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사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나의 하루키 편력은 무척 늦은 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나 세계관 등, 헤아릴 수 없을만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글은 이미 넘친다고 본다.  나 또한 그의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썼고, '상실의 시대'라고 나온 초기 번역본에 대한 글도 이미 몇 번 써봤다.  그렇기에 내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나중에는 또 그 나이때의 느낌에 따라 보이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 나이가 되어봐야 알테니까 지금은 무리다.

 

일단 이 책은 원전에 더 충실한, 그러니까, 의역보다는 일본어 표현에 더 가까운, 일종의 직역을 통한 재번역이라고 하는데, 일어를 모르는 내가 보아도 주어의 위치, 특정 단어, 그리고 문화적인 부분에 있어 짧게나마 아는 일어의, 또는 일본인의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상실의 시대'에서 여성의 성기를 표현할 때, '그 부분'등으로 모호한 표현을 썼다면,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바기나' - 영문 vigina를 일본식으로 읽은걸 그대로 쓴 듯 - 로 꽤나 적나라하게 그대로 옮겼다는 것.  또 나오코가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는 '상실의 시대'에서는 반말로 나와있는데, 여기서는 존댓말로 되어있다.  이것은 일본 특유의 문화적인 것 같은것이, 듣기로는 일본 여자들은 남자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일일이 대조해보지는 않았지만, 이 밖에도 소소한 표현들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루키는 나를 기준으로 볼 때, 부모님 세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의 경험과 인생여정은 한국의 386세대의 그것과 비슷하다.  약 20년 정도의 사회-정치적인 development 단계의 차이라고 할까, 일본의 386세대는 60년대에 우리 386세대가 80년대에 겪은 시절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하루키의 문학은 그런 냄새에서 자유롭다.  마치 4.19를 전후로하여 잠시나마 활발한 혁명문학이 대세를 이루었던 것처럼 80년대의 문학은 시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 후,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는 소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는 유행이 문학의 일정부분에서 지분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당시의 잘나가던 작가들 중 상당수가 '맛이 간'듯한 행태와 글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면에서 하루키의 문학은 자유롭기에 현학적이지도 않고, 에세이와 여기서 비롯된 창작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의 빛나는 문학투사들 중 깊은 문학적 achievement를 보여주는 분이 몇이나 있고, 또 변하지 않은 분은 몇이나 있는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딱 하나 조.정.래 뿐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평론가들이 이야기한 주인공과 주변인물들간의 삼각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1.  주인공 - 나오코/키즈미: 이때의 삼각관계는 나오키/키즈미 사이에 낀 주인공이 만드는데, 나오코/키즈미에 붙은 주인공의 삼각관계는 그를 살게 하는, 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가 된다.  그랬기에 키즈미가 사고로 죽은 후, 주인공과 나오코는 서로 사랑을 느끼는 관계지만, 지속될 수 없는 불완전한 개체가 된다.  (나오코를 자꾸 나오키로 쓰게 된다.  나오키는 남자이름이니까, 갑자기 주인공을 게이로 만들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2.  주인공/나오코-미도리: 주인공과 같은 수업을 듣는 미도리라는 여학생이 우연하게 등장하면서 다시 삼각관계 비슷한 것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미도리는 아직 남자친구가 있는 상태로써, 주인공-미도리/남자친구의 삼각관계와 함께 변형과 혼재를 거듭한다.  either way, 다시 어중간하게나마 완전개체가 된다.

 

3.  주인공-나오코/레이코: '마의 산'을 떠올리게 하는 (레이코의 말이기도 하다), 요양원.  이 요양원을 방문한 주인공을 맞는 나오코와 전직 피아니스트 지망생, 및 피아노 개인교사 출신의 룸메이트 레이코.  이 셋이 함께 있을때, 다시 조금이나마 예전의 삼각관계로써의 개체가 회복된다.  한편 레이코도 일종의 삼각관계의 경험자이다.  남편/레이코-가르치던 삐뚤어진 학생아이 (레즈비언 기질이 있는 듯한).  그러나 레이코의 과거 삼각관계는 학생아이의 삐뚤어진 기질 때문에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고, 종국에는 레이코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4.  주인공/미도리-나오코 또는 주인공/미도리-레이코 조합: 미도리는 아직도 남자친구가 있지만, 주인공에 끌린다 (유혹하면 넘어갈 마음이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미도리에게 위안을 받고 정을 느끼면서도 나오코를 사랑하는 마음을 거둘 수가 없다.  레이코는 이 시점에서는 나오코의 대변인, 또는 이어주는 존재.

 

5.  나오코가 자살하고 나서.  주인공/미도리-레이코: 레이코는 요양원을 나와서 주인공을 만난다.  둘은 같이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하다가, '그것'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떠난다.  이로써, 주인공의 유년기-20대 초반을 함께한 모든 삼각관계라는 모종의 system이 모두 붕괴되고, 주인공의 삶은 새로운 관계 system정립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즉 한 시대의 끝이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미도리는 그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면서 동반자가 된다.

 

여기까지가 이번에 정리할 수 있었던 plot이다.  물론 이는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건 이번에는 무리.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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