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디에선가 읽은 일화 하나.  어느 소년이 루이 암스트롱에게 물었다고 한다.  무엇이 재즈냐고.  이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네가 그것을 묻는 한 너는 재즈가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출전이 의심스러운, 어떻게 보면, 매우 뻔한 이야기인데, 놀랍게도, 그리고 내 관점에서는, 이 이야기에는 재즈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 고 생각하는데, 물론 과장이 왜 없겠는가?

 

지인들에게는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내가 재즈를 듣기 시작한 순간의 매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1998년 4월, Washington DC에서 버지니아로 넘어가는 metro line의 마지막 DC 정거장인 Foggy Bottom역 근처.  당시 우리 프로그램을 lead하던 정치학 교수의 자취방.  저녁 7-8시 사이로 넘어가던 그 날. 

 

당시 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 학기를 Washington DC에서 살면서 강의와 인턴쉽을 함께 하고 있었더랬다.  DC 중심부에도 볼거리가 많지만, 맛집과 좋은 pub들은 외곽에 더 많이 있는데, 특히 Georgetown 대학교가 있는 곳에 있는 Chadwicks는 꽤나 유명한 곳이다.  (아직도 있는데, http://www.chadwicksrestaurants.com 를 참고하시라)  이곳의 단골이던 당시 교수와 내 친구랑 셋이서 맥주를 마시러 교수의 자취방에 잠시 stop-by하게 되었었다.  음식도 꽤 유명하고, 대학가의 pub 답게 좋은 가격, 그리고 젊은이들로 꽉 찬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맥주를 마시기 위해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동부의 날씨는 서부와 매우 다르고, DC는 특히 한국의 사계절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때에도 본격적인 우기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퍼붇는 소나기로 인해, 우리들은 잠시 교수의 자취방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빗소리에 섞여 내 귀에 들려오던 잔잔한 선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선율이 재즈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만큼, 재즈의 풍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다, 내가 알 수 있었을 정도로.  하지만, 이때의 재즈는 평소의 내가 그냥 흘려 보내던, 그저 그런 sound와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는데, 이 x factor는 바로 이른 봄의 밤에, 도시에 내리던, 아니 울려퍼지던 빗소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일부러 해보려해도 이때와 똑같이 재연되지는 않는 빗소리와 은은한 재즈의 - 곡명도 뮤지션도, 심지어는 악기도 기억할 수 없지만 - 앙상블. 

 

이 기억이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재즈를 듣게되는 유일한 이유라고 하면 과장일런지?  얼마전에 아파트에 박스째 가져다 놓은 CD들을 뒤져서 재즈 CD를 모두 꺼내어봤는데, 생각보다 적은 양이라서 놀랐다.  오히려 클래식 CD가 더 많을 정도.  역시 재즈의 본격적인 팬이라기보다는 기억속의 재즈를 찾는 초심자에 가까운 것 같다, 나라는 사람. 

 

대략 이런 저런 뮤지션들의 CD 20여개에 예전에 탤런트 이요원이 시집가기 전에 당시 유행에 따라 찍어낸 Blue라는 재즈 모음집 (CD 10개)이 내 초라한 컬렉션의 전부.  하지만, 요즘은 하루키의 안내에 따라 조금씩 내가 모르던 뮤지션들의 음반을 Logos에서 매우 저렴하게 구하곤 한다.  어제 하루키의 재즈 재인열전(?) 두 번째 책을 읽은 기념으로...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나니, 문득, 이 얘기는 페이터 어디엔가 쓴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나이가 들면서 오는 기억력의 감퇴라는 것은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재생이 잘 되는 동년배들과의 대화는 뒷날이 무서울 정도이다.  이제 반생을 향해 가는 지금이 조금은 서글프다.  저녁때, 비는 오지 않겠지만, 잔잔한 재즈에 위스키라도 한 잔 해야 이 기분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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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3-01-0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CD 200장이라고 읽었어요 처음에. --; 이런 음악 얘기도 좋으네요. 저도 재즈 심하게 좋아하는데 잘 아는 것도 아니라서 또 '심하게'라는 표현을 쓰기는 그러네요... 그냥 선율이 좋아서 다른 음악들보다는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보사노바도 좋아하구요. 그런데 트란님, 반생이라 함은? 반생은 오공 아닌가요? 와!

transient-guest 2013-01-10 01:41   좋아요 0 | URL
ㅋㅋ제가 재즈는 좀 늦게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가요 LP사고, CD사고, 그러다가 클래식이랑 재즈하고 팝을 좀 듣게 됐죠.
니어링 부부처럼 건강하게 장수해도 대략 80세를 전후로하면 완전히 노인이 되는거니까, 80을 기준으로 하여 그렇다는 것이죠...-__-: 제가 대학교를 다닌게 벌써 십수년 전이라고 생각하니까, 급 늙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