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정신없이 책을 읽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후까지 케이스와 씨름하다고 틈틈히 쉬면서, 그리고 집에서 남는 시간을 모조리 책읽기에 쓴 것이다.  그리 어려운 책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 읽기보다는 읽던 책을 끝내거나 소설을 읽은 것 정도...


제정 러시아 시대의 계급은 크게 귀족, 관료, 상인과 농노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농노제도가 실시된 나라답게 매우 전근대적이던 러시아는 그러나 문학사의 보고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의미있는 많은 작품은 러시아 출신의 작가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 적어도 제정러시아의 전 근대성을 생각할 때 다른 유럽 제국들에 비해 많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도스토옙스끼의 초기작품인 '분신'은 그리 큰 찬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훗날 그의 대작들에서 볼 수 있는 자아분열의 모티브를 사용한 것으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스토리는 역시나 두서없고 즉흥적이며 연관성이 없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주인공의 도플갱어 같은 인물이 주인공의 모든 것을 하나씩 빼앗아간다.  약간의 clue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인공이 정신분열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환상주의적인 모티브로써 또다른 주인공이 나타난 것인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깊은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저 한 권의 스토리를 음미하는 것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었다.  문학, 아니 어지간한 소설은 처음 읽을때에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를 재독을 하면서 알아가는 것은 그렇게 일단은 구성을 알고나서부터 깨달음이 시작되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나서는 작가의 대작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역자가 번역한 같은 책이 이처럼 경쟁하는 두 군데의 문학전문 출판사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나?

 

내가 본 것은 맨 왼쪽의 '하얀 성'이다.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예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재미있는 것은, 비록 내용과 구성은 다르지만, 이 작품 역시 일종의 자가분열 또는 정체성 분열을 다룬 것 같다는 점이다.

 

알고서 읽은 것은 아니고, 읽다보니 주인공=호지 : 호지=주인공화가 되어 종국에는 떠난 그가 누구인지, 남은 자는 누군인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이 예언이 되고, 예언이 현실이 되는 이야기만큼이나 화자의 정체가 끝내 궁금해는 이 구조는 정말 특이했다. 

 

종종 하는 생각인데, 이렇게 전혀 접하지 못했던 문화권의 책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법이나 전개, 모티브까지 기존의, 익숙한 문화권의 책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읽는 내내 내가 그린 상상의 세계는 유럽이 아닌 이스탄불과 추상적인 이슬람의 그림과 문양으로 가득 찼더랬다.  흥미가 가는 작가이다.

 

전후 일본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작품이다.  아사다 지로는 요시카와 에이지만큼 무겁지 않은 가벼운 글체로 잔잔하게 감동적인, 그러나 이렇게 간혹 엉뚱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마도 일본의 버블붕괴시대의 일인 듯 한데, 경영악화로 그 달의 어음결제를 위해 여행사는 고급상품을 두 개로 나눠 초고급 파리여행과 초저급 파리여행상품을 만들고 각각 positive와 negative그룹으로 나눠 팔아먹는다.

 

각각 사연이 가득한 등장인물, 그리고 책속의 책처럼, 등장인물이 쓰는 책의 스토리가 전면에 다른 이야기로 등장하는 등, 특이한 재미를 선사한다.  '바람의 검 신선조'의 원작인 '칼에 지다'를 쓴 아사다 지로는 '철도원'이라는 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이 사람의 책, 나라면 무조건 구해보는 편이다. 

 

바쁜 와중에도 찾아오게 마련인 잠깐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마구잡이식의 독서를 했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과 여유의 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일이 아니면 일이 없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시키기 위해 일을 주는 따위는 없는 것이 내 현재 직업의 좋은 점이라고 하겠다. 

 

다음 책으로 진격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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