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두 권은 그 성격이 앞서의 자계서 두 권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따로 정리했다.  고전문학은 나의 학구적인 그러나 때때로는 된장적인 욕구와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읽어야지 하면서, 읽었으면 하면서, 머리가 무거울 때에는 붙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최근에 로쟈선생의 책을 읽고나서 충동적으로 몇 권의 책을 사들였는데, 정작 책을 받고서는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공간을 하나 확보하여 '연구소'형태로 꾸미고 도피하는 것인가보다.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갈수록 아쉬운 것이다.  이 지역의 주택구조의 특성상 불가능하지만, 나는 이래서 지하실이 필요하다.  아니 많은 남자들이 지하실을 man cave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숫컷들에게는 그런 고독으로의 지향이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덜 자라나는 것은, 아니 나이를 들수록 퇴보하는 마음의 나이는 우리들을 세상은 kidult로 규정짓는다.  완전히 공감하지는 않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닐게다. 


자칫하면 편향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는 역사나 사회-정치관은, 이렇게 중간적인 입장에서, 그러나 매우 솔직하게 역사의 디테일한 면면을 살펴보는 것으로 보다 덜 극단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것, 우리의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 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는 역사는 그 편향성 만큼이나, 잘못된 후대의 사고와 행동을 양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하나이고자 하는, 하지만 영원히 우리의 주류가 될 수는 없을 박노자 교수의 서술은 큰 의미가 있다.  단순히 민족주의 진영에서 하면 모든 것이 만사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은 결국 수구세력의 '박정희' 하나면 만사오케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단결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배제를 가져온다는 그의 말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세계는 다변하고 다원적인 곳이지, 양단으로 나뉘어 사고될 곳이 아닌 것이다.  물론 보다 더 단순한 '국민'교육은 낮은 차원의 학습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교육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고를 기르는 방향으로 학습된다면 역사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의 질과 깊이는 나아질 것 같다.  그렇게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 또한 정상배나 모리배들과의 투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진정한 의미의 근대시민이 한국에 출현되어 '국민'시대의 막을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분과 독대하여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천생의 시간이 될 것 같다.  예전에 그의 책을 읽었을 때에 느꼈던 거부감은 결국 나의 적나라한 역사인식을 까발리는데 대한 거부에 다름 아니었을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언젠가 소개되었던 책이다.  미국의 무명작가와 영국의 서점직원들이 책을 주문하고 발송하는 과정에서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모아 놓은 짧고 단순한 책인데, 읽는 내내 지금의 시대에서는 자주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특히 자신의 생활도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았을 미국의 작가가 사비를 털어서 전후 영국에서 귀한 생활물자와 음식을 보내주는 것을 보면서, 어떤 보편적인 나눔의 자세, 이제는 보기 드문, 그런 것에서, 지나간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했다.  


영화로도 나와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구해볼 생각이다.  Anthony Hopkins가 아마도 프랭크로 나온 것 같은데, 영화가 워낙 오래되고, 흥행작도 아니기에 DVD로 구해야 할 듯하다.


아름답게 만들어진 전 시대의 책을 바다 건너에서 주문해 받아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아니 writer, 무명이라 해도, 생활은 가능한 수준의 작가로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어제 밤에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끝낸 책인데, 지금까지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