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일하기 싫은 날이 있는데 오늘은 그런 날인 것 같다. 이런 날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뭔가 build-up이 되어가다가 임계치를 넘으면 오는 일하기 싫은 날의 주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나서는 한번도 마음을 제대로 놓아본 적이 없는데 언제나 조금만 더 가면 뭔가 이뤄질 것 같으면서도 항상 그 지점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는 느낌으로 살아온 것이 벌써 15년째가 된다. 이런 무기력한 날엔 운동도 독서도 어렵고 일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금요일에 와주면 좋을텐데 시기를 가리지 않는 이런 날은 아직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에겐 무척 괴로운 하루가 아닌가 싶다. 


시리즈의 최신판을 읽은 후 어쩌다 보니 역순으로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읽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듯,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인 유럽에서 네덜란드를 프랑스와의 사이에 완충지대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싫어하는 왕자비를 치워내기 위해 딸 샬롯공주를 그 핑계로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는 오렌지공에게 보내려는 왕위계승권 일순위의 왕자와 그 최측근이자 주인공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장인 Jarvis. 공주를 가르치던 음악교사가 아주 서툰 솜씨로 위장된 사고사로 발견되는 것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다른 거대한 음모의 입구로 작용한다. 컬럼부스의 달걀처럼 막이 내리면 사실 추리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없는데 그래도 진범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19세기 유럽사로 박사를 받은 전문가답게 당시의 에티켓, 정세, 사회상, 역사 등의 묘사가 매우 뛰어난 일종의 사회소설처럼 읽을 수도 있고 2-3차 사료로 이 당시를 공부하면서 읽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배경구성이 좋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부의 중심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거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pawn 정도로 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을 읽으면 현재의 많은 것을 비춰볼 수 있고 때로는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나아가서 작가라면 최소한 기본적인 교양은 갖춰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중혁작가의 글을 좋아하지만 고전을 읽지 않고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그의 지론에 전혀 agree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일부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가벼움과 진부함은 사회성을 아예 무시하거나 하는 것과 함께 여기서 그런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다.


백신접종과 함께 gym이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오래 머무는 건 risky하다. 특히 접종이 의미있는 수준으로 이뤄진 후 실내마스크착용은 권고사항이 된 지금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는 사람은 나 말곤 거의 찾아볼 수 없게된, 하지만 변종이 계속 나오고 있고 Trumpard (Trump + retard의 합성어)주들을 중심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지금 마스크를 벗고 운동할 맘이 나지 않는터라 여전히 근육운동을 마치면 바로 나와버린다. 달리기/걷기는 새벽에 해야 하는데 한껏 게을러진 탓에 패턴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던 요즘 다행히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에 3 car garage정도 되는 크기의 작은 gym을 이용할 수 있어 그런대로 줄넘기도 하고 구비된 기계에서 자전거를 돌리기도 한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이 책을 그런 시간에 읽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감흥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아주 예전의 일로, 이때 머나먼 안드로메다에서 출발한 빛이 최근에 지구에 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이때의 감성을 떠올리면서 읽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온다 리쿠 하면 좀더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기 어렵다면 거치형자전거기계를 돌리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느 책으든 잡고 읽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자전거를 돌리면서 읽은 또 하나의 책이자 두 번째 (위의 온다 리쿠가 세 번째) 책. 짧은 판형과 알찬 구성이 예뻐서 사모은 민음사의 쏜살문고판. 터보가 이야기의 한 부분을 짧게 빼온 것 같다. 지금 찾아보니 터보가 이야기 합본이 나왔었는데 이미 절판되었고 동서문화사에서만 두 권으로 구할 수 있다. 요즘의 번역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동서의 책은 일어판중역이 너무 많았던 기억도 있고 하여 다른 면에서는 맘에 들지만 구하기엔 조금 망설여진다. 


두 소년이 각별한 사이로 이상한 의심을 받고 가출을 했다 돌아온다. 떠날 땐 그저 친한 사이로 함께 억울함을 나누고 멀리 가버리려고 했으나 중간에 경찰을 피해 도망치다가 발생한 모종(?)의 사건으로 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버리고나니 다른 친구가 여전히 어린애처럼 느껴지고 둘의 사이에 뭔가 벽이 생긴 듯 느끼게 된다. 기승전결에서 기-승 정도의 맛보기로 끝난 것이 많이 아쉽다. 



ergo자전거를 돌리면서 읽은 첫 책. 생각해보면 예전에 gym에서 긴 시간을 보내던 토요일엔 여섯 시에 근육운동을 시작해서 일곱 시 반 정도에 마치고 기계에서 뛰고 다시 spin을 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덕분에 독서의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데 이 좋은 패턴이 깨진 작년 3월 이후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몸은 한 살씩 늙어가니 시간이라는 것이 아깝기 그지 없건만. 


묘한 소설이다. SF와 판타지 게다가 사회소설의 면모까지 훌륭하게 갖추고 있어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재미와 의미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


작가가 아무리 creative한 존재라고 해도 자신의 경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이 다루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옥타비아 버틀러는 자신의 경험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이를 훌륭하게 살려내는 대단한 실력의 작가라고 본다. 


전관예우가 없어지지 않는 까닭은 각각 다른 경로와 의미로 검사와 판사의 권력이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검사는 기소권으로 그리고 기소를 했어도 부실한 수사와 검증으로 무혐의로 사건을 처리할 수도 있고 재판까지 가더라도 패소할 수 밖에 없는 부실한 litigation을 그야말로 양심에 거리낌없이 진행해서 완벽한 면죄부를 받아줄 수도 있는 무소불휘의 권한을 갖고 있다. 판사의 경우 법리를 좌우할 뿐만 아니라 법의 적용,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관계와 증거의 취사선택이 임의로 가능하기 때문에 어쩌면 검사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으로 사건을 마사지할 수 있다. 그러니 센 전관변호사를 섭외 (선임보다는 이게 어룰린다)하여 돈을 주고 사건을 이렇게 저렇게 만져서 최대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전관이 직접 하거나 친분관계를 이용해서 사건을 맡은 검사나 판사 혹은 both를 잘 다루면 사건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못 보이면 없는 죄도 만들어 기소하고 유죄까지 갈 수 있는 패권이 전관예우의 시작인 것이다. 조국 선생의 일가와 주변 사돈의 팔촌까지 헤집는 검찰과 이를 알면서도 fact를 지멋대로 재단하여 재판을 끌어간 법원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이 관련된 사건은 처리조차 하지 않는 짓꺼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유례 없이 강력한 검찰과 유례 없이 제멋대로인 법원을 개혁하는 것에서부터 법질서가 바로 서고 전관예우가 없어질 수 있다. 뭘 해도 처벌을 받지 않고 좀 그랬다 싶으면 나와서 전관변호사가 되어 평생 벌어도 못 벌 만큼의 돈을 일년이면 거뜬히 벌 수 있고 심심하면 국회의원이 되거나 교수가 될 수도 있으니 시험 한번 잘 쳐서 부잣집자녀와 결혼도 하고 멋대로 살다가 나중에 더 잘 사는 길이 열릴 수도 있으니 다른 건 다 제쳐놓고 개차반 같은 인성과 잣대로 공부한 하는 것이 아닐까. top연예인이 되는 것과 더불어 아마 팔자를 고치는 로또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술을 얻어먹다 못해서 자기 혼자 룸싸롱에 가서 눈에 꽂힌 매춘부와 놀기 위한 예약과 술값, 선물값을 갈취한 검사도, 사업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 그 '친구'회사의 상장에 맞춰 내부자거래로 수십 억을 벌고 빌린 돈까지 슈킹했다가 사건이 커지니까 부랴부랴 '꾼'돈만 돌려준 검사도. 모두 열심히 지금도 밑천이 안 드는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다. 개혁의 열망은 강하다지만 정치적으로 결집되지 못하거나 지지한 정치모리배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 사는 건 참 어렵다. 테러는 나쁜 것이라고 배우지만 테러 말고는 답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약물치료로는 검찰과 법원의 암덩어리를 제거할 수 없고 목숨을 건 수술과 방사선요법이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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