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 서재는 내 마음대로 되는대로 쓰고 싶은 걸 올리는 공간이지만 엄연히 책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어쩌다 보니 다른 이야기들까지 기록하게 된 곳이다. 그런데 COVID-19으로 인한 칩거와 격리 및 감금을 근 석 달 정도 겪으면서 엉망이된 모든 것들처럼 이 공간 또한 그런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간 gym을 가지 못하면서 운동을 독려하기 위해 더욱 '몸을 쓰는 기록'에 매진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는 갈수록 어려워진 독서환경이나 정서적인 문제로 인해 글을 남기는 빈도가 훨씬 줄어든 것이다. 반성을 하면서도 가벼운 책을 읽는 것으로 겨우 이어가는 내 독서생활, 그와는 반대로 갈수록 커지는 책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여전히 쉽지는 않은 아저씨의 독서수행이다. 어쨌든 노력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다시 맘을 다잡기로 한다.


*여기까지 쓰고 일을 하다가 더 쓰지 못했다. 화요일에 다시 이어서 써본다.


평론가의 책 이야기. 나도 책을 적게 읽는 편은 아니고 보유한 장서나 관심을 갖고 있는 책까지 생각하면 꽤 많은 책을 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다른 이의 독서를 훔쳐보는 기회를 가질 때마다 책의 세계의 무궁무진함에 부질없이 사라져 버린다. 어떻게 겹치는 책이 두 권 남짓, 이 사람이 읽은 것들과 나와의 접점이란 것을 찾을 수가 없었던, 늘 하는, 하지만 그 때마다 새롭게 놀라는 경험을 했다. 이상하게도 책에서 다룬 것들의 내용은 그리 남은 것이 없고 교양을 쌓고 모르는 것이 더욱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리고 종종 독서평론을 하는 책에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책을 읽기 위해서는 계속 다른 이가 보는 책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은 주말에는 내 마음이 온통 소금밭이라서 더욱 남은 것이 없다만.



재미있는 서점이야기. 하지만 막상 가면 책은 몇 권 없을 것만 같다. 작년에 속초에서 '지역의 명물'이라는 작은 독립서점에서 받은 느낌을 이 책에 실린 사진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가봐야 알겠지만 너무 작은 공간에는 어차피 많은 책이 들어갈 자리가 없고, 가뜩이나 책이 안 팔리고 안 읽히는 세상에서 적은 수의 책을 팔아서 생활을 꾸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책에 관련된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되겠지만 이걸 잘못하다가는 서점인지 팬시가게인지, 술집인지, 사랑방인지, 그 모든 걸 조금씩 다 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아닌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이다. 손님들 또한 pure하게 서점을 원하는 사람의 한 극단에서 그저 편안한 공간이나 책 보다는 책을 둘러싼 이야기와 행사의 공간을 원하는 다른 극단 사이에서의 균형을 잡는 것 또한 보통일은 아닐게다. 저자가 초기에 맛본 성공이란 결국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던 월세와 역시 거저 불하받는 대단한 양의 헌책 덕분이지 작은 곳으로 옮겨온 후에는 꽤나 금전적으로 고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떠오른 생각. 아직까지는 열려 있으나 언제 닫게 될지 모르는 것이 서점의 문. 내가 좋아하던 산타크루즈 다운타운의 Logos가 폐업을 선언하고 사라진 것도 이미 몇 년 전의 일이고 어제는 우연히 찾아본 지역의 명물과도 같았던 카페 또한 2017년에 문을 닫았으니 변하는 시대와 세대에 맞춰 살아남는다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COVID-19이 보여준 공유경제구조의 약점을 생각하면 책도 역시 곁에 두고 있어야 이런 시국을 버텨낼 수 있는 것 같다만, 읽지 않는 사람들이야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내가 기억하기로 원래의 제목은 '반생의 기록'인 것 같다만 어쨌든 간만에 다시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을, 그것도 무려 그가 살았던 인생의 반 정도의 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을 읽었다. 


정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제대로 된 벌이는 평생 없었던 아버지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을 꾸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일찍 학업을 마치고 바로 기술을 배우면서 잡일을 하며 살다가 무려 마흔 셋에 작가가 된 그의 삶을 보면서 언제나 무엇을 하고자 할 때, 꿈을 갖고 나아감에 있어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다. 지금의 마흔 셋도 상당한 나이로 보이겠지만 마쓰모토 세이초가 아쿠타가와 상을 받으며 등단했을 때의 마흔 셋은 1952년의 마흔 셋으로 지금의 수명이나 사회인식으로 보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로 생각된다. 게다가 평생 가난하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살아온 사람이 등단을 거쳐 다작의 인기작가로, 사회파의 거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일까. 조지 R.R. 마틴이 스티븐 킹에게 '자네 어떻게 하면 그리도 빨리 글을 쓸 수 있나'라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마쓰모토 세이초에게도 물어봄직하다. 


늘 꿈을 갖고 원하는 걸 향해 나아갈 용기를 이렇게 또 한번 얻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뭔가 이루는 것이 있다는 걸 많이 경험했지만 삶이란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서 경험에 근거한 믿음 조차도 늘 흔들리게 마련이니 좋은 책과 좋은 이야기로 종종 힘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세 권의 책은 다룬 시대의 빡빡함 만큼이나 내용도 무척 high density여서 그랬는지 다 읽은 건 겨우 얼마 전의 일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낸 행위 자체도 의미가 있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파리의 예술 백가쟁명의 꽃피던 시절의 이야기라서 중간중간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다룬 시대와 인물도 많기에 쉬운 읽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 한번 정도는 교양삼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동서양의 고전을 제외하면 기실 지금 classic 필독서로 꼽히는 작품들의 대다수가 이 시리즈에서 다룬 시대의 어디엔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중에도 가끔씩 꺼내어 볼 것 같다.


책 대 담배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담배를 태우지 않기 때문이고 당장이라도 언제나 책과 담배의 대결에서 내가 심판을 본다면 책이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배를 술로 바꾸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과연 책과 술 둘 중 하나만 즐길 수 있다면 혹은 술값을 아껴서 책을 사는 걸 주장하는 사람이 딱 즐겁게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후의 한 잔 타임에 나타난다면 나도 고민을 할 것이다. 


배웠다면 나름 좀 배웠고 21세기로 넘어올 수 있었던 소수의 20세기 사람들 중 하나인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오웰이 이 책을 쓰던 시절 영국의 노무자라면 당연히 담배를 고를 것이다. 책이란 지식습득의 도구를 넘어 entertainment의 일종으로도 사용되었던 시절이지만 노동자들에겐 역시 담배와 술, 그리고 축구와 야구, 복싱이 최고였을 것이다. 아무리 오웰이 책의 우위를 설파하더라도 당장 하루를 벌어서 먹고 하루의 위안이 필요한 고된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책이란 것도 사치가 아니었을까. 단순히 값과 효용성만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3권이 따끈따근하게 나온 모양이다. 나는 아직 구하지 못했지만. 중국의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먼 곳. 중국이라기 보다는 서하나 토번에 더 가까웠을 곳에 남겨진 엄청난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사진으로는 그 심오함이나 감동이 전달되지 않지만 여행을 갈 수 없는 시기에는 이런 책을 보는 건 교양을 얻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 중국에는 아마도 가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는 이번 생의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아쉬움을 이렇게 달랜다. 어릴 때부터 중국의 고전과 소설, 역사에 관심을 갖고 살아온 나에겐 조금 잔인하지만, 더욱 잔인한 중국의 공산당에게 내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바칠 생각은 없다. 3권은 조만간 구해서 볼 생각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무조건 구해서 본다. 책과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의 모습이 멋지게 생각되므로. 노벨상을 받은 일본출신의 과학자와의 대담집. 관심이 많은 분야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STEM분야에는 워낙 문외한 (무뇌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잘 알아듣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그냥 넘긴 지점도 많았다만 그래도 한번 쭉 읽어본 바, 분자생물학으로 모든 걸 분석하겠다는 과학의 포부가 이미 어느 정도 현실로 드러난 지금, 과학자의 야심이라는 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좋은 학자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오는 것이 없어도 수백, 수천억을 투자할 수 있는 사회전반의 인식과 인프라가 없이는 과학입국은 불가능하다. 아직도 대단한 과학자들이나 발견은 서구중심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한국처럼 당장의 성과를 재촉하는 한, 과학자보다는 엔지니어와 그 수준의 한계를 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노벨문학상에 목을 매는 걸 보면서 한국의 현실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절판이 되어서 구할 수 한국어판으로는 구할 수 없지만 난 The Talented Mr. Ripley시리즈와 Mr. Ripley 라는 캐릭터의 팬이다. 작품이 영화화된 건 먼저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무려 알랭 들롱이 주연한 작품이고 나중에 우리 시대에 와서는 맷 데이먼과 당시 핫하던 (그리고 머리숱도 많이 남아있었던) 쥬드 로가 주연한 걸로 다시 나왔다. 퍼트리야 스미스 (혹은 패트리샤 스미스)의 작품인데 이 시리즈로 내 기억엔 다섯 작품이 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서스펜스를 쓴 멋진 작가의 글쓰기 이야기를 이번에 구해서 읽었다. 세부적은 내용은 많이 남기지 못했지만 덕분에 구할 수 있는 작품을 여럿 사들였고 어제부터 한 권씩 읽기 시작했으니 이런 책이 나오면 누군가는 인세를 벌어들이게 되는 것 같다 (작가는 죽더라도). 어쨌든 좋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비록 아직은 한국어판으로 나온 리플리 시리즈를 구하지 못하고 있지만.


오늘까지 읽은 책을 정리하면서 역순으로 했으니 이 책이 앞서 페이퍼를 쓴 후 가장 먼저 읽은, 즉 기억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책이다. 그런 탓에 많이 잊어버렸고 너무도 미안하지만 달리 쓸 말이 없다. 그저 책을 읽는 사람을 여러 가지로 표현했다는 정도. 작가는 그야말로 책의 고수로서 독서와 책에 대핸 여러 이야기를 책으로 지은 알베르로 망구엘 (혹은 망겔)이다. '독서의 역사'가 아마 내가 접한 그의 첫 번째 책이였을 것이다. 두 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이 또한 내용이 딱히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국민학교 3학년에 처음 읽고 아마 대학교 시절까지 계속 읽은 청아출판사의 역사책 몇 권, 정비석의 소설손자병법, 소설초한지도 그렇고 더 어릴 때 읽은 전집류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한데. 많이 읽는만큼 여러 번 읽지 못하고 한번의 만남으로 끝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나이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로써 밀린 이야기가 일단 또 끝났다. 도무지 서재인지 운동블로그인지 모호해진 정체성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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