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이 널을 뛰는 듯, 바쁜 날에는 아침부터 퇴근까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그러다가 갑자기 하루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잡무와 행정업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일처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하면서도 짜여진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하면 improvise하여 급작스럽게 발생한 업무처리를 하는 것은 나만의 강점이다. 하지만, 조직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조직에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체계를 관리하면 사람 때문에 발생하는 에러를 어느 정도 방지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것이 아마 회사의 사이즈를 키우면서 가장 처음에 맞닥뜨릴 문제가 될 것이다. 내년에 그녀석이 오면 변호사의 업무 외, 직원에게 할당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르치고, 함께 메뉴얼을 만들어 체계저인 절차를 만들 것이다. 금년에는 이런 준비와 bulk-up을 위한 작업의 시작까지는 진행하고, 이에 따른 혜택도 있겠지만, 본격적인 전선은 내년이 시작일 것이다. 차분하게 업무를 볼 수 있어 지난 일주일을 미루던 업무를 오전 시간에 일차 마무리하였다. 항상 느끼지만, 일하는 환경이 복잡한 나는 이런 시간이 가끔씩은, 하지만 주기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다른 수도원과 맞교환을 통해 시루즈베리 수도원의 소유가 된 땅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시체가 나온다. 그곳에서 아내와 살다가 갑작스러운 calling으로 그녀를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온 남자, 또 원래 그 땅의 소유주였던 집안의 차남으로서, 다른 수도원으로 갔었던 남자, 이렇게 두 명의 수도사가 주용의자로 일단 파악된다. 그 정체를 둔 추론과 수사는 일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면 바로 이를 cancel시키는 요소가 발생하여 진범은 커녕 죽은 여자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라면 이건 100% 미결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증인확보도 어렵고, 설사 어렵사리 용의자를 잡아와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이 정황과 자백만으로는 형사재판에 요구되는 beyond the reasonable doubt을 넘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중세는 고문에 의한 자백이 허용되었고, 믿어지던 시대인데, 캐드펠의 중세는 그런 '암흑'시대가 오기 조금 전, 그러니까 100년전쟁으로 시작되는 간빙기의 혼란 이전의 시대라서 그런지, 지금의 눈으로 봐도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무당한테 가면 무병이 왔다고, 그래서 내림굿을 해서 신을 받아야 한다고, 당신은 무당이 될 운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상황만 바꾸어 놓고 보면 기실 수도사나 신부가 되는 calling도 이에 못지 않은 면이 있다. 물론 몸이 아프거나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런 열정에 사로잡히면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그 당시에는 그저 사바세계를 떠나 수도원이나 신학교로 뛰어들어가게 된다. 다만, 무당과는 달리, 여러 가지의 검증절차와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진정 그 calling을 인정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false calling이나 다른 이유로 현실을 도피하려는 시도는 많이 걸러지게 되는데, 안정적으로 정착된 종교시스템의 강점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열정이 끝까지 이어져서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때 미혼이라면 그리 문제될 것이 없으나, 이미 결혼한 몸이라면 남은 배우자 및 자녀는 그야말로 지옥을 맛보게 된다. 아무리 신앙심이 투철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를, 아버지나 어머니를 잃게 되면 그야말로 돌아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번 이야기의 한 수도사 역시 그런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사람의 불편함이나 후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가서야 그의 아내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했었는데, 아름다웠었는지를 주워섬기는데, 제 아무리 아름답고 고결한 수도생활을 이어가더라도 난 이런 설정과 결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자신의 ,calling을 따라가는 것과,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버리는 것은 '신'이라는 대전제를 빼면 대체로 거의 같은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육욕'은 나쁘고, '수도생활'에 대한 열정은 거룩하다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calling이 오더라도 가족이 있으면 그의 calling은 가족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렇게 봉사하는 분들도 많은데, 간혹 모든 것을 던지고 어디론가 뛰어들어가버리고야 마는 인간들이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의 사건은 결국 그 수도사의 calling에서 비롯된 것인데, 당사자들이 다 죽어버렸으니 그 피값은 어디서 받아야 할까?
요즘 '명리'와 함께 책이 대박이 났다고 하는데, 팟캐스트 강의와 이런 저런 출연료까지, 강헌 선생의 생활이 피긴 확실히 핀 것 같다. 끔찍한 교통사고로 전처를 잃고, 몸도 다친 강헌 선생이 다시 차를 사고 운전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이분의 인생도 up-and-down의 연속이로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간 음악사에 대한 책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은 문학수 기자의 책과 함께 매우 좋은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문학수 기자의 책이 교과서 같다면, 이 책은 만화로 만든 참고서 같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만큼 쉽고 재미있게, 강헌 선생의 말투 그대로 블루스, 재즈, R&R, 랩, 클래식, 한국음악의 중요한 순간들, 이른바 '전복과 반전의' 음악사적인 순간들을 보여준다. 보다 야사적이기도 하고, 소설적인 표현으로 중요한 음악사의 배경지식을 얻고, 이를 토대로 좀더 깊은 듣기와 역사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명리'보다도 더 쓰임새가 많은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권씩, 두 권씩, 조금씩 읽고 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슬슬 문학을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막상 그렇게 하려고 하면 눈에 밟히는 책들이 많아서, 그리고 문학으로 가면 당분간은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점에 마음이 약해진다. 아~ 즐거운 망상과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