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미천왕편 세트 - 전3권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김진명이라는 작가의 책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그때가 벌써 고등학교 시절이라니 세월이 참 무섭다.  이때만해도 쓰린 1997년의 IMF는 아무도 몰랐고, 1984년경 소설 '단'이나, 각종 예언서, 역술인들, 그리고 그밖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예언되었던 국운융성과 남북통일이 눈앞에 다가와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작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강해져가는 것만 같던 나라의 군사-경제와는 달리 국방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한껏 달아오르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와서 보니, 작가 김진명의 정치철학이나 여러가지 이슈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르는 좋은 박정희' 내지는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핵 미사일 보유와 민정이양을 이루었을', 어디서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가설들이 배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겠지만...  (무엇보다 이 루머의 수혜자가 박모여사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한동안 '단', '민족', '한단고기'등을 거의 100% 신봉하던 시절이 있었다. '위대한' 우리 과거.  이 중심에는 언제나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가 있었고, 고구려는 우리가 남북통일과 '고토'회복을 통하여 다시 이루어야 할 강성제국으로써의 이상향이었다.  백제역시 '백가제국'이란 이름, 그리고 중국 일부에 진출했었다는, 아직은 더 깊은 연구를 통한 이론적인 그리고 실증적인 정립이 필요한 과거의 영광을 현세에 reflect할 위대한 역사로써 일본론에 우세를 점하고픈 자들이 단골로 인용하던 고대사였다.  그밖의 역사는 '한반도'에 민족을 가두어버린 '작은'나라로 간 '죄많은' 조상의 역사일뿐이었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때의 수많던 '민족의 선각자나 예언자'들이 설파했던 위대한 대한민국의 대약진은 오지 않았고, 이 여파(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한단고기로 총칭되는 고대사 이야기는 심한 경우 '환빠' 내지는 '유사사학'으로 매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는 사실 훨씬 더 어려워졌고, 개인적으로는 우리에게 올 큰 '운'이 2002년의 월드컵으로 맥없이 꺼지고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우리 사회-정치-경제-군사력은 그야말로 rock bottom을 치고 있다. 

 

위대한 과거를 추억하거나, 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나아가서 조장하는 행위의 밑에는 에릭 홉스봄외의 역사가들이 '만들어진 전통'에서 훌륭하게 고증한 현대의, 과거사 reconstruction이 깔려있다.  좀 심한 예를 들자면 90년대부터 유행하던 수많은 한국의 '전통무술'을 보면 알수 있듯이, 과거의 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각색/윤색하고 전통을 내세우는 것인데, 정치적으로 행해지면 히틀러의 제3제국이나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위대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신화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불행하게도 '고구려'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양날의 칼과 같다.  깊고 진지한 연구를 통해 우리의 위대한 과거로 우뚝 서야할 역사가,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그리고 동북아공정으로 인해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  여기에 각종 인사들과 매체들의 '고구려' reconstruction때문에 자칫하면 실제의 역사마저 'fiction'화되어 부정될 수도 있는 것.  '주류사학'과 소위 '강단사학' 모두 100% 틀렸거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건만,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크게는 이 두패로 갈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것이 우리의 현재 실상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작가의 역사인식인데, 꼭 분류하자면 '한단고기'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실증적인 증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고려-조선 이래 지난 천년동안 우리의 역사가 끊임없이 왜곡/축소 되어왔다는 이론, 우리 민족의 삼국이 '한반도' (난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에 국한된 것이 아닌, 현 중국대륙의 남부와 북부에 걸쳐있다는 이 학설은, 나의 의견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한단고기'를 외면하게 하는 부분인이라고 보이는데, 작가의 '역사'소설에는 이것이 중요한 background에 흐르고 있다.  이 때문에 김진명의 작품은 재미있게, 또는 신앙과도 같이 읽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의해 또한 '환빠'스러운 '억지'를 내세운, 혹 더 심하게는 '한단고기'로 '책장사'를 해먹는 것으로 매도되기 일수. 

 

역사이론은 잠시 접어두고, 책만 보면, 고구려의 미천왕편 (1-3권)은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작가의 거창한 포부처럼 '삼국지'를 대신할만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 내용이 좀더 깊고 길 필요가 있다.  글자 크기와 내용의 깊이를 보면 아직 삼국지에 필적할지는 모르겠다 - 아직까지 '고구려'를 다룬 이야기에서 많이 나오지 않는 pre-광개토대제 (그는 실제로 "칭제"한 기록이 있다)시절의 왕들을 다루기에 더욱이나 흥미있는 소설이다.  또한 재미있게도 그의 포부는 '앞으로 백년'후에는 이 책이 삼국지 대신 읽히는 것인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도 못할것이 어짜피 우리가 아는 삼국지의 깊은 책략이나 구성은 정사 삼국지를 훨씬 넘은 후대의 삼국지연의를 다시 수백년동안 가다듬은 것이니, 작가의 '고구려'가 정말 시대를 뛰어넘는 흥미를 유발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물론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잠시 찾아보았지만,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가장 최근의 미천왕 이야기들은 2011년 3월부터 나오기 시작한 작가의 책에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출전을 찾을 수 있는 역사책들은 지금 여행중인 나에게 없기에 미천왕에 대한 객관적인 링크는 일단 pass. 

 

이 3부작에는 일단 미천왕의 선대가 즉위하는 시점부터 미천왕이 즉위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부분까지 나와 있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상당부분의 detail은 사서의 언급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creation일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 역사 소설에서 즐겨 다루어지는 고구려 테마의 주몽, 광개토대제, 호동왕자, 을지문덕장군, 연개소문 등이 아닌 이야기이기에 역시 흥미롭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지고 있는 사서들을 참고하는 것도 상당한 재미가 될듯. 

 

한가지 아쉬운 것은 현 출판계의 행태를 '업은'듯한, 혹은 '무관심'한 듯한 소설의 분량인데, 글자체가 너무 크고, 줄의 간격이 넓어, 세권으로 출간되었지만, 원고지 매수를 보면 한권이면 족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누누히 내가 지적한 나의 가장 큰 불만이기도 한데, 이렇게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을 책 구매에서 멀어지게 하는 큰 단점이라고 본다.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이렇게 해서 책의 권수를 늘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비교하면 좋을 것 같은 책: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이야기 한국사 등의 survey적인 국사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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