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반으로 꺾어진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가끔 애니메이션을 보고, 게임 life를 동경한다. 물론 나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도 여러가지 이유로 게임은 즐기는 것은 쉽지 않은데, 특히 예전에 하던 것들은 그나마 그 기억으로 재미도 느끼고 손쉽게 다시 몰입하지만, 요즘의 게임은 뭐랄까 아주 훌륭한 그래픽과 UI에도 불구하고 깊이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 애니메이션은 조금 사정이 나아서 그래도 한번 틀면 오래 볼 수도 있고, 귀여운 연애담이나 '언어의 정원'처럼 시원한 장마비가 쏟아지는 풍경 그 자체에 푹 빠져들기도 한다. 갑자기 이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에 2-3-4권을 내리 읽은, 추리소설의 탈을 쓴 라이트노벨 때문이다.
제목에 흥미를 가졌고 일러스트에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의 처자그림에 속이 궁금해서 이번에 모조리 구해서 읽어버렸는데, 지금 보니 조금 전에 5권이 나온 모양이다. 어쨌든 책과 고서를 둘러싼 주인공 남자와 그가 알바를 하는 고서점의 주인아가씨의 미묘한 연애 비슷한 것을 양념으로 치면서 이런 저런 책에 얽힌 추리를 벌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 insightful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알콩달콩, 이 나이가 되어보니 참으로 귀여운 20대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면서, 묘하게 설레이는 것이다.
내 20대를 생각하면 참 포기한 것도 많고 앞만 보면서 달려온 삶이라고 늘 얘기하는데, 연애도 그랬던 것 같다.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경험치를 쌓고 앞으로 나가는 게임처럼 그렇게 가끔씩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었는데, 기억에 짠하게 남는 그런 것이 없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한 20대를 다시 살 방법은 없으니까, 이런 소설에도 빠지는 것이 아닌가싶다. 나이가 들수록 미래보다는 과거를 바라보면서 추억과 기억에 기대어 남은 생을 살아간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 경향이 누구보다도 심한 것 같은 요즘 나의 일상이다. 에도가와 란포가 했다는 저 말이 너무도 맘에 와 닿는다.
"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그래서 오귀스트 뒤팽과 화자는 그렇게 낮에는 커튼으로 빛을 막아 밤을 누리고, 밤이 되면 깨어나 인적이 끊어진 어두운 도시를 활보했었나보다. 꿈속에서만 머물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나저나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재미있고 기발한 것들이 많은데, 더 많은 번역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