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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세이초의 소설에서는 식민지 조선이 자주 등장한다. 일종의 background fact로써인데, 주로 과거를 알 수 없는 사람, 험한 과거를 가진 사람이 조선에서 있었다는 설정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험한 과거를 가진 케릭터는 만주나 중국 일대에서의 경력을 가진 것으로 나오니, 예전 어느 학자의 글처럼 식민지라는 곳은 결국 본토에서 밀려난 인생들이 모여드는 일종의 frontier가 되는 것인가보다. 이 학자는 식민지 조선이 겪은 일본인들의 대다수는 본토의 일인들보다 더 질이 낮고 안 좋은 부류였을 것이라고 했는데, 기실 관동대지진때 섬에서 자행되었던 조선인 학살현황을 보면, 본토 역시 거기서 거기가 아니었을까? anyhow...
이 책에는 가해자도 희생자도 모두 피해자로 인식되어 나온다. 이는 전후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인식같기도 한 것 같다. 즉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이때의 일은 묻어두어야 하는 과거인것. 그리고 이후 군정시대를 거친 일본인들은 피해자로서의 자신들의 과거는 부각시키고, 가해자로서의 과거는 함께 묻어버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군데군데, 그런 인식이 나타나는데, 사회파의 소설이니만큼, 이는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불쾌했다. 이런 부분이 결국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망상과 함께 물타기를 한 극우반동보수의 재무장 및 위대한 Japanism으로 이어지고, 상대적으로 주변국에 대한 무시와 멸시라는 결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사실 우리 근대사도 이런 let's forget about the past - 그땐 어쩔 수 없었지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산이 없었고, 철저한 fact인정에 base한 반성도 없었기에 친일하던 놈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만, 정확한 data에 근거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그리고 이제는 군국주의와 독재시대에 망령이 다시 육신을 걸치고 부활하려고 한다. 이건 지역주의에도 근거한 부분이 없지않은데, 어쨌든,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자라는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하다못해 파괴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신혼의 꿈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 여자는 남편을 잃어버린다. 이후 남편의 행적을 쫓던 시아주버님도, 그리고 직장의 후임도 하나씩 살해된다. 이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군정시절 남편의 직업, 그리고 직업상 관리하던 구역의 매춘녀들. 추리소설로도 꽤나 훌륭했고, 마지막까지 decoy를 쓴 것 또한 좋았다고 본다. 역시 세이초의 작품답게, 추리의 주체는 긴다이치 고스케나 홈즈같은 명탐정이 아닌 일반인, 우리와 같은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케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smooth한, 그러면서도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과 추리를 보여주는 것이 소박한 재료로 깊은 맛을 낸, 그래서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있는 요리같은 맛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제로썸의 게임? 제로를 향해? 등등 다양한 제목으로 출판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