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력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지영 옮김 / 생각의집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이런 저런 책이 새로 도착하여 정리하고 사무실에 일단 쌓아둘 공간을 확보한 후 리스팅을 하는 등 정신 없이 어제 오후를 보냈다.  그 와중에 일도 하고, 전화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떻게 해도 정리하기 힘들어지고 있는 사무실 공간에 대한 고민과 짜증은 덤으로 생긴다.  리뷰나 서평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미루지 않고 작성하려는 독서후기 또한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쌓인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억지로 머리를 짜내는데, 일종의 강제성이 생활에 종종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매사를 능동적으로 살면 좋겠지만, 워낙 평범한 사람인 나는 필요에 따라 억지로 상황을 만들고 나를 집어넣어야 하는 때가 있다.  


사이토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 장정일, 이현우, 금정연 등등 이루 다 기억할 수 없는 독서달인들이 쓴 책을 읽어왔다.  일부 공감하고, 어떤 경우엔 그리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만, 모두 내 독서지평을 넓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카자키 다케시는 '장서의 괴로움'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책으로 장서덕후들의 교주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 서재'의 장샤오위엔 선생과 함께 나의 장서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 위로를 받는다는 말과도 같은데, 적어도 어떤 목적성의 독서 또는 수단으로써의 독서론을 설파하는 사람들 - 고수에서 하수까지 - 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책과 책읽기 그 자체를 한없이 사랑한다는 점에서 다치바나 다카시 혹은 사이토 다카시류의 독서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인류의 스승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여기에 비하면 이모씨의 대두를 전후로 유행하기 시작한 자잘한 독서선생이나 관리학 강사들은 그 수준이 매우 얕다고 생각된다.  


금과옥조와도 같은 문장이 많았는데, '구매한 책을 전부 읽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읽는 책밖에 사지 않는 셈...게다가 책은 한 번 읽으면 그대로 용무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참으로 어수룩한 생각...책과 착실히 마주하여 깊이 있는 독서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책을 쌓아두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아니, 그 길밖에 없다.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착실한 독서생활을 불가능...'을 읽었을 때에는 그간 내가 걸어온 장서인생과 철학을 다시 확인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가지고 있다는 것, 지금 당장 읽지 않더라도 흥미가 가는 책을 모으는 건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 차이'가 있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베스트셀러에 관심이 없는 나처럼 그 또한 이들에겐 특별한 관심이 없으나, 출판계의 현황파악의 수단으로써의 사실적 중요성, 그리고 유행이 지난 후에 읽어보는 베스트셀러의 사회반영성 등에 대한 의견도 꽤 신선했다.  뒷쪽으로 갈수록 내가 모르는 일본서적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서 마지막엔 집중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는 상당한 공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공부를 못하는 편이었으나 책읽기를 즐겼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최소한 미국이라는 기름진 토양에서 내가 피어날 수 있는 계기와 준비과정은 고스란히 독서에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학창시절에 책읽기말고는 잘하는 것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교사에게 상처받았거나 용기를 얻은 이야기는 그대로 내가 기억하는 한 시기의 내 모습과 겹쳐진다.  


책읽기에 대한 외로움에서 시작된 독서이론과 책에 관련된 것들의 읽기가 여기까지 왔고,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젠 한 줄에 약 30권이 들어가는 4단책장 한 개로는 확실히 모자랄 만큼의 책을 모았다.  저자는 2개 정도인데, 난 아직 그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이 또한 고수에 견줘볼 때, 나에겐 구도의 길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무엇인가 다른 길을 찾게 했으니까.  


저자가 쓴 다른 책도, 칼럼의 글도 읽어보고 싶다.  다치바나 다카시와는 사뭇 다른 의미의 감동이 전해지는데, '수단'으로서의 독서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수단'으로, 그러니까 research를 위해 자료를 찾은 것은 책읽기로 치지 않는다.  물론 독서의 방법이나 형태에 어떤 기준이나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종이책을 그 재미를 위해 - 지식이든, 감동이든, 정보든지, 하지만 순수하게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 읽는 것을 말한다.  난 항상 그렇게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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