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선생의 책 한 권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김훈 작가의 신작 "라면...", 거기에 다자이 오사무의 책 한 권, 그리고 읽다가 쉬고 있는 2-3권의 소설까지 하면 정말 많이 밀려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행복한 늪이고 블랙홀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다 읽을 책들이니까. 다만 충동적인 대량구매를 좀 자제해야 하는데, 한국의 출판시장의 특성상 좋은 책은 좋아서, 덜 유명한 책은 덜 유명해서, 어쨌든 나름대로의 이유로 종종 절판되는 탓에 불안해지면 답이 없는 것이다. 이번 해를 넘기기 전에 정품으로 나온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외전', '아르슬란 전기'등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걸 어쩌나.
읽을 책이 밀렸는데, 주중에 흥미로운 책을 사게 되어 먼저 읽었고, 금요일에 도착한 책들 중에서도 한 권을 냉큼 집어들고 다 읽어버렸다. 다시 원래 읽던 이덕일 선생의 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게 또 쉽지만은 않은 것이 화가 나기 때문이다. 읽다가 보면 마치 한국의 정치현상을 보는 것처럼 한숨만 나오고 화가 돋는데, 이제 나이도 나이니만큼 자꾸 화를 내는 것이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그리고 내 인성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읽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존 그리샴의 책은 늘 쉽고 빨리 읽힌다. 초기작만 해도 상당한 이슈제기를 하는 문제작이 꽤 많았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약간 무협지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요 근래의 작품들을 보면 중요하지만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이슈나 legal practice에서 marginalize된 분야를 이야기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의 책은 특히 상당히 borderline 이슈가 되는 형사법 전문변호사가 주인공이다. 에피소드는 loose하게 이어지기는 하지만, 몇 개의 사건들이 하나씩 해결되는 것으로 단편을 이어놓은 듯한 느낌도 있어 지겨움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형사법 변호사가 용의자를 변호하는 것은 아무리 강력한 확신범이라도 법으로 정해놓은 합리적인 절차를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물론 충돌하는 윤리규정 - 변호사는 100% 의뢰인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규정 vs. 법정의가 모든 것에 우선함 - 그것도 쉽게 판단하여 결정할 수 없는 이슈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법/비법/합버의 경계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극단적으로 형사변호사의 역할로 확실했던 유죄가 무죄로 바뀐 경우는 OJ 심슨 재판인데, 실제로 부자는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더 나은 조건의 합의를 끌어내거나 무죄를 받아내기도 하는만큼 시스템의 합리성과 정당성은 늘 도전 받고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역사에 근거하는데,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흑인이나 유색인종을 비롯한 사회의 변경에 위치한 사람들을 범인으로 만드는 행위가 많이 근절되고 또 까발겨지는 것은 결국 이런 법조계의 노력 때문이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이들의 윤리는 언제나 의뢰인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쉽고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데, 그냥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좀더 접근이 쉽지 않을까? 보존가치만 보면, 그러니까 재독율은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그리샴의 책은 꾸준히 구해서 읽게 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보니 어느새 서점이나 도서관의 이야기를 다룬 책도 꽤 많이 갖게 되었다. 우연히도 요 근래들어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최근에 읽은 책만해도 3권 정도가 더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우연인지, 출판계의 유행에 따른 필연인지에 대한 판단은 그만두자.
함부르크에서 살던 부부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것도 재정적으로 전혀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빈에 나온 책방을 사들여서 모든 것을 던지고 뛰어들었고, 성공한 이야기. 이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인데, 유럽의 book culture는 한국은 물론 미국의 그것과도 많이 다른 듯 싶다. 일단 책을 더 많이 읽고, 대형화된 서점과 동네서점이 함께 공존하는 구조와 사고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아마존처럼 쉽게, 그리고 종종은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역의 서점을 이용하는 자세까지 부럽기 그지없는 문화적 우위라고 보겠다. 알라딘에서 주로 모든 한국어책을 구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대학교 시절만해도 한국에 가면 동네의 서점을 주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내중심의 대형서점이 아닌 이상 새책을 구하려면 온라인 서점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고, 내가 사는 이곳의 미국현실인 것이다. 당시 한국의 동네에 단골로 다니던 서점 아저씨하고는 늘 인사를 나누고 책 이야기를 했었는데, 요즘은 기실 작은 서점에를 가도 주인얼굴도 모르고, 또 책을 잘 아는 분도 아닌 경우도 많아서 한번 둘러보고 책장을 가득채운 문제집과 참고서에 실망하고 나올 뿐이다. 나중에 정말 여유롭게 은퇴하면 해보고 싶은게 서점인데, 뭘 팔기보다는 내가 나가서 놀 공간이 될 것이니까 그리 현실적은 꿈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게 사지육신이 어느 정도 멀쩡하고 머리만 돌아가면 늙어서도 무리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half-retire한 정도로 작은 방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슬슬 일하고 책보고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게 내 노년의 모습인데. 가만보니 지금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기는 하다. 뭐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루를 시작하고 마시는 이 계절 정도의 쌉쌀한 아침공기가 너무 좋다. 비록 일정이 꼬여서 사무실에 어제도 나왔고 오늘도 잠깐 들렸지만, 그 덕분에 근처에 있는 동네 community center의 운동장을 뛰다 들어갈 수 있으니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일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