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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ㅣ 펭귄클래식 81
쥘 베른 지음, 이효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머리가 복잡한데도 책을 계속 읽고 싶다면 가벼운 책이 제격이다. 오늘 시작하여 한 숨에 읽어버린 이 책은 그렇게 읽혔다.
쥘 베른은 소싯적에 책을 좀 읽었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작가이다. 그의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해저 2만리 하면 아마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80일간의 세계일주' 역시 상당히 유명한 책인데, 50년대의 영화화로 특히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19세기 말 런던의 수 많은 사교클럽들 중 하나인 개혁클럽의 멤버인 포그씨는 다른 멤버들과의 '토론' 중 갑작스럽게 내기를 제안한다. 80일안에 세계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 이에 2만 파운드가 넘는 돈을 걸고 당일 채용된 집사와 함께 숨가쁜 80일 동안의 시간과의 경주를 진행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묘사이다.
소개글에 보면 이 책을 쓴 시기는 쥘 베른의 과학과 다가오는 세기에 대한 기대가 살아있던 시절이라고 한다. 후기로 가면 H.G. 웰즈와 같은 암울한 미래관이 그의 작품세계의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 전기의 소설은 이 책처럼 무엇인가 중구난방인, 좀더 정확하게는 젊은이의 기대같은 것이 보인다. 열강의 균형하에서 비교적 평온한 시기를 보내던 유럽 제국과 식민지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본다. 다만, 쥘 베른이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80일안에 세계일주를 마무리하는 목적에만 사로잡혀 주변의 경치나 다른 풍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난 다가오는 세기를 만들어낸 앞만 보고 달려가는 '문명인'의 모습을 느꼈다. 일종의 작가 특유의 직관적인 예지력이었을까? 내가 잘못 아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래도 이 책은 20세기를 이미 지난 현재를 살고있는 나에게 모험, 여행,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기대 같은 조금은 어릴 때 느꼈었을 마음의 불씨를 다시 들추어 낸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등장인물과 함께, 매우 바쁘게 영국-이집트-중국-일본-미국-유럽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하면서, 여행에 대한 환상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적인 성공 외의 나의 한 가지 목표 - 이담에 일정한 성공을 이루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땅에 집을 짓고 책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 외에 다른 또 하나의 목표의 주었기 때문인데, 45-50에는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냥 꿈으로 끝날지, 구체적으로 실행하게 될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미국 서부에서 시작하여 지구를 종횡으로 지그재그로 한 바퀴 돌아 미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발달된 현 시대의 교통과 속도를 생각할 때 80일이면 가능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영화 때문에 나는 이 책 어느 즈음에는 꼭 주인공이 열기구를 타는 장면이 있는 줄 알고, 계속 기다렸는데, 이는 영화에서만 나온 것 같다. 알프스를 넘어가면서 정상의 눈과 샴페인을 마시면 건배하는 것은 영화에서의 로맨틱한 장면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