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다양한 문학상들이 있고, 이들은 신진작가들의 등용문이면서 기존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예술성, 문학성, 그리고 작품성을 다시 인정 받거나 인증 받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역할들 외에도). 그러나, 지난 십여년간 내가 읽어온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주 말하지만 90년대를 지배했던 후일담 장르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진부함을 넘어 지겨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 이는 후일담 일파 일부의 훗날 변절을 미리 예견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원래 4.19 의거를 전후하여 문단이 보여준 행태, 그리고 5.16 쿠데타 이후 그들의 변절이라는 공식은 익히 알고 있는 바 - 역시 90년대 이후 한 동안 한국의 많은 신작들이 보여준 일인칭 형태의 서술형식, 그리고 문예창작교습을 통한 찍어내기에 질렸던 터라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한국의 현대작가들의 글을 읽지 않았었다.
이 시기는 또 묘하게 나의 독서편력에 있어 역사 및 역사소설에 편중되었던 편식이 점차 고전문학으로 확대되어가던 시기와 겹쳐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대문학의 태생적인 한계때문에 더욱 나는 한국의 현대문학을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태생적인 한계'니 '가볍다'니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니 혹 disagree하는 분들 중, 예의가 없는 분들은 공연히 개거품을 물며 댓글로 나를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친들, 그리고 예의를 갖춘 분들께서 항시 주시는 문학교육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이 시기의 나의 독서편력은 고전문학과 화제작, 그리고 역사/역사소설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7년을 전후하여 과거 한국문단의 글들 - 염상섭의 동시대, 그리고 멀리는 이광수나 심훈까지 - 을 읽을 기회가 생겨서 한동안 그 시대의 한국문학을 열심히 읽었더랬다. 그리고 이문열이나 박경리, 김동리의 글도 조금씩 읽어대다가 - 난 황석영의 글은 좋아하지 않는다. 후일담 일파의 장문인격으로 생각되는 이 사람은 정말이지 별로다 - 현대소설로 넘어와서 김탁환이나 김성종, 정비석 등의 글을 많이 읽어대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문학상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책은 손대지 않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무지했던 것일 수도 있는데, 이는 김영하, 천명관, 정이현 같은 젊은 작가들은 차치하고라도 신경숙이나 은희경같이 최근 한국 문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읽은 2012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그리고 천명관, 정이현,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을 보니 내가 후일담 보이콧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한국의 문학은 꾸준히 발전하고 진화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찬란했던 80년대 운동권의 회고 (물론 그들은 변신하고 변절하여 유시민류와 김문수류 그리고 수두룩한 중간의 아류들로 바뀌었으니까 더 이상 추억의 대상이 아니다)도 없었고, 한 시대를 풍미한 일인칭도 많이 사라졌거나 순화되어 더 이상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시대상을 떠나서, 글쓰기 자체가 더욱 세련되어 지고, 솔직해진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일까? 물론 군데군데 아직도 이런 것들이 많이 보이는 단편들도 일부 있지만,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많이 발전된 느낌, 그리고 힘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의 서점을 채우고 있는 많은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책을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졌으니까, 적어도 내가 예전에 느끼던 그 부족함은 많이 메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수 많은 다른 작가들의 책도 꾸준히 읽어볼 것이고 보다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작가들의 책도 또한 구해볼 것이다. 생각해보니 동시대의 작품들만큼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투영하여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도 드물겠다. 고전문학에서 진리와 지혜를 배우고 반복되는 역사를 본다면, 현대문학, 특히 동시대의 책에서는 지금, NOW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지 등등, 나 하나로 나타나는 단편적인 삶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보지 못하는, 싫어서 살고싶지 않은 다른 형태의 삶 또한 볼 수 있는 것이리라.
가슴이 벅차다.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떤 새로운 글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에 slow한 10월의 business일상 때문에 자주 울적한 나의 심사가 간만에 살짝 밝아졌다.
이제 아침 일찍 공원에 가서 걸으면서 이 기분을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