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말인데 10월말처럼 느껴지는 건 갑자기 추워진 날씨의 탓만은 아니다. 12월에 조금 게으름을 피운 댓가로 1월을 무척 바쁘게 보냈는데 2월로 넘어와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벌써 다음 주 월요일이면 또 한달이 끝나버린다.
그래도 바쁜 일정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좋다. 조금만 적응이 되면 사실 열심히 일한 하루의 보람이라는 건 피곤함과는 별개로 나에게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에 사무실을 나서면 뭔가 나도 잘나가는 대형로펌의 기업변호사같은 기분도 들고. 지금에서 보면 아득하니 멀게 느껴지는 대학교 1학년 첫 학기의 가을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던 그 11시 정도의 숲향기 가득하던 그 밤의 기억을 이렇게 바쁘게 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밤에 가끔씩 느껴볼 수 있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아닌가 싶다.
마음이 바쁘고 몸이 지쳐 운동을 게을리하게 되는 건 좀 문제가 있지만 넓고 길게 보면 늘 몸을 움직이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넉넉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 덜 움직이면 그만큼 덜 먹으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서 그런 면도 있기는 하다만.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었던 이번 주간이라서 쉬면서 잠깐 이번에 받은 '맛의 달인' 네 권을 보았다. 이걸 다 모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하던 처음엔 무척 멀게만 느껴졌지만 이제 벌써 반 가까이 왔으니 다른 의미로 꾸준함은 역시 중요하다.
왕복운전이 두 시간 반 정도라서 그렇지 이런 때엔 주말이면 미술관에 가고 싶어진다. 특별전이 아니라도 꽤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SF De Young이나 언덕에 있고 parking free에 view와 공기가 끝내주는 Legion of Honor도 좋겠다. 가서 걸어다니면서 그림을 보고 설명을 읽다보면 2-3시간은 훌쩍 가버리는데 문제는 역시 운전, 그리고 기름값. 푸찐의 우크라이나침공으로 더욱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기름값도 무시하지 못하고 케쥬얼하게 다녀오기엔 좀 멀게 느껴지니 특별전이 아니면 사실 안 가게 된다. 날씨가 좋아지면 그래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더더욱.
내일은 좀 일찍 나와서 일처리를 하고 점심 때 맘껏 운동을 하고 싶다. 현실은 피곤하고 추워서 겨우 시간에 맞춰 나올 가능성이 더 높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때도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