종교에서 초자연적인 영역만 제거하면 그 나머지는 무신론자들도 충분히 수용해서 사용할 만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비신화화'를 주장했던 불트만이라는 신학자의 시도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한 종교의 나머지 부분이 저자의 기대만큼 제대로 기능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그저 이성적인 인식과 개선의지만으로 치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종교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했으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자는 혹시 기독교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관해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와 기독교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저자가 인간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러한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 데에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종교인들에게 자신들이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신론자들에게 종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종교적 유산의 실용적인 가치에 대해 재고해 보라는 도전을 줌과 동시에, 유신론자들에게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종교적 유산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더 크게 기여해 보라는 도전을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들도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뒤흔드는 위협에 대한 염려없이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